"더는 재정적자 감당 안돼"…시장선 美 국채마저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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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가부채 공포에 '국채 발작'
20년물 입찰 부진…30년물 금리 5% 돌파
달러가치 급락…비트코인 첫 11만弗 터치
이날 ‘국채 발작’을 촉발한 것은 20년 만기 국채 경매였다. 국채 입찰 결과 발행금리가 연 5.047%로 집계돼 시장이 충격에 빠졌다. 발행금리가 연 5%를 넘은 것은 2023년 10월 후 처음이다. 입찰 물량 대비 수요 비율도 2.46배로 과거 평균(2.57배)을 밑돌았다. 국채 수요가 줄었다는 의미다.
토머스 사이먼스 제프리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입찰 결과로 볼 때 미국 장기 국채 시장에서 벌어지는 (국채) 매도 압력이 단기간에 뒤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가부채는 현재 36조달러를 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24%에 달한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 감세안이 시장에 알려진 대로 통과되면 국가부채가 10년간 최소 3조달러가량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했지만 달러 가치는 급락했다. 이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9.56에 마감해 연초 109.39 대비 9%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6개월 만에 1380원대에 안착했다. 통상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 달러 가치도 상승하지만 정반대 흐름을 보인 것이다. 시장에선 달러 자산의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다우지수, S&P500지수 등 미 증시도 이날 동반하락했다. 달러 자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비트코인은 사상 처음 개당 11만달러를 넘었다.
국가부채 공포에…'셀 아메리카' 가속
美 장기국채 투매 조짐…월가선 국채금리 더 오른다
◇美 재정 나아질 기미 없어
이날 미국 20년 만기 국채 금리의 수요 부진 원인은 두 가지로 분석된다. 최근 무디스가 재정적자 증가를 이유로 미국 신용등급을 기존 최고등급 ‘Aaa’에서 한 단계 낮은 ‘Aa1’으로 강등해 시장이 잔뜩 예민해진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감세안이 통과되면 재정적자가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커진 게 핵심 이유로 꼽힌다.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오는 26일부터 의회가 메모리얼데이(현충일) 휴회에 들어가기에 앞서 트럼프 감세안 연장·확대 등을 골자로 한 이른바 ‘하나의 아름다운 법안’(메가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목표에 따라 하원 처리 일정을 서두르고 있다. 법안엔 개인 소득세율과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표준소득공제와 자녀 세액공제 확대 등 2017년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도입돼 올해 말 만료될 예정인 주요 감세 조항을 연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팁·초과근무수당 면세, 미국산 자동차 구입을 위한 대출이자 세액공제 신설도 포함됐다.
감세안 자체는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문제는 줄어드는 세입을 메울 만큼 다른 부분에서 지출 절감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현재 시장에 알려진 대로 감세안이 통과되면 재정적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 의회 합동조세위원회(KCT)는 이 법안 통과 시 향후 10년간 연방정부 재정적자가 2조5000억달러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 국가부채는 현재 36조8800억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124%나 된다. 국채로 인한 이자 비용만 연간 8800억달러 수준이다. 지금 추세라면 연간 이자 비용이 1조달러를 넘어 국방비와 메디케어(노인의료보험) 지출을 모두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UBS글로벌자산운용의 최고투자책임자(CIO) 마크 해펠레는 “트럼프 감세안이 지금대로 통과되면 이는 국채 공급 증가로 이어져 시장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국채 공급 증가로 시장 부담”
재정적자 확대는 곧 국채 발행 물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시장에 채권이 많이 풀리면 가격은 내려가고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가 커져 투자자들의 국채 입찰 참여가 부진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이번 경매에서 국채 인수 의무를 지닌 미국의 대형 금융 기관들이 매입한 규모는 발행 물량의 16.9%로 최근 평균인 15.1%를 넘는다. 그만큼 해외 중앙은행, 외국 국부펀드 등 글로벌 투자자의 수요가 부족했다는 의미다. 도이체방크의 조지 사라베로스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현 가격 수준에서 더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무역적자·재정적자)에 자금을 대려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국채 금리 상승이 경기를 짓누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 국채 30년 만기와 10년 만기 금리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등 소비자 대출의 기준금리다. 금리가 계속 오르면 소비 둔화로 이어지고 경기 침체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BA)는 “금리 상승으로 지난주 모기지 신청 건수가 5.1% 감소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국채금리 상승과 경매 부진에 어떻게 반응할지도 주목된다. 4월 상호관세를 유예한 결정적 계기도 국채금리 급등이었기 때문이다. BMO캐피털마켓 측은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국채 시장을 워싱턴 정치에 대한 투자자 신뢰의 척도로 본다면 미 국채 30년 만기 금리가 오른 것은 분명히 심각한 신호”라고 경고했다.
한경제 기자/뉴욕=박신영 특파원 hankyung@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