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이상하다"…전 세계에서 쏟아진 우려 [반도체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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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ec·ITF2025 참관기
(1) 약해진 韓 반도체 존재감
애플, 마이크론 중심으로
기술력, 제품 경쟁력 과시
삼성 아쉬운 점으로 '잦은 리더 교체' 지적
단기 성과 주의로 흐를 가능성 커
행사의 주인공은 애플(애플실리콘), 마이크론, 글로벌파운드리즈(GF) 등 삼성전자와 경쟁하고 있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이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은 'AI가 주도하는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과 반도체'를 주제로 열린 ITF 2025의 주요 순간마다 등장해 기술력을 과시하고 성과를 뽐냈다.
imec이 인정한 애플의 반도체 혁신
애플은 imec이 1년에 한 번 선정하는 'imec 이노베이션 어워드'의 수상자를 냈다. 애플의 반도체(애플 실리콘) 개발을 총괄하는 조니 스루지(Johny Srouji) 애플 하드웨어·테크놀로지 부사장(SVP)이 주인공이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AP 'A16' 등 A시리즈와 'M2' 등 컴퓨터용 M시리즈가 애플의 제품 혁신을 이끌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스루지 부사장은 약 30분 동안 아이폰, 맥, 애플 워치, 비전 프로 등에 들어가는 애플 실리콘 개발 과정과 쌓은 노하우에 관해 설명했다. 애플의 ITF 2025 어워드 수상은 애플과 유사한 사업 구조(자체 스마트폰용 AP 개발)를 가진 반도체 전문 기업 삼성전자 입장에선 자존심 상하는 장면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 김기남 당시 DS부문장(사장) 이후 수상자를 못 내고 있다. 지난해 수상자는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
최첨단 HBM 발표는 마이크론이 맡아
놀라운 건 전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위상을 높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관련 세션 발표를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아닌 미국 마이크론이 맡았다는 점. 스캇 드보어 마이크론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수석 부사장(EVP)은 '메모리 및 스토리지: AI 혁명의 시작'을 주제로 차세대 제품인 'HBM4' 등과 관련한 기술력을 뽐냈다. 삼성전자 등 경쟁사 대비 마이크론 HBM 제품의 경쟁력이 좋다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언급 안 된 삼성전자...AI 시대 낮아진 위상
이틀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스루지 애플 부사장, 엔비디아의 비벡 싱 컴퓨팅 담당 부사장(VP)이 대만 TSMC 얘기를 꺼내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협업하고 있다" 등의 발언을 한 것과 대조적이다. AI 시대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변방'으로 밀리고 있는 삼성전자의 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왜일까. 삼성전자에 대한 현지 반도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삼성전자가 '설계, 메모리, 파운드리, 패키징'을 다 할 수 있는 전 세계 유일한 반도체 기업이라는 점에서 '경쟁력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컸다. 아쉬운 점으론 리더십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리더십이 잘못됐다는 평가는 아니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리더십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분석이 나왔다. imec이 사실상 모든 반도체 기업과 협업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점에서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지적으로 평가된다.
실제론 어떨까. 반도체(DS)부문장부터 살펴보면, 경계현 전 DS부문장의 임기는 2년 5개월에 그쳤다. DS부문장 아래 개별 사업부를 책임지는 사장급 사업부장도 자주 교체된다.(삼성전자 DS부문 산하 메모리사업부, 파운드리사업부, 시스템LSI사업부 등은 따로 떼어놔도 업계 웬만한 회사보다 규모가 크다.)
맏형 메모리사업부부터 보면 전임 이정배 사장(2021~2024년), 진교영 사장(2017~2020년), 전영현 사장(2014~2016년) 등이 평균 3년 3개월 재직했다.
경쟁사 마이크론은 산제이 메로흐트라 CEO가 2017년 5월부터 현재까지 만 8년째 재직 중이다. 전임자 마크 더컨은 2012년~2017년 약 6년간 CEO를 지냈고 스티브 애플턴은 1994년부터 2012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약 19년 CEO를 맡았다.
팹리스 업계에서도 AMD의 리사 수 CEO는 2014년부터 10년 넘게 장기 집권 중이다. 창업자인 젠슨 황이 직접 이끄는 엔비디아는 말할 필요도 없다. 삼성전자는 좀 다르다. 퀄컴 출신 강인엽 시스템LSI사업부장이 2017년 5월 임기를 시작해 2020년 12월 물러났다. TI, 동부하이텍 출신 박용인 사장은 2021년 1월부터 현재까지 4년 5개월간 사업부장을 맡고 있다.
"2~3년 만에 리더십 바뀌는 데 믿고 일하겠냐"
물론 기업이 상황에 맞게 CEO를 교체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경영 전략이다. 분위기 쇄신 등을 위해 리더를 바꾸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CEO, 사장이 오랜 기간 자신의 철학을 회사에 입히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 경쟁력을 키우는 데는 방해가 될 수도 있다.'잦은 리더십 변경'에 대한 우려는 엔비디아, 테슬라 등 삼성전자 고객사 사이에서도 자주 나오고 있다. CEO의 장기 집권이 자연스러운 고객사의 눈으로 봤을 때도 '이상한 일'로 평가되고 있다. 전 세계 고객사와 함께 일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지적이다.
고객사와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내부에서도 조직 문화나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 약점이 될 수 있다. 부문장, 사업부장의 길지 않은 임기는 '단기 성과 중심' 경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보면 사업부장 밑의 실장, 팀장, 그룹장부터 말단 파트장까지 성과에 조급해지고 '거짓 보고' 등으로 연결된다. 기술 개발도 로드맵대로 될 리가 없다. 삼성전자가 최근 2년 넘게 진행된 투자자 대상 컨퍼런스콜에서 장밋빛 전망을 하고, 목표 달성에 실패해 '양치기 소년'이 된 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평가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21~22일(현지 시각)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열린 imec 주최 반도체 포럼인 'ITF 월드 2025'에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주요 언론사와 함께 초청을 받아 imec 본사와 포럼을 취재했습니다. imec은 96개국의 산업계, 학계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연구기관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이 방문할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참관 관련 기사를 2회에 걸쳐 반도체 포커스에 연재합니다.
안트베르펜=황정수 기자 hjs@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