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와 발레 사이에 꽃이 있다, 낭만적 결말은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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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단비의 발레의 열두 달
꽃의 이름으로 너를 기억한다,
피렌체 그리고 발레
꽃의 이름으로 너를 기억한다,
피렌체 그리고 발레
“준세이, 약속해 줄래? 나의 서른 살 생일은 피렌체 두오모에서.” “그래, 약속해.”-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중에서
일본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江國香織)와 츠지 히토나리(辻仁成)가 함께 집필해서 1999년에 출간한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영화로도 제작돼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에 영화 개봉 20주년을 맞이해서 재개봉되기도 했고, 올해는 24주년 특별판 책이 출간되기도 할 정도로 이 로맨스는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되고 있다. “어느 때 문득,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떠올리기도 하지만 그걸 또 머릿속에 새겨 두지 않으니, 기억이란 덧없는 아지랑이의 날개처럼 햇살 아래 녹아내려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책 속에서 주인공 준세이가 독백하던 것과는 달리.
사랑했지만 헤어진 두 사람, 준세이와 아오이. 언젠가 두 사람은 약속했다. 아오이의 서른 살 생일에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자고. 그 둘이 만나기로 했던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의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을 갖고 있다.

5월은 꽃의 계절이기도 하다. 꽃은 발레 작품 안에서도 중요한 상징을 갖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발레 <지젤(Giselle, 1841)>이 그렇다. <지젤>에는 데이지와 로즈마리, 백합, 총 세 가지 꽃이 등장하고, 각각의 꽃은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예고와 장면의 상징성을 갖는다.
1막에서 지젤이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졌을 때는 데이지꽃으로 꽃점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지젤의 순수한 사랑을 대변하는 데이지의 마지막 꽃잎이 ‘사랑하지 않는다’를 가리킬 때 관객은 가련한 그녀의 운명을 알아채게 된다.
2막에서 유령 윌리들의 수장인 미르타는 로즈마리를 들고 알브레히트를 죽이라고 지시하지만, 지젤은 배신한 그를 죽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지켜낸다. 로즈마리는 죽음의 표식이었지만 이후에 가지가 꺾이면서 사랑의 승리를 나타내는 표식이 된다. 지젤과 윌리들이 사라진 후 알브레히트는 용서와 회한을 상징하는 백합을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지젤에서 세 가지 꽃은 줄거리를 이끄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솔로르가 보낸 것이 아니라 감자티 공주의 계략이었다. 결국 꽃바구니 속 독사에 물려 니키아는 죽음을 당하게 된다. 꽃바구니는 작품 속에서 사랑의 기쁨과 죽음의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오브제이자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전환지점이 된다.

장미꽃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매력을 뜻하는 작품도 있다. 쿠바 안무가 알베르토 알론소(Alberto Alonso)가 안무한 <카르멘 모음곡(Carmen Suite, 1967)>에서 카르멘은 붉은 장미를 머리에 꽂고 나온다. 누구나 매혹당하고, 누구나 꺾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게 만드는 그 꽃은 결국 핏빛 죽음을 끌고 올 거라는 운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참고로 <카르멘 모음곡>의 음악은 러시아 작곡가 로디온 셰드린(Rodion Shchedrin, 1932~)이 비제의 오페라 곡에서 관악기를 빼고 현악기와 타악기로 편곡한 곡으로 그의 아내이자 전설적인 무용수 마야 플리세츠카야(Maya Plisetskaya, 1925~2015)를 위해 쓴 발레 음악이었다.

<춘희>는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가 사랑했던 코르티잔 마리 뒤플레시가 폐결핵으로 죽은 뒤 그는 이 소설을 썼는데 마리 뒤플레시는 동백꽃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마르그리트는 가슴에 동백꽃을 꽂고 나온다. 동백꽃은 마르그리트이자 마리 뒤플레시이며, 사랑하는 여인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 건 다른 것이 줄 수 없는 설렘에 들뜨게 만들고,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인류를 보존하기 위한 호르몬의 농간일지 모르지만, 수많은 문학과 음악과 예술은 그 밤잠 설치는 감정 안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때때로 꽃으로 표현된다. 발레 역시 그렇다. 수없이 많은 말이 농축돼 꽃잎이 된다. 꽃은 말 없는 말이다.
이단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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