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치매 머니' 2012조…한국은 더 심각합니다 [심형석의 부동산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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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하지만 일본인 대부분은 이 금융자산을 현금과 예금으로 묻어두고 있습니다. 금융투자협회의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으로 일본 가계의 현금 및 예금의 비중은 55.2%에 달해 미국(13.2%)과 영국(27.1%) 심지어 한국(43.4%)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일본 다이이치(第一)생명경제연구소는 일본 내 장롱예금이 60조엔(약 561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돈을 집에 묻어두는 것이 낫겠다는 일본인이 많은 탓에 현금보관용 개인금고 판매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금고 수출기업도 일본 판매가 늘어나면서 호황을 누렸다고 합니다.
장롱예금은 그래도 양반입니다. 상속인과 피상속인이 모두 고령자가 되고 자산이 고령층 내에서만 순환하는 노노(老老)상속이 늘어나면서 소위 ‘치매 머니’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치매 머니는 치매를 겪고 있는 고령층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을 말합니다. 금융기관에 예금한 많은 고령자가 치매에 걸림으로써 나타나는 사회문제를 함축해서 만든 용어입니다.

금융회사에 예치된 돈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치매 환자 계좌의 돈은 원칙적으로 인출이 불가능합니다. 인출에 대한 본인 동의를 받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등의 자산도 동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미쓰이스미토모 신탁은행은 2030년이 되면 치매 고령자가 보유한 부동산이 108조엔으로 늘어날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전체 가계가 보유한 부동산의 10.8%에 이르는 수준입니다.
일본의 치매 환자는 올해 최대 73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다이이치 생명경제연구소는 2030년이 되면 치매 머니는 무려 215조엔(약 2012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일본 국내 총생산(GDP)의 40%에 맞먹는 수준이며 가계 금융자산 전체로는 10%가 넘습니다. 이만한 돈이 동결된다면 일본의 경제는 활력을 잃게 됩니다.
이 때문에 일본 정책당국은 치매 머니 동결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나섰습니다. 믿을 수 있는 가족에게 치매가 생기기 전에 미리 자산관리를 위탁하는 ‘가족 신탁’이나 판단 능력을 상실한 개인을 대신해 특정인에게 법률적인 행위와 권한을 부여하는 ‘성년후견인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중입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24년 12월 말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억7000만원을 넘었습니다. 집값은 올랐는데 증여세 면세기준이 과거에 멈춰있으면서 세대 간 부의 이전은 더디기만 합니다. 부의 고령화가 심화하면 자연스럽게 경제 활력이 떨어집니다.
‘부자 세대'로 꼽히는 베이비부머들은 자산의 약 80%가 부동산에 묶여 운신의 폭이 좁습니다. 증여가 어려우니 은퇴했거나 은퇴가 닥친 상황이라면 자식에게 자산을 물려주기도 힘듭니다. 사전에 증여하지 못한다면 일본과 같은 노노증여나 노노상속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부작용은 일본보다 심각할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벌컨설팅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은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이 64%에 달합니다. 비금융자산 비중이 37%에 그치는 일본과는 영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부의 대물림이라는 측면에서 사전증여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흙수저·금수저 논란도 이런 시류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소극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부동산의 세대교체라는 적극적인 접근으로 고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체 상속이나 증여세를 모두 낮추거나 감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향이지만 사회의 부작용이나 반발을 고려한다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분야에만 다른 나라처럼 상속, 증여세의 일부를 감면해주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의 가업승계는 고용이나 투자 촉진 차원에서라도 빠르게 방법을 찾았으면 합니다. 이제는 부의 고령화에 대비해야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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