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하청 공장' 대만의 힘
일본 2·3위 자동차 회사인 혼다와 닛산이 합병을 추진하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대만 폭스콘이었다. 애플 아이폰을 대신 만들어주며 주머니가 두둑해진 폭스콘은 전기차 경쟁력 저하로 닛산이 어려움에 빠지자 인수를 제안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가 분주해졌다. 말 그대로 일본 토종기업인 ‘닛산’(日産·일본 생산)이 자칫 대만에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급히 다른 토종기업인 혼다를 인수합병(M&A) 테이블로 끌어들였고, 두 회사는 현재 합병을 논의하고 있다.

폭스콘이 닛산 인수에 나선 건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앞서 폭스콘은 2016년 일본 전자업체 샤프를 인수할 때도 전기차 진출을 염두에 뒀다. 전기차 개발과 판매는 상당한 수준의 정보기술(IT)과 글로벌 판매망을 갖춘 샤프에 맡기고, 폭스콘은 ‘전공’인 제조만 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를 위해 폭스콘은 ‘모빌리티 인 하모니(MIH)’란 전기차 플랫폼도 개발했다.

폭스콘, 전기차도 아이폰처럼

닛산은 전기차 시장 진출을 꿈꾸는 폭스콘에 샤프보다 좋은 매물이었다. 세계 29개 공장에서 일하는 13만3000여 명이 매년 수백만 대의 차량을 만들어낸다. 닛산만 손에 넣으면 폭스콘은 완성차 제조 기술과 생산시설이 없는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게 된다. 폭스콘이 닛산에서 30년 근무하며 수석부사장을 지낸 세키 준을 2023년 영입한 것도 같은 이유다.

폭스콘이 샤프와 닛산 인수에 나선 건 수탁 생산 능력을 키우기 위한 측면이 크다. 폭스콘은 현재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아이폰의 70%가량인 9000만 대를 생산하고 있다. 애플의 하청업체인데도 오히려 시장에선 “애플이 폭스콘에 종속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위세가 등등하다.

이런 폭스콘이 전기차까지 ‘대신 만들어 준다’고 나서는 순간, 국내 완성차 회사들은 엄청난 리스크를 떠안을 게 뻔하다. 고비용 구조로 차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기아 앞에 ‘대만이 만든 독일 브랜드 전기차’가 싼값에 나온다면 당해내기 쉽지 않다. 안 그래도 중국의 저가 전기차 공세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이중 압박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제너럴모터스(GM)와 르노 등에서 주문받아 차를 생산하는 한국GM과 르노코리아도 대만의 ‘파운드리 전기차’가 현실화하면 GM과 르노가 한국 공장을 떠나 대만으로 주문을 넘길 수 있다.

TSMC 마진 하이닉스보다 높아

이런 대만의 전략은 이미 반도체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60% 이상을 휘어잡고 있는 TSMC가 바로 대만 기업이다. 경쟁자가 없다 보니 수익성은 전 세계 최상위급이다. 지난해 4분기 TSMC의 영업이익률은 49%로, SK하이닉스(41%)보다 높다.

이제 더 이상 대만은 한국의 한 수 아래가 아니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석유화학, 가전, 태양광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한국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신세가 됐다.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중국을 피해 가자니, 미국 유럽의 선진 업체 벽을 뚫기가 만만치 않다. 반면 TSMC와 폭스콘은 파운드리란 신시장을 개척해 경쟁 없는 ‘블루오션’을 누비고 있다. 대만 기업인들의 담대한 도전, 이게 가능하도록 지원해준 대만 정부의 혜안과 용기가 한국 산업계에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