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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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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상속받고도 빚은 갚지 않겠다고?" 채권자들의 분통을 터뜨리는 상황이 법정에서 끊임없이 재연되고 있다. 법적 선택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지는 채권추심의 성패, 그 미묘한 법률관계를 파헤쳐 본다.


민법은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보전하여 채권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채권자취소제도를 두고 있다.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면서 자기 재산을 감소시키는 행위를 한 경우, 그 행위를 취소하고 원상회복을 통해 모든 채권자를 위한 책임재산을 보전할 수 있다.

예컨대 A씨에게 1억원을 갚지 못하는 B씨가 유일한 재산인 3,000만원 상당 외화를 C씨에게 증여했다면, A씨는 B씨의 증여행위를 취소하고 해당 외화를 B씨의 책임재산으로 회복시켜 집행할 수 있다.
재산 증가 거부도 취소 가능할까?
그렇다면 채무자가 기존 재산을 적극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산 증가를 거부하는 행위'도 채권자취소 대상이 될까? B씨의 모친이 사망해 B씨가 동생과 함께 각 1억원씩 상속받을 수 있음에도 이를 포기한다면, A씨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실제로 일부 채무자들은 상속분을 포기한 대가로 다른 상속인으로부터 몰래 금전을 수수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한다.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통한 포기: 취소 가능
상속재산분할협의란 상속이 개시되어 잠정적 공유가 된 상속재산을 공동상속인들 간 협의를 통해 단독소유나 새로운 공유관계로 이행시키는 것이다. 협의 후에는 소급효로 인해 B씨는 처음부터 모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 없게 된다.

중요한 점은 상속재산분할협의의 대상은 적극재산에 한정되므로 모친에게 채무가 있었다면 B씨는 법정상속분 상당의 상속채무를 여전히 부담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미 채무초과 상태에 있는 채무자가 상속재산의 분할협의를 하면서 자신의 상속분에 관한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일반 채권자에 대한 공동담보가 감소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채권자에 대한 사해행위에 해당한다"(대법원 2007. 7. 26. 선고 2007다29119 판결)고 판시했다.

따라서 A씨는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해 상속재산분할협의를 취소하고 B씨의 법정상속분 1억원을 책임재산으로 회복시킨 후 채권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법정 상속포기: 취소 불가능의 벽
반면 상속포기는 다르다. 민법은 상속개시와 동시에 피상속인의 일체 권리의무가 당연히 상속인에게 승계되는데, 상속포기는 이러한 상속 효과를 거절할 수 있게 한다. 상속을 포기하면 상속이 개시된 때에 소급하여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이 된다.

대법원은 "상속의 포기는 1차적으로 피상속인 또는 후순위상속인을 포함하여 다른 상속인 등과의 인격적 관계를 전체적으로 판단하여 행하여지는 '인적 결단'으로서의 성질을 가진다...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상속의 포기는 민법 제406조 제1항에서 정하는 '재산권에 관한 법률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사해행위취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다29307 판결)고 명확히 판시했다.
두 제도의 결정적 차이점
상속재산분할협의는 기한 제한 없이 언제든지 할 수 있고, 피상속인의 적극재산만을 대상으로 하며, 법원 관여 없이 상속인들 상호간 협의만으로 가능하다. 반면 상속포기는 상속개시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법원에 신고해야 하며, 피상속인의 적극재산은 물론 소극재산을 포함한 전체 상속관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대법원은 이러한 차이점에 주목해 상속포기가 재산상 행위라는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채권자취소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유증포기: 채권자의 또 다른 장벽
B씨의 모친이 B씨에게 2억원을 유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면 어떨까? 유증을 받을 자는 유언자 사망 후 언제든지 유증을 포기할 수 있다.

대법원은 "유증을 받을 자는 유언자의 사망 후에 언제든지 유증을 승인 또는 포기할 수 있고 그 효력은 유언자가 사망한 때에 소급하여 발생하므로(민법 제1074조), 채무초과 상태에 있는 채무자라도 자유롭게 유증을 받을 것을 포기할 수 있다. 또한 채무자의 유증 포기가 직접적으로 채무자의 일반재산을 감소시켜 채무자의 재산을 유증 이전의 상태보다 악화시킨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유증을 받을 자가 이를 포기하는 것은 사해행위 취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8다260855판결)고 판결했다.

다만 중요한 점은, B씨가 유증을 포기하면 처음부터 유증이 없었던 것이 되어 유증 대상 재산은 상속재산이 되고, B씨는 그중 법정상속분에 상당하는 만큼을 상속받게 된다. 이때 B씨가 유증 포기로 취득한 상속분을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통해 "0"으로 만들었다면, A씨는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채권자의 시간 제한: 제척기간의 함정
채권자 A씨는 채무자 B씨가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통해 상속분을 포기한 사실을 안 때로부터 1년 또는 그러한 협의가 있은 때로부터 5년 내에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채권자취소권은 소멸한다.

현실적 어려움은 채권자가 채무자의 상속재산분할협의 시점과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채권자는 채무자의 상속 관련 움직임을 면밀히 추적해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상속포기를 상속재산분할협의와 달리 취급할 만한 합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청구권도 채권자취소의 대상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0. 9. 29. 선고 2000다25569 판결)와의 일관성 측면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당장 선택을 해야 하는 채권자와 채무자는 현재 대법원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상속 법률관계는 동일한 상황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현저히 다른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웅규 법무법인(유한)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서울대 법학대학 학사, 동 대학원 석사(민법/신탁법 전공)를 졸업하고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에서 1년간 연수했다. 상속자문·상속분쟁·기업승계 등 자산관리와 자산승계 분야 전문 변호사로 대기업 및 중견·중소기업 오너 일가의 상속재산분할, 유류분 반환청구 등 다수의 상속분쟁 및 상속자문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국내 최초로 로펌 내 종합자산관리센터인 'Estate Planning Center'의 설립을 주도하여 현재 자산승계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다. 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삼성전자, 삼성생명,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성균관대, 부산외국어대 최고국제경영자과정(AMP), 전미한인공인회계사협회, 어바인 한인상공회의소 등에서 많은 강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