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일 지났다고 반드시 계약 위반 아냐
여유기간 넘기거나 일방적 변경은 해지 가능
재산상 손해만 인정, 法 "10% 위약금도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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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I로 생성
분양계약서에는 입주예정일이 명시되어 있고, 수분양자는 그에 따라 자금 조달 계획을 짭니다. 실거주자라면 기존 전·월세 기간도 입주에 맞춰서 잔금을 조달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학생을 자녀로 뒀다면 교육 환경이 급변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고요.
투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억 원에 달하는 잔금을 전액 현금으로 납부할 상황이 아니라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당연히 확실한 입주시기를 알려줄 수 있어야 임차인을 구할 수 있습니다.
입주예정일은 불확정기한, 변경 가능
분양계약서에 적힌 것은 '입주일'이 아니라 '예정일'입니다. 예정일은 변동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보통 분양계약서에는 '입주 일자는 00년 00월'이라는 식으로 작성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선분양인 우리나라에서는 청약부터 준공까지 보통 3~4년이 소요됩니다. 그 사이에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따라서 입주예정일이 지났다고 해서 반드시 분양계약을 어긴 것은 아닙니다.
A씨는 강원도 정선에서 분양계약을 맺고 준공예정일을 '2017년 6월로 예정(설계 변경 및 공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며 변경 시 추후 개별 통보)'으로 기재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2017년 6월에는 절반의 공사만 이뤄졌고, 2018년 10월에서야 사용승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A씨는 "준공일이 1년이나 늦었다"며 분양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A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준공예정일은 확정된 기한이 아니라 불확정기한이고, 변경될 수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준공예정일이 지났다고 해서 반드시 계약을 어긴 건 아니라는 겁니다. 공사 진행 상황과 사회·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기간'을 초과했을 때만 분양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물론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기간'도 추상적이긴 합니다). 공사 지연의 원인은 지반 변위로 인한 공정 지연이었는데, 그런 사유는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라서 계약위반이 아니라고 본 겁니다.
사진=뉴스1
여유 기간 지나면 해지 가능
하지만 아무리 예정일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예측 가능성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분양계약서는 보통 '입주(입점)예정일로부터 3개월 이내 입주할 수 없게 되는 경우 분양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합니다. 이 조항은 수분양자에게 최소한 3개월의 여유 기간을 두는 대신, 여유 기간이 지나도 입주가 불가능하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실제로 여수시에서 오피스텔을 청약한 B씨는 2019년 1월로 입주예정일이 명시된 분양계약서에 서명하고 계약금 및 1·2차 중도금을 납부했습니다. 그러나 시행사는 2018년 3월에 '주무관청의 작업 중지 명령에 의한 공사 지연 및 입주 예정 기일 연기 안내'라는 공문을 보내 입주예정일 연기를 통보했습니다. B씨는 이로부터 1년 후인 2019년 2월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항소심 법원은 B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소송에서 공사 지연의 원인은 작업 중지 명령과 시공사 교체로 밝혀졌습니다. 시행사는 시공사 잘못이라며 책임을 부인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분양계약의 당사자는 수분양자와 시행사이므로, 시공사 선정의 책임은 시행사에 있다고 본 겁니다. 결국 시행사의 입주예정일 연기에도 불구하고 계약 해지가 인정됐습니다.
일방적인 입주예정일 변경은 불가
그런데 분양계약서에는 입주예정일이 설계 변경이나 공정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행사의 개별 통보만으로 변경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시행사가 입주예정일을 변경해 버린다면 어떨까요. 표면적으로는 변경된 입주예정일부터 3개월을 초과하지 않았으니 계약 위반이 아니라고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행사와 수분양자의 합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분양계약 또한 시행사가 일방적으로 입주예정일을 바꾸는 것은 부당합니다.
부산에서 오피스텔을 청약한 C씨는 분양계약서에 '입주예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입주하지 못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명시했습니다. 오피스텔은 최초 입주예정일인 2020년 10월로부터 30일이 지나도록 준공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시행사는 입주예정일을 2020년 10월에서 2021년 4월, 다시 2021년 12월로 변경하는 동의서를 제공하며 C씨에게 동의를 요구했습니다. C씨는 분양계약 해제를 요구하며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계약서에 명시된 '최초 입주예정일'을 기준으로 계약 위반을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만약 제한 없이 입주예정일을 변경할 수 있다고 하면, 수분양자의 지위가 불안정해지고 여유 기간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본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공사 지연의 주원인은 지하수 유출 사고와 공사 중지 명령이었습니다. 시행사는 귀책 사유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지하수 유출 및 인접 건물 침하 등 문제는 공사를 진행한 시행사의 책임으로 본 겁니다.
사진=김범준 기자
기납부한 대금과 연 5% 이자 반환, 명시된 위약금도 청구 가능
그렇게 수분양자가 분양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그간 마음고생 하고 밤잠을 설친 정신적 피해도 있겠지만, 재산상 손해만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수분양자는 납부한 계약금과 중도금, 이에 대한 법정이자율 5%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물론 실제로 추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겁니다. 정상 입주를 예상하고 임차인을 맞춰두었으나 입주 지연으로 계약이 해지되면서 위약금을 물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분양계약에는 분양대금의 10%를 위약금으로 명시합니다.
법원도 10%의 위약금을 일반적인 거래 관행으로 보아 정당하다고 판결합니다. 따라서 입주예정일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분양대금과 그 이자, 10%의 위약금까지 물어내야 합니다. 입주가 지연되면 시행사는 다음 수분양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결국 줄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이 될 겁니다.
'유한책임 특약'으로 면책 안 돼, 신탁사도 제한 없이 반환해야
신탁계약을 통해 신탁사가 분양한 경우라면, 신탁사를 상대로 반환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분양계약서에는 신탁사가 '현존하는 신탁재산의 한도 내에서 책임과 의무를 부담한다'는 특약이 있습니다. 이를 '유한책임 특약'이라고 합니다.
과거 위 규정을 이유로 신탁재산 범위 내에서만 반환하면 된다는 판례도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유한책임 특약'의 효력을 부정합니다. 신탁계약의 당사자도 아닌 수분양자에게 불측의 손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탁사도 신탁재산과 관계없이 전액 반환해야 합니다.
김용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ㅣPF사업, 정비사업, 건설하도급 등 부동산 분쟁 전문가다.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을 수료했다. 투자자산운용사와 국가공인 원가분석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고 하도급법과 건설산업기본법을 연구해 업계 최초로 전자책을 출간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전문건설공제조합, 코트라(KOTRA) 및 각종 건설사와 학회에서 강의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을 가졌으며, 베트남 현지에 진출한 건설사에 파견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를 토대로 해외부동산투자 관련 분쟁에도 관여하고 있다. 2024년 대한변협 우수변호사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