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모든 욕구들, 너의 이기심, 그리고 너의 큰 죄업들로"

아르튀르 랭보의 시 〈지옥에서 보낸 한철〉 속 일부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 시인 랭보는 내밀한 욕망을 고백한다. 자유를 갈망하면서.

여기 숨겨진 나의 감각을 일깨우는 근현대의 두 화가가 있다. 김기창과 현덕식, 그들의 욕망을 들여다본다.

격렬하게 몸짓하고 소리 내어 그려내다
김기창 <군마(群馬)>(1955), 종이에 먹, 색; 4폭 병풍, 205 x 408.2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기창 <군마(群馬)>(1955), 종이에 먹, 색; 4폭 병풍, 205 x 408.2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신기하다. 귓가에 들려온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를 직접 들은 적은 없음에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고요한 전시장 가득. 말들은 멈추지 않는다. 운보 김기창의 <군마> 앞에 섰다. 두 번째 만남이었다. 지난 2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수묵별미(水墨別美): 한 · 중 근현대 회화》 전시에서였다. 한걸음 물러났다. '쉽지 않네'라고 생각할 찰나, "더 뒤로 가야 해"라는 옆 사람들의 대화가 들린다. 충분치 않았다. 좀 더 많은 뒷걸음을 보여야 했다. 그림 전체를 찍기 위해서였다. 가로 5m의 대작이기에. 새삼 의문이 든다. 어떻게 그렸을까?

당신은 운보를 알고 있는가? 묻고 싶고 대답을 듣고프다. 그를 정의하는 말은 차고 넘친다. 내게도 묻는다. 담백하게 답하기 어렵다. '천재 화가', '동양화단의 거장', '근현대 한국화의 선구자' 문구들은 화려하다. 반드러운 길이었을까. 섣부른 예측이다. 듣지 못하는 삶이었다. 수식어가 추가되었다. 청각 장애를 넘어선 화가. 그는 김기창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진부하나 처절한 말이다. 골목대장을 자처하던 소년이었다. 열이 나더니 장티푸스에 걸렸다. 소리가 사라졌다. 8살이었다. 학교에 가도 선생님과 학우들의 얼굴만 바라봐야 했다. 거리를 활보하던 남자아이는 교실 한쪽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공책의 모든 여백을 낙서와 그림으로 메웠다. 들리지 않던 공백을 채우듯이. 화가로서의 삶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도망가듯 숨어버린 곳에서. 가혹하고도 찬란하다. 우리는 이를 운명이라 부른다. "매암매암 매암이 울 때에 쓰르람이 쓰르르 흉내냅니다" 운보가 16세 때 쓴 시구절이다. 활자로서 소리를 토해냈다.

어떤 만남은 인생을 결정한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렸다.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이당 김은호의 화숙으로. 수묵의 기본 농담법부터 근대적 채색화까지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았다. 동양화의 세계가 그를 맞이했다. 재능은 화답했다. 마치 기다린 듯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했다. 화숙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이었다. 입선과 특선을 이어가며 이름을 떨친다. "운명(運命)을 고복(古服)하면서 위대(偉大)한 예술(藝術)의 제작(製作)에로 부단(不斷)히 타는 묵묵(默默)한 정열(情熱)의 구현자(具現者)가 잇다." 1937년 일간지에 실린 '운명(運命)의 화가(畵家) 농아(聾啞)의 청년(靑年)· 김기창군(金基昶君)'이라는 기사 속 일부다. 함께 열이 오른다. 뜨거워진다.

머무르지 않았다. 벗어나고 변모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맞이하며. 세밀한 묘사는 절제된 형태로, 섬세한 선은 굵은 먹선으로. 변화는 그림에서 뿐이 아니었다. 침묵을 깨트렸다.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옆에 우향 박래현이 있었다. 세기의 결혼이었다. 들을 수 없고 말하지 못하는 노총각 화가와 유학파 여성 미술학도의 만남. 들썩였다. 1946년, 김기창은 다시 뉴스의 주인공이 되었다.

비현실적 서사의 완성이다. 박래현은 남편에게 '구화술'을 가르쳤다. 모질었다고 한다. 김기창은 자주 짜증을 냈다. 뜻대로 안 되었다. 당연하다. 그 힘듦을 짐작할 수 없다. 연습을 거듭했다.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침내. ‘아’하고 탄성을 내지르고 싶다. 다시 깨닫는다. 함께 하는 노력은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김기창과 박래현, 박래현과 김기창. 두 예술가는 부부였다. 때로 부딪치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아내가 서쪽으로 가면 나는 동으로 우향이 남으로 가면 북쪽으로 갔다." 1985년 TV 인터뷰에서 운보가 밝힌 바다. 부부 화가는 서로를 닮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예술가로서의 귀한 욕망이다.

진하던 색은 담백해졌다. 사실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형태를 지워냈다. 해방을 맞았다. 스승의 그림자를 걷어냈다. 덜어냄은 자유로워짐과 동의어가 아닐까. 1950년대 김기창은 새로운 동양화로 나아갔다. 자신 있게 실험했다. 움직이는 입술과 함께. 꿈틀대던 갈망이 폭발하는 중이었다.

"참관자(參觀者)들은 마치 말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들이 뛰어 돌아다니면서 장난하는 양(樣) 착각(錯覺)을 일으킬 지경이다." '미술(美術)의 신구양식(新舊樣式) 외국인(外國人)이 본 국전평(國展評)'이라는 기사 속 <군마>에 대한 평이다. 발견했다. 분출하는 야망을. <군마>는 선언한다. 움츠리지 않으리라(자신 있게 살아가겠다고.) 여섯 마리의 말들은 제멋대로다. 선두에 선 말은 다급하다. 단번에 알 수 있다. 앞서가기를 바라고 있음을. 흘긋 보는 한쪽 눈에 욕심이 드러난다. 한껏 꺾은 채 뒤돌아보는 고개는 조바심을 숨기지 못한다. 초조해진다. 그 마음을 알기에. 흑마는 뛰어올랐다. 방향을 비틀었다. 자의적으로. 무리에서 이탈하겠다는 표현일까. '가라'고 응원을 건네본다. 말들은 뒤엉키고 날뛰고 있다. 그 무질서함이 싫지 않다. 숨지 않는 감정들이 통쾌하다. 자유로움이 진동한다. 말갈기가 휘날린다. 거세다. 김기창의 몸짓이다. 해방과 전쟁의 시기를 넘고 들리지 않는 세계를 딛고 나아가리라는 다짐이다. 꾸밈없는 욕망이 솟아난다. 말들이 포효한다. 함께 달리고 싶다.

소리를 열망하는 삶이었다. 평생토록. <정청(靜聽)>(1934) 속 단아한 여성들은 음악 감상 중이다. 축음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스무 살 청년이었던 운보의 마음은 어땠을까. <싸움>(1954~55) 속 사람들은 언쟁에 한창이다. 가쁜 호흡이 느껴질 듯하다. 숨이 차다. <군작(群雀)>(1959)을 보는 순간 눈과 귀가 동시에 어지럽다. 참새들의 지저귐이 폭발한다. 김기창은 숨기지 않았다. 욕망을 드러냈다. 거침없이. 그의 삶은 증명한다. 자기 연민에 묻히지 않고 나아가는 예술가의 찬란한 세계를.

아내 박래현이 먼저 떠났다. 57살의 젊은 나이였다. 운명은 이처럼 변덕스럽다. 기적을 선물했다가 송두리째 앗아간다. 매정하다. 지지 않는 삶을 이어갔다. 김기창은 그 후 25년을 더 살았다. 평생 1만5000여 점을 남겼다. 그리움을 채워내기 위한 여생이 아니었을까.

대화가 들린다. 김기창과 박래현은 붓을 들고 작업에 한창이다. 그가 이제는 소리를 욕망하지 않았으면. 마음껏 말의 울음소리를 듣기를. 부부가 다시 만난 그 세계에서.

녹아내리는 검은 욕망을 바라보다
현덕식 <유시도(流澌島)>(2024), 한지에 먹, 330 × 650cm, 현덕식 제공
현덕식 <유시도(流澌島)>(2024), 한지에 먹, 330 × 650cm, 현덕식 제공
솔직하게 말하자면, 비엔날레에 들뜨지 않는다. 미술사 전공자로서 나태하다고 한다면 굳이 변명하고 싶지 않다. 난해함과 거대 서사가 내게 흥미롭지 않다. 지난 12월 출장으로 제4회 제주비엔날레를 찾았다.

《아파기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이라는 주제였다. 제주도립미술관을 찾았다. 전시장의 동선을 따라 이동했다. 비엔날레의 상징인 설치작품들을 지나쳤다. '내 취향은 아니네'라고 다시 확인하면서. 장막을 열어젖혔다. 기대 없이. 기습이라 표현하겠다. 가로 6m가 넘는 대작이다. 압도당한다. 거대하게 흐른다. 현덕식의 <유시도>를 마주한 첫 느낌이다. 검고 투명하다. 뒤엉킨 물질들이 흐른다. 무엇일까? 호기심의 세포들이 올라온다. 두근대기 시작한다.

영화관 스크린을 홀로 독차지 한 기분이다. 한 장면에 정지 화면을 눌러둔 채. 닫힌 공간은 긴장을 높인다. 커다란 캔버스에 집중해본다. 액체들이 얽혀 움직인다. 왼쪽에서부터 일어나더니 다시 오른쪽에서 몰려온다. '할 수 있겠어?'라고 묻는 듯하다. 초조해진다. 캡션의 설명글이 보인다. 당장은 읽고 싶지 않다. 오기였다. '이 거대함에 지고 싶지 않다는.' 그때였다. 다른 존재가 다가온다. 검은 화면이 말을 걸었다. 어둡고 고요하게. 질척이는 물질과 물을 덮으면서. 달뜬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제 해석을 시도해 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하나가 있다. '그래 여기는 섬이겠지.' 밤시간을 지나는 어느 곳일지도.

까만 화면을 응시하던 중이었다. 물끄러미. 떠올랐다. 교과서에 만화책을 끼워 보고 있는 단발머리의 여학생이다. 나였다. '하늘은 붉은 강가'를 보고 있다. 조마조마하다. 선생님에게 들킬까봐서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이 황태후의 마력인 검은 물을 또 마셔버려서다. 주인공 유리는 또다시 위험하다. 검은 물을 삼킨 사람들은 선하고 의로운 주인공을 괴롭힌다. 바싹 속이 탈 거 같다. 새까맣게. '검은 물을 부른 건 그들 자신이야.' 화가 치밀었다. 악역인 여주인공의 대사가. 가증스러웠다. 어른이라 설정된 나이에 다가가며 이따금씩 '하늘은 붉은 강가'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인물들은 검은 물을 마시고 드러냈을 뿐이었다. 자기 안의 뒤틀린 속내를. 누구에게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악의 그림자였다.

<유시도> 속 물질들에 대한 답이 보인다. 아니, 모티프의 실제 대상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더 이상. 결국, 나이고 너이고 매일 맞닥뜨리는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여기 있다. 움직임을 포착했다. 숨어있을까, 비집고 올라가 볼까. 표면에 이르지 못하거나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는 덩어리들은 움츠렸으나 움직이려 한다. 부끄럽다. 들키고 싶지 않은 노골적인 욕심이 들킬까봐. 높이 솟은 채 헝클어진 선들 사이로 얼굴들이 보인다. 자신을 기어이 드러내 보이고픈. 그 누구보다 나를. 서글퍼진다. 검은 마물들의 집합 같기에. 아우성이 들려온다. 어느새. 고요했던 밤섬의 민낯은 이토록 요동친다. 누추한 욕망들이 들끓는다. 도망치고 싶다. 뒷걸음질로.

"얼음이 녹아 물로 합쳐지면서 본질로 되돌아가는 인간을 탐구했다." 현덕식의 <유시도>에 대한 설명이다. 눅진하게 흐르는 물질들은 얼음이었다. 그는 다시 대답한다. 인간 내면의 욕망들을 그리고 싶었단다. 답을 알았으나 내 안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얼음들은 왜 이토록 투명하게 빛을 내는 것일까. 나의 욕망은 캄캄할 뿐인데. 자꾸만 고개를 숙이게 된다. 형태가 일그러지는 얼음덩어리들을 보기 힘겹다. 마음이 무너져 간다. 우리는 자주 누군가를 미워한다.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크고 작은 정서적 폭력들이 여기저기 존재한다. 이에 평온한 사람은 없다. 다만 숨기고 감춰둘 뿐이다. 짓이겨진 속내를 그대로. 투명한 얼음 속 응축된 채 패인 상처를 본다. 검은 욕망이 아우성친다. 억지로 숨어 있고 싶지 않다고. 눈앞 가득 펼쳐진 <유시도> 속 잔잔한 물결이 야속하다. 캄캄한 마음만을 남겨두어야 할까.

축축해져 간다. 목덜미부터 젖는 듯하다. 녹아서 물이 되려는 얼음 안에 잠겨 버렸다. 그때였다. "완전 멋지다. 물이 되고 싶은가 봐." 명랑하고도 살짝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다. 장막을 걷고 여학생들이 들어왔다. 커다란 캔버스 앞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이내 장난을 주고받으며 몸짓한다. 팔을 들고 흔들며 몸을 비틀며 녹아내리는 얼음을 따라 한다. 경쾌함에 웃음이 난다. 마음이 풀려간다. 어느새. 퍼뜩 생각이 변해간다. 못난 감정들을 마주하겠다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겠다. 달래지지 않는 욕망들을. 이 또한 나이기에.

누군가가 또 입장했다. 장막이 걷혔다. 그 틈으로 햇살이 스며든다. 얼음 조각들이 반짝인다. 빛을 받아서. 섬에 가고 싶다. 이제 곧 봄을 맞이할. 밤바다를 보며 <유시도> 속 녹아내리는 얼음을 떠올리고 싶다. 물이 되는 꿈을 꾸며.

나와 너의 욕망들에게

튀어 오르는 내 속의 욕망들에게 말을 건네 본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어." 당신도 부디 자책하지 말기를. 작은 힘듦도 크게 느껴졌던 추운 날들이 지나간다. 이제 곧 봄이다.

우진영 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