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찾은 일본 도쿄 시부야의 한 정형외과. “손목부터 팔까지 통증이 있다”고 하자 의사는 건초염, 터널증후군, 목 디스크 가능성 등을 설명한 뒤 경추 엑스레이 검사를 권유했다. 그는 검사 결과 “문제없다”며 스테로이드 주사와 처방전을 썼다. 총청구액은 2064엔(약 2만원). 전체 진료비 6880엔 중 건강보험 본인 부담(3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병원에는 한국의 도수치료 같은 ‘퍼스널 재활’을 안내하는 브로슈어도 비치돼 있었다. 가격은 한 시간에 1만8000엔. 의사에게 “퍼스널 재활은 필요 없냐”고 묻자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자유 진료”라며 “보험 진료와 병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자유 진료까지 하면 보험 진료도 전액(6880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혼합 진료 원칙 금지

일본에선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진료(보험 진료)와 미용·성형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자유 진료)를 병용하는 ‘혼합 진료’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안전성·유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비급여 진료가 마구잡이로 동시에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비급여 진료 때 실손보험금을 받기 위해 급여 진료를 병행하는 한국과는 정반대다. 혼합 진료는 일본에서 유래한 용어지만, 한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다.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는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찾은 신주쿠의 한 내과도 혼합 진료가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내과 프런트엔 ‘자비 진료 일람’이라는 제목 아래 한국의 영양주사 같은 백옥(4400엔), 비타민(3300엔), 숙취 수액(2500엔), 태반(1100엔) 등 여러 주사가 안내돼 있었다. 의사에게 “영양주사도 맞고 싶다”고 하자 “이번엔 필요 없다. 원하면 다음에 자유 진료만 하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도 일부 ‘동네 병원’에선 자유 진료를 원하면 보험 진료는 전액 본인 부담 대신 30%만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환자 부담이 너무 커져서다. 그러나 ‘대형 병원’에선 절대 불가다. 대형 병원은 오히려 고도 기술을 쓰는 ‘선진 의료’ 등 정부가 인정한 진료 분야에선 혼합 진료가 가능하다. 중입자 암 치료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는 30%, 선진 의료는 전액 환자 부담이다.

◇실손보험 필요 없는 일본

일본 병원에선 한국처럼 “실손보험이 있느냐”고 묻는 일도 없다. 민간 보험사에 그런 상품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민간 보험은 미리 정한 금액만 지급하는 정액 상품이 대부분이다. 건강보험의 보조 역할에 그치는 셈이다. 도쿄 최대 한인타운 신오쿠보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한국인 의사는 “일본은 건강보험 보장률이 80%대에 달해 애초 한국의 실손 같은 상품이 필요 없다”며 “의료 쇼핑, 과잉 진료 문화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혼합 진료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진료 자유도를 높이고, 환자의 선택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의료계가 보험 진료 외에는 거의 다루지 않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다른 나라에서 정착하면 보험 진료에 도입하는 구조여서 선진적 치료를 원하면 해외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과 의료계는 무분별한 혼합 진료 확대에 반대한다. 안전성·유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의료 행위가 조장될 것이라는 게 의료계 우려다. 환자의 비급여 의료비 부담 확대, 소득 수준에 따른 의료 불평등을 지적하는 의료인도 상당수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