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파이낸셜타임즈(FT)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술품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기관들이 대출자들에게 ‘마진콜’을 발동한 것입니다. 미술시장 침체로 담보품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출자들은 현금을 지불하거나, 더 비싼 그림으로 교환하거나, 추가로 담보물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미술품 대출 기관들은 대출자가 소유한 미술품에 대한 담보권을 가지고 있기에, 채무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강제 청산도 가능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스콧 밀레이젠 소더비 파이낸셜 서비스의 글로벌 대출 담당자는 마진콜을 발동한 이유에 대해 “지난 24개월 동안 가치가 상승한 미술품 카테고리는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더비의 미술품 대출 규모는 약 16억달러이며, 지난해에는 이를 담보로 한 채권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크리스티는 약 6억달러 규모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사유리 가네폴라 미술 금융 부문 글로벌 전무이사도 마진콜이 ‘소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유동화의 매력… 미술품 담보대출 급성장

마진콜이 발동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물론 글로벌 자산시장 전체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미술시장도 예외가 없습니다만, 좀 더 입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제 청산 도미노에 따른 시장 붕괴 전조’로 바로 건너뛰기엔 미술품이라는 자산 그 자체의 특성도 있고, 이로 인한 시장 성격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미술품 담보대출은 지난 3년간 급성장했습니다. 딜로이트와 아트테틱(Art Tatic)이 발간한 '아트 앤 파이낸스 리포트 2023(Art and Finance Report 2023)'에 따르면 미술품 담보대출 시장은 2021년 24억~28억2000만달러, 2022년 26억3000만~31억달러, 2023년 29억2000만~34억1000만달러 규모로 추정됩니다. 2024년엔 31억4000만~37억달러로 추정되고, 2025년엔 최대 40억40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술품 담보대출 수요는 자금 유동화 필요에서 시작합니다. 작품 가격이 워낙 높은데다 시장 흐름도 많이 타기 때문에 급하게 되팔아 현금을 마련하기보다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이라 판단하는 것이죠. 레버리지를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패밀리 오피스(family office·초고액 자산가들의 자산 배분, 상속·증여, 세금 문제 등을 전담해 처리해주는 업체)나 HNWI(High Net Worth Individuals·다액순자산보유개인)는 미술품 담보대출이 자산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핵심 전략입니다. 골드만삭스의 패밀리 오피스 투자 통찰력 보고서에 따르면 패밀리 오피스의 38%가 컬렉션을 구매하고 있고, 그중 예술품이 27%, 와인이나 항공기가 각각 14%를 차지합니다. 미술품 전문 담보대출 회사인 아테나 아트 파이낸스 그룹(Athena Art Finance Group)의 레베카 파인 매니징 디렉터는 ‘아트 앤 파이낸스 리포트 2023’에서 “예술품을 투자자산으로 간주하는 상황에서 자산을 유동화 시킬 필요가 커졌으며, 미술품 컬렉션을 관리하는 패밀리 오피스는 우리의 주 고객”이라고 설명합니다.
딜로이트와 아트테틱(Art Tatic)이 발간한 ‘아트 앤 파이낸스 리포트 2023(Art and Finance Report 2023)' 일부.
딜로이트와 아트테틱(Art Tatic)이 발간한 ‘아트 앤 파이낸스 리포트 2023(Art and Finance Report 2023)' 일부.
젊은 컬렉터들의 등장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미술품을 투자로 보기보다 열정 자산으로 보는 부모 세대 컬렉터들은 대출을 통해 구매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레베카 파인 매니징 디렉터는 “젊은 세대는 고가 거래에서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며, 미술품을 투자 포트폴리오 중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자금조달의 증폭 효과를 이해하고 이를 최대한 활용한다”고 설명합니다. 미술품의 약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대출받는다면, 구매력이 두 배로 늘어나는 셈이니까요.
소더비 경매 현장. / 사진제공. 소더비
소더비 경매 현장. / 사진제공. 소더비
미술시장이 고꾸라지는데 미술품 대출은 성장한다고?

미술품 담보대출이 제공하는 ‘레버리지’라는 마술지팡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술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상승세를 구가했습니다. 심지어 시장이 식어가는데도 미술품 대출은 증가했습니다. 아트바젤은 2024년 여름 아트마켓 기고문에서 이 같은 아이러니한 현상에 대해 1)대출 기관들은 개별 케이스(작가와 그 작가에 따른 시장)에 따라 대응하고 2)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이 자산 관리에 큰 영향을 주는데 미술품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잠재적 헤지(위험 회피) 기능이 있고, 담보 대출은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 3)세대 변화 등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예술 금융을 주도하는 것으로 3L(Liquidity, Litheness, Long-term planning·유동성, 유연성, 장기계획)을 제시했습니다. 이전 경매와 미술품 판매를 이끌던 3D(Debt, Divorce, Death) 대신에요.

아이러니가 반전되는 데는 1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시장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시장 기반이 무너지는데 일종의 파생상품이 건실할 리가 없죠. 물론 시장이 잠시 하락세를 겪을 때, 급하게 매도하며 손해를 보는 것보다 일부 유동화(대출)를 통해 이를 넘길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감당 가능한 하락세를 넘어서면 둑이 무너지지요.

대출 기관들은 더 이상 미술시장을 덮어놓고 믿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마진콜’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시장이 감당 가능하지 못한 수준으로 쪼그라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글로벌 경매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총매출은 각각 57억달러와 60억달러로 전년 대비 6.6%, 23% 줄어든 수치입니다. 소더비의 경우 경매 매출이 28% 줄어들어 46억달러에 그쳤고 특히 미술품 경매는 전년보다 30% 이상 줄어든 38억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전체적인 규모가 줄어든 데에는 고가 작품 거래 부진이 꼽힙니다. 지난해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의 1954년 작 '빛의 제국(Empire of Lights)'입니다. 2024년 11월 20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2116만달러에 낙찰됐는데, 지난해 유일하게 1억달러 이상에서 거래된 작품입니다. 2022년 경매 상위 10개 작품의 낙찰 총액은 약 7억6000만달러인데, 2024년엔 약 3억1200만달러까지 절반 넘게 줄어들었습니다. 시장이 위축되어 비싼 작품이 자신이 원하는 금액에 거래되지 않을 것이 뻔하니 컬렉터들이 작품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시장이 악화되었다는 것이죠.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 / 사진제공. 퐁피두센터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 / 사진제공. 퐁피두센터
다른 의미는 미술품 담보대출의 변화(진화)입니다. 미술품 담보대출이라는 상품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 규모가 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미술자문회사인 캐델(Cadell)의 캐롤라인 사얀(Caroline Sayan)은 아트바젤의 아트마켓 기고문에서 “2008년 금융위기 때 미술품과 관련된 대출은 위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제3자 보증도 겨우 등장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금융이 미술시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형성하고, 이에 대응하고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여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의 금융상품은 과거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진화했죠. 대출 기관들은 ‘블루칩 미술품은 경기와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우상향한다는 믿음’을 더 이상 덮어놓고 따르지 않습니다. 시장 분위기에 따라 ‘블루칩 미술품’의 범위가 달라지거든요. 요즘처럼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는 모네나 르네 마그리트 같은 미술사적 평가가 이미 끝난 모더니즘 작가들 정도만이 블루칩으로 평가되는 상황입니다. 그만큼 미술품은 시장 분위기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변동이 심한 시장인 셈입니다. 대출 기관들도 이점을 잘 알기 때문에 담보가치 재평가를 더 자주 하고, 대출 규정도 좀 더 엄격하게 바꾸고 있습니다. 그만큼 분쟁도 많아지고 있지만, 기관들 입장에서는 좀 더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코리 로커펠러(Corey Rockafeler) 자산 대출전문가는 “미술이 시장 동향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술시장은 신중한 매수와 대출 관행으로 바뀔 수 있으며, 실사와 가치평가의 정확성에 더 중점을 둘 것”이라며 “불확실성의 시기는 미술시장과 금융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향후 수년간 미술시장의 궤적을 바꿀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미술시장과 금융의 만남이 극히 제한적인 우리 한국 시장에선 ‘미술품 담보대출’은 아직 먼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의 변화는 분명 우리 시장의 지형도를 부지불식간에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미리 준비하는 혜안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한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