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함께하는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바그너를 불러내다
벚꽃과 함께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이 돌아왔다. 3월 14일 금요일, 베를린필 단원들의 실내악 연주로 올해도 축제가 시작되었다.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은 일본에서 진행되는 클래식 음악 축제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도쿄문화회관을 중심으로 약 한 달간 진행되는데, 도쿄문화회관은 벚꽃 명소 중 하나인 우에노 공원 인근에 위치한 공연장이다. 원래도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지만, 특히 벚꽃 시즌엔 도쿄 시민들뿐만 아니라, 도쿄를 찾은 관광객들까지 여기저기서 피크닉을 즐기는 장소다.

이제 축제가 시작되면 이곳 우에노역 주변은 온통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한다. 우에노 지하철역에는 벚꽃 장식을 한 피아노가 등장해 누군가가 연주해주기를 기다리며, 페스티벌을 알리는 귀여운 버스들도 돌아다닌다. 벚꽃 나무 아래엔 거리로 나온 예술가들이 악기를 연주한다. 꽃구경을 나온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벚꽃과 함께하는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바그너를 불러내다
15년 만에 돌아온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

도쿄문화회관 안쪽도 공연 준비로 분주하다. 올해 가장 주목받는 공연은 2010년부터 진행해온 바그너 시리즈다. 매년 바그너의 작품을 한편씩 무대에 올리는 시리즈다. 지난해는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연주되었고, 올해의 주인공은 ‘파르지팔’이었다. ‘파르지팔’은 2021년에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취소되면서 2025년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축제에서 마지막으로 연주된게 2010년이니 15년 만에 다시 찾아온 작품이다. 올해도 지휘는 마렉 야노프스키가 맡았고, 연주는 NHK교향악단이었다. 바그너 시리즈를 오랜 시간 책임져 온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기도 하다.

마침내 파르지팔의 주요 동기들이 연주되며 서막을 열었다. 매년 바그너 음악을 해온만큼 NHK교향악단의 바그너 기초체력은 아주 뛰어났고, 이들은 마렉 야노프스키와 함께 일류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음악을 연결하는 순간들이 아주 매끄럽고, 그 순간 마다의 표현도 뛰어났다. 바그너의 수많은 주제들이 한꺼번에 섞여도 소리가 명확했고, 층층이 소리 레이어를 쌓아 올려 관객들을 압도시켰다. 매 순간 앙상블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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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감동적이었던 건 마렉 야노프스키의 지휘봉 아래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이 감정의 파도를 함께 넘는 장면들이었다. 특히 2막의 감정선은 아주 섬세하게 연주되었다.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은 사소한 부분들까지 모두 정교하게 연주하며, 이들은 바그너 음악에 헌신했다. 3막까지 음악이 연주되는 긴 시간 동안 단원들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야노프스키는 단원들에게 연신 엄지를 척 꺼내 보이며 긴 항해를 독려했다. 이날 악장을 맡은 순나오 고코(Sunao Goko)의 뛰어난 리더십도 한몫했다. 그는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무대에 홀로 나와 연주를 해보며 중요한 파트를 점검했다. 5시간에 걸친 ‘파르지팔’에서 악장을 맡는다는게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지 느낄 수 있었다.

‘파르지팔’에 출연한 가수들의 활약도 놀라웠다. 구르네만츠를 맡았던 타레크 나즈미는 그중에서도 일등공신이었다. 모든 파트를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구르네만츠의 다양한 성격을 부각시켰다. 최근까지도 뮌헨에서 구르네만츠를 맡아왔기 때문에 지금 이순간 그가 가장 잘하는 역할이었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도 굉장히 설득력 높은 암포르타스를 연기했다. 노래도 노래지만, 연기도 뛰어났는데, 무대에서 걸어 나가는 장면마저 섬세한 연기를 하며 관객들의 몰입을 높였다. 마찬가지로 가장 최근까지도 암포르타스 역할을 맡았기에 지금 이순간 가장 잘하는 역할이다. 이미 지난해 독일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같은 역할로 뛰어난 노래와 연기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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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없는 콘서트 오페라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명디자인도 섬세하게 이루어졌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조도와 색감이 바뀌었다. 오래 기억이 될만한 장면은 마지막 장면인 구원의 순간이었다. 등장인물들이 구원에 이르면서, 동시에 서서히 공연장의 조명이 밝아지는 장면을 연출했다. 덕분에 5층 객석에 배치된 합창단의 노래는 더욱 성스럽게 들렸고, 마침내 마지막 음이 완전히 소멸한 자리엔 환한 빛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렇게 무려 5시간에 걸친 공연은 장대하게 마무리되었다.

마법 같은 연주력에 일본의 관객들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에게 진심 어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객석의 불이 완전히 켜지며 공연 종료 사인을 알렸지만, 관객들은 박수를 이어가며 지휘자를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마렉 야노프스키는 환호에 못 이겨 다시 한번 무대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멋진 연주는 NHK교향악단의 단원들 덕분이라며, 연신 단원들에게 공을 돌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어린이를 위한 또다른 바그너

축제 중간중간마다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바그너 시리즈를 진행하는 것도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의 매력이다. 올해는 앞서 연주된 ‘파르지팔’의 어린이 버전을 준비했다. 70분으로 축약된 어린이 버전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함께하는 완성도 높은 공연이다. 아이들이 무대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들도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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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효과를 표현하기 위해 반짝이는 화려한 종이 가루를 사용했으며, 주인공 파르지팔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주문을 외칠 것을 요청했다. 또 어린이들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회차별 관객 수를 제한하고, 최대한 가까운 자리에서 무대를 경험하게 했다. 70명 안팎의 관객을 수용하니까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관객들보다 숫자가 더 많았다. 이들은 미래의 고객들인 아이들에게 최고의 클래식 공연을 보여주며, 클래식 음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게 아시아에서 가장 큰 클래식 시장을 가진 일본의 저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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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도 축제는 계속된다. 마렉 야노프스키가 다시 한번 NHK 교향악단과 베토벤 ‘장엄미사’를 무대에 올리고, 리카르도 무티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를 지휘한다. 오페라도 이어진다. 푸치니 시리즈로는 지휘자 옥사나 리니브가 ‘나비부인’을 선보이고, 지휘자 조너던 노트가 요한 슈트라우스 ‘박쥐’를 전막으로 선보인다. 그의 최고의 파트너 도쿄 심포니가 함께한다. 그밖에도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 키릴 게르슈타인, 바리톤 토마시 코니에츠니 등 지금 시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함께하며, 마지막 벚꽃잎이 떨어질 때까지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

도쿄=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