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 유행에 제조업자 늘었지만
자본력 부족하고 마케팅 약해
대기업, 양조장과 상생 협력 필요
K푸드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며 K푸드와 어울리는 전통주에 대한 관심과 니즈가 점차 커지고 있다. 중국 바이주(백주), 일본 사케 등과 달리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전통주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중소 양조장이 난립한 전통주산업을 혁신하고 글로벌 마케팅·유통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 ‘메기’로 나서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에서도 존재감 작은 K전통주
7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법상 전통주 매출 총계는 1475억원으로 전체 주류 매출(10조700억원)의 1.47%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법상 전통주에 속하는 민속주, 지역특산주에 포함되지 않는 탁주(막걸리), 증류식 소주 등을 모두 합친 ‘광의의 전통주’(전통주류) 기준 매출은 1조3000억원이었다. 전통주류 수출액은 2404만달러(약 352억원)로 전체 주류 수출액(3억6500만달러)의 6.6%에 불과했다.
한국 전통주가 국내 시장에서조차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반면 바이주, 사케 등 글로벌 주요국 전통주는 산업화에 성공하며 각국을 대표하는 명주(名酒)로 자리 잡았다. 2023년 기준 바이주와 사케 수출액은 각각 8억2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 3억달러(약 4400억원)에 달했다. 한국 전통주류 수출액과 비교하면 각각 34배, 12배 규모다.
전문가들은 한국 전통주의 산업화 수준이 낮은 데다 당국 규제 등으로 안정적인 생산·유통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승주 세종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가양주(家釀酒) 문화 영향으로 집집이 다양한 술이 있었지만 엄격한 주류 면허 규제 등으로 일부만 중소 양조장으로 성장했고, 그들마저도 해당 지역에서 민속·특산주를 판매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최근 전통주가 주목받은 계기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이었다. 당시 2030세대를 중심으로 ‘혼술’이 유행하며 프리미엄 막걸리와 증류식 소주 등 전통주를 찾는 소비자가 크게 늘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체 주종 중 전통주 음용 비중은 2017년 16.2%에서 2023년 21.2%까지 높아졌다.
전통주가 각광받자 제조업자가 2020년 1273개에서 2023년 1812개로 단기간에 급증했다. 증류식 소주인 ‘원소주’와 같은 일부 성공 사례도 나왔다. 하지만 제조업체 대부분이 5인 미만 영세기업 수준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
일부 중소 양조장은 원재료와 관련한 공급망 이슈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충북 충주에서 증류식 소주 ‘가무치’를 생산하는 한경자 다농바이오 대표는 “저희 제품은 쌀과 사과를 주 원료로 하는데 가격이 단기간 급등해 확보가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누군가 자본력을 투입해 원료를 생산하는 농가와 양조장을 잇는 공급망을 구축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中·日은 대기업이 혁신 선도
해외에서는 선도 기업이 과감하게 투자해 전통주 산업화에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다. 바이주 기업인 중국 구이저우마오타이(귀주모태주)가 대표적이다. 고도수 증류주인 마오타이를 생산하는 이 업체는 지난해 매출 1738억위안(약 34조8000억원), 순이익 857억위안(약 17조2000억원)을 올렸다. 시가총액은 2조위안(약 400조원)으로 글로벌 음료업체 가운데 1위다. 일본 사케산업에도 하쿠쓰루, 다사이 등 해외 시장에 널리 알려진 대표 브랜드가 여럿 있다.
국내 중소 전통주 양조장 사이에서도 대기업 참여를 통한 산업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경자 대표는 “중소 양조장은 K푸드와 글로벌 페어링(조합) 마케팅에 나서고 싶어도 자본력 부족 등으로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대기업이 양조장과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완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 연구팀이 지난달 전통주 양조장 51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선도 기업의 전통주 산업 참여에 대한 긍정적 견해(응답률 68.6%)와 상생 협력 모델 참여 의사(70.6%)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