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사진=AFP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사진=AFP
유럽연합(EU)이 7일(현지시간)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를 부과한 미국에 보복 조치를 발표하기 전 상호 무관세 내용을 담은 최후의 협상을 제안했다.

EU는 이번 주 확정할 예정인 철강 관세 보복 계획도 당초보다 축소 시행하기로 결정했다며 협상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발신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와 공동회견을 통해 "미국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실제로 (미 측에) 상호 무관세(zero-for-zero tariffs)를 제안했다"고 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 안보 담당 집행위원에 따르면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공산품이 상호 무관세 적용 대상이다.

그는 이어 열린 별도 기자회견을 통해 "2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첫 회동 때부터 가능성을 검토해왔다"고 답했다.

자동차 관세와 관련해서는 "승용차는 EU가 (대미 수출 시) 더 낮은 관세를 적용받는 건 사실이지만, 픽업트럭의 경우 미국의 관세율이 최대 25%"라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문제라면 대화를 통해 모두 0% 관세율로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U는 현재 미국산 자동차에 10%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EU산 자동차는 미국 수출 시 2.5%로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아왔다. 하지만 이달 3일 미국이 자동차 관세를 발효하면서 25% 포인트 추가돼 27.5%로 인상됐다.

EU 27개국은 이날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무역장관 회의에서도 미국과 협상이 우선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집행위는 이날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보복관세 안을 당초 계획보다 축소할 것이라는 구상도 밝혔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긴밀히 회원국들의 의견을 수렴했기 때문에 (처음 발표한) 260억 유로 규모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로이터 통신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집행위는 회원국들에 미국산 일부 제품에 대해 내달 16일과 올해 말인 12월 1일, 두 번에 나눠 추가 관세를 발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당초 이번 달부터 당장 미국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또 관세 부과 대상으로 꾸준히 언급됐던 미국산 버번위스키 등 주류 품목도 목록에서 삭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버번위스키는 EU가 관세 부과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EU산 주류에 2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민감하게 반응했던 품목이다.

집행위는 당초 오는 15일과 내달 15일 철강 관세 보복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다. 구체적 품목과 최종 관세율은 오는 9일 회원국 표결을 거쳐 확정돼야 확인할 수 있다. 최종안은 15개국 이상이 반대하지 않으면 집행위 제안대로 가결된다.

EU는 상호관세 및 자동차 관세에 대한 대응 조치는 아직 고심 중이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모든 옵션이 고려 대상"이라고 말했다.

다만 협상 전망은 밝지 않다. 미국이 기존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입장 발표가 나온 직후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은 미 CNBC 방송에 출연해 "EU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은, 그런 발표를 할 때는 비관세 장벽을 낮추겠다는 점도 밝혀달라는 것"이라고 반응했다.

나바로 고문은 "당신들(EU)의 19% 부가가치세(VAT·이하 부가세)를 낮추고 세계무역기구(WTO) 결정을 존중해 우리의 돼지고기, 옥수수, 소고기를 유럽에 수출할 수 있게 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EU의 부가세뿐 아니라 농식품 부문 각종 수입 규제를 철폐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고자세를 유지했다. 그는 "부가세는 우리 회원국들을 위한 중요한 수입원"이라며 "부가세 체계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른 부문 비관세 장벽에 대해선 "논의할 준비가 됐다"며 "결국은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방미 중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EU가 미국 공산품에 대해 무관세를 제안한 것이 충분한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아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입장을 내놨다.

그는 "여러 국가가 당장 관세를 없애고 싶어 한다"라면서 "관세는 큰 부분이지만 거기에는 다른 큰 부분이 있고 그것은 (비관세 무역) 장벽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민형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