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리밸런싱(사업 재편)을 지켜보는 국내외 투자은행(IB)들은 깊은 한숨을 쉬고 있다. 지난해부터 SK그룹이 거래를 중개하는 IB를 따로 선임하지 않고 잠재 후보들과 ‘직거래’ 방식으로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가 SK 매물을 독식하고 있다.

8일 IB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SK스페셜티에 이어 SK실트론 매각에서도 재무자문을 제공하는 IB를 선정하지 않았다. 외부 도움을 받지 않고 인수합병(M&A)을 담당하는 포트폴리오매니지먼트(PM) 부서에서 인수 후보들과 직접 접촉해 거래를 진행하고 있다.

3~4년 전 저금리 시절 M&A 매물을 쓸어 담던 SK그룹은 IB들의 최우선 접촉 대상이었다. 하지만 M&A로 재무적 부담이 커지자 IB들에 일종의 ‘출입금지령’이 내려졌다.

SK그룹 내에선 IB 도움 없이도 SK스페셜티를 한앤컴퍼니에 2조6300억원에 깔끔하게 매각하자 ‘IB 무용론’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현재 2조원대 거래로 꼽히는 SK에코플랜트 환경사업부문 매각도 삼일PwC가 회계 자문만 돕고 있다.

한앤컴퍼니도 기업 인수 과정에서 자문사를 선임하지 않고 직접 대응하는 PEF로 유명하다. 한앤컴퍼니는 이번 딜까지 마무리되면 8년간 SK 매물만 10곳 인수하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운다.

한앤컴퍼니는 2018년 SK의 중고차 사업 인수를 시작으로 그해 SK디앤디와 SK해운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후 2020년 SK에코프라임(SK케미칼 바이오디젤 사업), 2022년 SK마이크로웍스(SKC 필름 사업), 2024년 솔믹스(옛 SK엔펄스 파인세라믹스사업부)와 SK플라즈마 소수지분(약 27%)에 이어 올해 SK스페셜티를 품었다. 한앤컴퍼니는 반도체 특수가스 제조사 SK스페셜티에 이어 웨이퍼 제조기업 SK실트론까지 인수해 반도체 필수 소재 분야에서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로 위기를 맞은 MBK파트너스의 공백기를 노려 한앤컴퍼니가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차준호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