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문소리 배우의 <여배우는 오늘도>(2017), 이정재 배우의 <헌트>(2022), 하정우 배우의 <로비>(2025), 이기혁 배우 연출, 이동휘 배우 제작의 <메소드연기>(개봉 일자 미정) 등 배우가 직접 연출하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배우 겸 감독들의 작품은 200억이 넘는 대형 상업영화에서부터 독립 단편까지 점점 더 다양한 스케일과 장르로 극장과 영화제를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4월 30일에 개막을 앞둔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다. 특히 영화 전공 학생들과 시네필 사이에서 수년간 회자되었던 단편 <병훈의 하루>를 연출한 이희준 배우의 두 번째 중편 영화 <직사각형, 삼각형>과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객원 프로그래머로 활약하는 이정현 배우의 첫 데뷔 단편 <꽃놀이 간다>가 그것이다. 두 작품 모두 '코리안 시네마' 섹션에 공식 초청되었다.

이희준 배우의 연출작 <직사각형, 삼각형>

영화는 46분의 중편으로 감독의 전작 <병훈의 하루>(2018) 보다 무려 세 배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통해 그려진다. <병훈의 하루>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병훈의 힘겨운 나들이를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하게 재현한다면 이번 작품은 다수의 배우가 주요 캐릭터들로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앙상블 코미디이다. 이야기는 동생 부부 집에 모처럼 모인 아버지, 엄마, 그리고 형제들 부부의 술자리로 시작된다. 소소한 안부와 농담으로 시작된 대화는 급기야 고성과 손찌검이 난무하는 난투극으로 변모하고 실내 난투극은 곧 아파트 주민 모두가 지켜보는 콜로세움식 야외 결투로 확장된다.
영화 <직사각형, 삼각형> 스틸컷 /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직사각형, 삼각형> 스틸컷 /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이희준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2012)을 보며 이 영화의 시초를 떠올렸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학살의 신>에 등장하는 두 부부의 말(싸움)처럼, 과연 인간의 말은 입 밖에 나오는 순간부터 갖가지 형태의 비수(匕首)로 변이를 멈추지 않는 법이다. 이러한 말들은 술이라는 치명적인 촉매를 만날 때 악랄함의 극단을 보인다. 이토록 <직사각형, 삼각형>은 가족과 대화와 술이라는 지극히 평화로운 요소들이 만나 정반대의 상황으로 치닫는 과정을 점층적으로 묘사한다.

배우의 연출작들이 그렇듯 이번 영화 역시 눈부신 캐스팅이 눈에 띈다. <병훈의 하루>에서 옷 가게 점원으로 등장했던 배우 권소현을 포함, 이희준과 극단 '간다’에서 함께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진선규와 오의식 역시 이 소동극의 주요한 멤버들이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병훈의 하루>와 <직사각형, 삼각형>이 묶음 상영된다. 과연 이 정도면 연출자로서 이희준의 다음 행보는 장편영화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하지 않을까. <직사각형, 삼각형>은 영화제 기간 중 5월 1~3일과 9일 등 총 4회에 걸쳐 상영된다.

[영화 <직사각형, 삼각형> 트레일러]

이정현 배우의 연출작 <꽃놀이 간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여자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병원으로 향한다. 한 병실에 도착한 여자는 엄마를 퇴원시키라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녀가 엄마라고 부르는 노인은 죽음의 문턱에 있는 듯하지만 여자는 엄마가 완치했다며 퇴원을 요구한다.
영화 <꽃놀이 간다> 스틸컷 /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꽃놀이 간다> 스틸컷 /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꽃놀이 간다>는 이정현 배우의 첫 연출작이지만 이제까지 그녀가 쌓아 올린 페르소나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작품이다.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듯한 여자. 그녀의 병든 엄마. 그리고 세상에서 철저히 버려진 이들. 이정현은 그녀의 대표작들만큼이나 연출작 역시 아름답고 서정적인 이야기 보다는 인간사의 통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고통스럽고 쉽지 않은 이야기를 선택했다. 28분의 이 길지 않은 단편에서 감독 이정현은 간병이라는 사투를 통해 소외계층과 병원 시스템의 단면을 조명한다.

퇴원해서 나온 모녀는 그들이 살고 있는 허름한 집에서 남은 생을 연명한다. 그러나 딸에겐 엄마를 케어하는데 필요한 주사기를 살 돈도, 집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생필품을 구할 능력도 바닥난 지 오래다. 그렇게 그들은 이 사회의 가장 낮은 저변으로, 세상의 모서리로 한도 끝도 없이 추락한다.
영화 <꽃놀이 간다> 스틸컷 /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꽃놀이 간다> 스틸컷 /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영화는 엄마의 해골 옆에서 죽어가는 딸을 비추며 끝이 난다. 다소 과장스러운 엔딩이지만 이는 배우 이정현이 활약했던 장르 영화들의 영향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분명 그녀의 첫 작품은 그 이상의 프로젝트들을 상상하고 기다리게 할 만한 잠재력을 명시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꽃놀이 간다>는 영화제 기간 중 5월 1일, 4일, 6일, 8일 총 4회 상영된다.

[영화 <꽃놀이 간다> 트레일러]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