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창하오(非常好·훌륭해)!” “찌아요(加油·힘내)!” 지난 19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이좡 경제기술개발구에 위치한 난하이쯔공원에선 연신 탄성이 터져나왔다. 세계 최초로 열린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하프 마라톤인 ‘2025 베이징 이좡 하프 마라톤 대회’의 출발선에는 9000여명의 일반 선수와 21대의 로봇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사진=베이징 이좡 경제기술개발구
사진=베이징 이좡 경제기술개발구

중도 탈락 많았지만 '1위' 톈궁, 군계일학

이날 대회는 두 개의 트랙에서 진행됐다. 일반 선수들과 구분된 바로 옆 트랙엔 치열하게 경쟁해 예선을 뚫고 올라온 21대의 로봇이 함께 출발선에 섰다. 일반 선수들이 한꺼번에 출발선을 나서자 로봇들도 1~2분 간격으로 한대씩 연이어 달리기 시작했다. 로봇 옆에는 길잡이와 로봇 조종을 담당하는 엔지니어 두어명이 바짝 따라 붙었다.

이날 로봇들은 출발선인 난하이쯔공원 남문에서 결승선인 퉁밍호 정보센터까지 21.0975㎞를 달렸다. 코스에는 직선뿐 아니라 좌·우회전 도로와 경사로 등이 포함돼 있어 로봇의 환경 적응력을 살피기에 충분했다.

제한 시간은 3시간 30분으로 뒀으며, 패널티는 있지만 중간에 로봇을 바꿔 계주 형태로 달려도 무방했다. 코스 중간 중간에는 로봇이나 배터리 교체를 위한 별도 공간도 마련됐다. 배터리를 교체할 때 소요된 시간도 모두 경기 기록에 포함됐다. 코스 곳곳엔 로봇 및 배터리 교체를 위한 별도 공간이 마련됐다.
사진=베이징 이좡 경제기술개발구
사진=베이징 이좡 경제기술개발구
이날 대회에는 총 21개 로봇이 참여했다. 베이징 휴머노이드로봇 혁신센터가 개발한 톈궁(天工)을 포함해 유니트리의 G1, 베이징과학기술대의 작은 거인(小巨人) 등이다. G1은 올 초 관영 중국중앙TV(CCTV)의 춘제(春節·음력설) 갈라쇼에 등장해 인간 무용수들과 전통무용을 소화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로봇이다. 로봇들은 대개 2족 보행 구조였지만 무게와 주행 능력은 각기 달랐다.

사건사고도 많았다. 출발하자마자 넘어져 파손되거나 역주행하는 로봇도 눈에 띄었다. 갑자기 멈춰서버린 로봇을 붙들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엔니지어의 모습도 보였다.
사진=베이징 이좡 경제기술개발구
사진=베이징 이좡 경제기술개발구
군계일학은 2시간 40분 42초로 완주한 톈궁이었다. 톈궁은 대회 최장신인 키 180㎝에 최중량인 몸무게 52㎏로 로봇 중 가장 먼저 출발선을 끊고, 가장 먼저 결승선에 들어왔다. 걸음마처럼 종종거리며 걷는 다른 로봇과 달리 톈궁은 출발부터 내내 성큼성큼 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어깨에 이름이 쓰인 주황색 민소매 셔츠를 입고 검은색 전용 운동화까지 신은 톈궁은 지난해 같은 대회에선 페이스메이커 역할만 했지만 올핸 정식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지난해만 해도 시속 6㎞였던 주행 속도를 높여 올해는 안정적으로 8∼10㎞로 달렸다. 최대 주행 속도는 시속 12㎞까지 나왔다. 완주까지 총 3번의 배터리 교체만 있었고, 로봇 교체는 없었다.
탕지안 베이징 휴머노이드로봇 혁신센터 최고기술책임자(CTO)가 19일 기자에게 1등을 차지한 톈궁의 경쟁력을 설명하고 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탕지안 베이징 휴머노이드로봇 혁신센터 최고기술책임자(CTO)가 19일 기자에게 1등을 차지한 톈궁의 경쟁력을 설명하고 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탕지안 베이징 휴머노이드로봇 혁신센터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긴 다리와 인간의 마라톤 주법을 모방할 수 있는 알고리즘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로봇 교체 없이 배터리 교체 만으로 완주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 휴머노이드로봇 혁신센터는 중국 국영기업이 43%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빅테크 샤오미의 로봇 부문과 중국의 대표적인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유비테크가 나머지 지분을 균등하게 나눠 갖고 있다.

빠르게 커지고 있는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전문가들은 로봇 마라톤 대회가 열린 것만으로도 상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로봇 산업이 글로벌 성장의 핵심 엔진으로 부각되면서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은 급성장하고 있다.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중국이 올해 총 82억4000만위안(약 1조6000억원), 1만여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생산해 글로벌 생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할 전망이다. 제작 비용 감소와 기술력 향상으로 올해가 상용화의 원년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세계 최초로 열린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톈궁이 19일 결승선을 들어온 뒤 취재진을 쳐다보고 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세계 최초로 열린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톈궁이 19일 결승선을 들어온 뒤 취재진을 쳐다보고 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오는 2030년까지 1038억위안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열린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도 로봇 기술 육성을 전면에 강조했다. 이에 따라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올해 휴머노이드 로봇을 대량 생산해 오는 2027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방정부와 기업들은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개발, 설계, 제조, 응용 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난징시는 고품질 로봇 개발을 위한 계획을 수립했으며, 항저우시는 통합 지원 정책을 내놨다. 가장 먼저 관련 시장에 진입한 샤오미를 포함해 샤오펑 역시 자사의 자율주행 기술과 AI 알고리즘을 집약한 자체 AI 휴머노이드 로봇을 지난해 말 발표했다.

이렇다 보니 반도체·인공지능(AI) 분야 연구 분석 기관인 세미어낼리시스는 최근 “중국이 전기차 산업에서 이룬 파괴적 영향력을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도 재현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이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례로 유니트리에서 생산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경우 미국산 부품과 완전히 분리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