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성상부터 삼성 전광판까지…바티칸에 스며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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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 재조명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 재조명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이듬해인 2014년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한국을 찾은 이후 한국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정부, 기업과도 깊은 인연을 쌓았다. 2021년 당시 대전교구장으로 있던 유흥식 라자로 주교를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지명하고, 대주교로 승품시킨 게 대표적이다. 교황청 역사에서 한국인 성직자가 차관보 이상 고위직에 임명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그간 유럽 등 서양 출신의 성직자만 맡았던 교황청 요직에 한국인 사제를 발탁한 인선은 첫 아메리카 대륙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열린 사고를 보여준다. 동시에 그의 한국에 대한 애정도 읽을 수 있다는 게 가톨릭계의 평가다. 전쟁과 갈등 종식에 앞장섰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위 내내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평화를 강조했고, 비록 무산됐지만 유 추기경을 가교 삼아 여러 차례 방북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초 성 베드로 광장의 옥외 전광판은 일본 파나소닉 제품이 사용됐다. 시설 노후화와 낮은 해상도로 교황청이 교체를 검토하던 중 마침 삼성전자가 손을 내밀면서 한국 기업의 제품으로 바뀌게 됐다. 이는 유 추기경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가톨릭계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이 교황청에 스며들고 있다(infiltrarsi)”면서 결과물에 크게 만족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방한 당시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를 다녀갔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약 550년간 비어 있던 대성전 우측 외벽에 김대건 신부의 성상을 세우는 건의에 흔쾌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동의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대건 신부가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전파했던 이야기를 전하며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며 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첫 아메리카 대륙 출신이자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교황으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을 주장하는 등 가장 진보적인 교황이란 평가를 받았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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