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이재명(왼쪽부터), 김동연, 김경수 후보가 23일 오마이뉴스TV 초청으로 열린 합동토론회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은구 기자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이재명(왼쪽부터), 김동연, 김경수 후보가 23일 오마이뉴스TV 초청으로 열린 합동토론회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은구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의 경제성장론 키워드는 ‘국가 주도’다. 기업이 글로벌 경쟁 전면에 서되 국가의 대대적 투자로 경제성장을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국가의 민간 영향력 확대를 전제로 한다. 이 후보는 지난 12일 출마 선언 때 “국가 단위의 관여와 지원, 투자,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경제·산업 전문가들은 이 후보가 “국가 단위의 관여”라고 표현한 데 주목하고 있다. 막강한 국가 권력의 관여와 개입이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이 후보의 진단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그 역할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李 “대전환 시대…국가 단위 관여 필요”

국가 역할 커졌다지만…"민간 대체땐 비효율 초래할 것"
이 후보가 국가의 역할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전 세계가 대전환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서다.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가 가속화하고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데, 이는 개별 기업이 대응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보고 있다. 이 후보는 “국가 간 경쟁을 넘는 글로벌 경쟁에서 개별 기업이 기술 투자와 연구개발(R&D), 인재 양성 등을 감당하기 너무 어렵다”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고 했다.

이런 인식 끝에 나온 게 정부와 기업, 국민이 참여해 첨단기술에 투자하는 ‘국민펀드’, 전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한국형 챗GPT’ 개발 공약 등이다. 지역 거점대학마다 AI 단과대학을 세워 국가가 고급 인재를 육성한다는 구상도 있다. 이 후보 캠프 관계자는 “기업이 막대한 비용과 위험 부담 때문에 하지 못하는 역할을 국가가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직전 진보 정권인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성장 전략과 확연히 구분된다. 문재인 정부도 경제성장에 국가 재정을 투입했지만 공공일자리 만들기에 집중했다. 최저임금도 5년간 40% 넘게 급격하게 올려 각종 부작용이 속출해 결국 정권을 내줬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시즌2’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보수 정부인 윤석열 정부와는 외견상 기업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정부의 개입 강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을 것이라는 평가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노동시장 구조 개혁, 규제 혁파 등과 관련한 언급도 이 후보 캠프에서 거론하지 않다시피 하고 있다.

◇“정부, 민간 대체할 때 비효율 발생”

전문가들은 대전환의 시대라는 이 후보의 상황 진단에 대체로 공감한다. 경제, 산업 환경뿐만 아니라 글로벌 외교·통상 질서도 완전히 뒤집히고 있기 때문이다. 4대 그룹 경제연구소 고위 관계자는 “세계화에서 반세계화로 변하고 자유무역은 보호주의로 바뀌고 있다”며 “경제와 정치·외교가 하나로 돌아가는 ‘지경학’의 시대가 되면서 성장에서 국가의 역할이 커졌다”고 했다. 한 국책 연구원장은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통상 영역에서 정부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했다. 외교·통상뿐만 아니라 기초과학 R&D 분야에서도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이는 이 후보가 강조해온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유망 산업을 정하고, 관련 인재를 육성하며 대대적 투자에 나서는 데 우려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싱크탱크 출신 인사는 “정부가 어떻게 기업보다 글로벌 기술 흐름을 잘 알고, 민감한 시장 변화를 감지해낼 수 있겠냐”며 “정부가 민간의 역할을 대체하려고 하면 할수록 막대한 자원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세금을 재원으로 펀드를 조성해 투자하는 것에 우려가 컸다. 경제계 관계자는 “국민 세금으로 어디에 투자할지, 왜 투자하는지 등을 놓고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국민 의견을 듣다 보면 포퓰리즘으로 빠질 공산이 크다”고 했다. 이경묵 서울대 교수는 “국가와 기업이 해야 할 일은 완전히 다르다”며 “국가는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법적 규제를 해소해주는 방식으로 경제 대전환을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한재영/이광식/원종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