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조업체 관계자들이 SNS에서 명품의 원가와 제조 과정을 공개하는 모습. 사진=SNS 캡처
중국 제조업체 관계자들이 SNS에서 명품의 원가와 제조 과정을 공개하는 모습. 사진=SNS 캡처
“3만8000달러(약 5417만원)짜리 버킨백이 공장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얼마일까요?”

중국의 한 의류공장 직원은 최근 중국계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과 미국 소셜미디어(SNS) 엑스(옛 트위터)에 게시물을 올려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히는 에르메스 버킨백 원가가 1395달러(약 200만원)에 불과한데 실제 판매가는 수십 배에 달한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영상 속 인물은 유창한 영어로 가방 제작에 필요한 가죽과 각종 부자재 등의 원가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버킨백 가격의 90%는 '에르메스 로고 값'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로고는 없지만 에르메스 버킨백과 똑같은 품질의 (저렴한) 가방이 필요하면 우리에게 구매하라”고 말했다.

미중 관세전쟁의 '불똥'이 명품 브랜드로 튀고 있다. 중국 의류업체 직원들이 잇달아 유명 브랜드들 원가를 공개하고 나선 것. 에르메스뿐 아니라 루이비통, 프라다 등 유명 브랜드 가방도 중국에서 만든 뒤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배송돼 로고를 부착해 비싸게 판다는 내용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샤넬의 헤어핀이 중국 남부 광둥성 둥관에서 제작된다고 주장하는 영상도 있다.

이 같은 영상이 별다른 진위 확인 없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중국 측이 의도한 여론전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선 명품 브랜드 가격 폭리에 대한 비판도 나오는 실정이다.

과연 영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정말 중국 공장을 통하면 명품을 싼 값에 구매할 수 있을까.

명품업계에선 초고가 브랜드의 경우 중국 측 영상 내용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에르메스 또한 버킨백이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는 주장에 대해 "버킨백은 100% 프랑스에서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고 반박했다. 실제 에르메스 가방은 대부분 프랑스에서 제작된다. 주로 파리 외곽지역인 팡탱이나 아르덴, 리옹, 노르망디 등에 공방을 뒀다. 전체 수량의 4분의 1 가량은 스위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 포르투갈, 호주 등에서 만들기도 한다.

에르메스처럼 대부분 명품의 원산지로 꼽히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에선 라벨링 규정을 엄격하게 두고 있다. 가방에 ‘메이드 인 프랑스(Made in France)’ 라벨이 붙이려면 자국에서 주요 제조 단계를 거쳐 마감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특히 프랑스 명품 브랜드들은 일반적 원산지 라벨링보다 더 엄격한 규정인 ‘OFG’(Origine France Garantie)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제품의 필수적 공정이 프랑스에서 이뤄지고 생산 단가의 50%는 프랑스 사업장에서 나와야 받을 수 있는 국가 인증이다. 때문에 에르메스를 비롯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는 디자인부터 자재 소싱, 가죽 손질, 조립, 마감까지 모두 프랑스 내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프라다그룹 또한 마찬가지다. 주요 브랜드 프라다와 그룹 내 세컨드 브랜드 미우미우는 모두 이탈리아에서 핸드백을 제조하는데 주요 공정은 모두 이탈리아에서 해결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있는 발비냐 단지가 브랜드 생산의 핵심 거점이다. 생로랑과 구찌 또한 같은 지역 내 가죽 핸드백 제조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2600유로(약 384만원)짜리 가방의 생산원가가 53유로(약 8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된 크리스챤 디올도 이곳에 공장을 두고 제품을 생산한다.
에르메스 제품을 만들고 있는 장인 / 출처. 에르메스 홈페이지
에르메스 제품을 만들고 있는 장인 / 출처. 에르메스 홈페이지
물론 랄프로렌이나 코치, 마이클코어스 등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브랜드는 생산 공정을 중국에 맡기기도 한다. 실제 중국은 세계 섬유 제품 생산량의 약 3분의 2를 담당하고 있으며 미국은 중국산 섬유 제품 최대 수입국이다. 지난해 미국은 약 490억 달러(약 66조원) 규모 중국산 섬유 제품을 수입했다.

그렇다 해도 직접 생산 공장에서 원가로 제품을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 브랜드들이 자신들의 하청업체가 동일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서다. 제품에 대한 지적 재산권은 브랜드가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 같은 계약을 위반하고 공장이 로고를 뗀 제품을 팔고 있다면 '불법'이다. 중국 영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밖에다 대놓고 판매할 순 없다는 얘기다.

이 모든 과정을 우회해 운좋게 싼 값에 중국 하청공장에서 나온 명품을 구했다고 해도 안전성 문제가 남아 있다. 정식 수입품은 각국 시험 기관 인증을 거쳐 소비자에게 넘어가지만 공장에서 막 나온 상품은 별도 안전 검사를 받지 않는다. 미국 패션매거진 GQ에 따르면 명품 인증회사 엔트루피는 수천개의 명품 위조품을 테스트했는데 이중 60% 이상이 비소, 납 같은 유해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생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중국 측 주장처럼 로고를 제외한 완제품이 하청공장에서 나온다는 건 미국, 유럽 등 원산지 규정이 엄격한 국가들에선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어 “소비자들이 가격에 대한 불신을 갖는 것은 브랜드들의 생산 공정에 대한 기밀성이 지나치게 엄격해 생긴 문제이기도 하다”면서 “공급망 전반에 걸쳐 재료 소싱, 장인의 작업 조건 및 품질 관리 표준을 공개하여 고객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