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영화에 바친 내 삶이 헛되지 않았어!”

메이저 영화사 ‘콘티넨털 스튜디오’의 새 수장으로 지명된 순간 맷 레믹(세스 로건)이 환호한다. 콧대 높은 배우와 감독들에게 굽신거리고 다닌 지 수십 년. 하지만 이제 그는 고개 갸웃 한 번만으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눈치 보게 만들고, 이 거장 아티스트의 자기 성찰적 질문까지 끌어낼 수 있다. “왜? 내 영화로 돈 못 벌 거 같아?”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도 현실이 되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 애플TV+의 10부작 코미디 <더 스튜디오>는 이 고전적인 아이러니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웃긴다. 스코세이지 감독이 직접 나와 자기 자신을 풍자하는데, 웃음이 터질 수밖에.
애플TV+ <더 스튜디오>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애플TV+ <더 스튜디오>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그런데 이 장면에 골치가 아프고 때로 가슴까지 미어진다면, 당신은 영화를 꽤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맷 또한 이 점이 문제다. 그는 몇백, 몇천억원의 제작 자금을 주무르며, 전 세계 스크린에서 떼돈을 벌어야 하는 사업가다. 투자자들을 위해서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히어로 영화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맷은 영화라는 예술을 깊이 사랑한다. 고급스럽고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돈 욕심만큼 크다. “블록버스터도 오스카상을 받을 수 있잖아!” 그는 독립영화 감독이었던 그레타 거윅을 기용해서 히트를 쳤던 <바비>(2023)를 예로 든다. 투자자들은 탐탁지 않아 할 소리다.

존경하는 아티스트 앞에선 온몸이 얼어붙는 ‘찐 영화광’이 하루아침에 냉혹해질 수 있을까. 한때 잘 나갔던 명감독이 자신의 신작에 자의식 가득한 사족을 붙여놨다면? 엔딩을 싹둑 자를 바엔 ‘저주받은 걸작’으로 남는 게 낫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배우와 제작진 모두 감독의 똥고집에 저항하지 못하고 아부를 떨고 있을 때, 최고위 임원인 맷이 나서야 한다.

이러한 내적 갈등은 <더 스튜디오>를 팽팽한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카메라는 영화사 사무실과 복도, 제작 현장을 오가는 그의 바쁜 걸음을 실시간으로 쫓는다. 때때로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롱테이크는 할리우드의 긴박한 순간을 실감 나게 담아낸다.
애플TV+ <더 스튜디오>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애플TV+ <더 스튜디오>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위기를 모면하려는 맷의 꼼수는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온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남발한 약속들은 감당 못할 빚이 되어 돌아온다. 게다가 맷에게 살랑거리는 배우와 연출자들은 저마다 요구 사항을 갖고 있다. 글로벌 시사회에서 전용 비행기를 쓰게 해달라거나, 영화사에 남을 액션 씬을 찍기 위해 돈 좀 더 달라거나.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가 공동으로 제작하고 감독한 <더 스튜디오>는 10부작 가운데 중후반을 남겨놓은 상태다. 캐나다 출신의 세스 로건은 십 대 시절 스탠드업 코미디로 시작해 <슈퍼배드>(2007), <파인애플 익스프레스>(2008), <디스 이즈 디 엔드>(2013) 등에서 배우이자 작가로 꾸준히 경력을 쌓아왔다.

<파벨만스>(2022)와 <덤머니>(2023)에서 로건과 함께 출연한 배우 폴 다노를 비롯해, 익숙한 얼굴들이 본인의 캐릭터로 <더 스튜디오>에 출연한다. 드라마가 묘사하는 할리우드 인간들은 하나같이 능구렁이처럼 속셈을 숨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연기와 연출로 먹고 사는 사람들 아닌가.
애플TV+ <더 스튜디오>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애플TV+ <더 스튜디오>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거짓말과 이간질, 온갖 꼴사나운 짓을 하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목표가 한낱 ‘완벽한 작품’이라는 걸 생각하면 연민을 갖게 된다. 이들은 부질없는 꿈을 위해 얼간이가 되기도 하고, 꽉 막힌 시스템 속에서 목소리 한번 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긴 할리우드 땅 한번 밟아본 적 없는 우리도, 그런 적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좋은 코미디는 현실과 닮아있다.

김유미 아르떼 객원기자

['더 스튜디오(The Studio)' — 공식 트레일러 | Apple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