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기업의 올해 1분기 성적표가 속속 나오는 가운데 업종별로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두드러진 실적 개선세에 들뜬 분위기다. 반면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는 2차전지와 석유화학 업종은 울상이다.
◇‘깜짝 실적’ 내놓은 조선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실적 컨센서스(추정치)를 낸 상장사 중 이날까지 1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한 회사는 총 108곳이다. 이 중 적자 축소와 흑자 전환을 포함해 65개(60.19%) 기업이 추정치를 웃도는 영업이익을 발표했다. 전체의 38.89%인 42개 기업은 추정치 대비 영업이익이 10% 이상 많은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했다. 반대로 실적 충격을 기록한 기업은 23개(21.3%)였다.
시가총액이 큰 경기민감(시클리컬) 종목이 약진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반도체 기업의 성적이 돋보였다.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은 7조4405억원이었다. 시장 추정치(6조5929억원)를 12.86% 뛰어넘었다. 서승연 DB증권 연구원은 “관세 우려에도 SK하이닉스의 재고가 줄어들었고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력도 유지하고 있다”며 “탄탄한 실적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업체 실적은 거의 예외 없이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HD현대중공업(추정치 대비 65.09% 상회), HD한국조선해양(65.49%), 한화오션(62.45%)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주가가 조정받을 때마다 분할 매수에 나설 만하다는 게 증권업계 얘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조선업계에선 최소 2027년까지 수주가 늘어날 것”이라며 “미국과의 협력 강화도 주가 상승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적자 늪에서 벗어난 턴어라운드(실적 개선) 종목도 관심을 모은다. 건설 업종에선 현대건설(12.19%)이 주목받고 있다. 작년 4분기 ‘빅배스(big bath·일시적 대규모 손실 처리)’ 이후 한 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호텔신라도 1분기에 추정치 대비 적자폭을 줄였다. 중국 한한령(한류 콘텐츠 금지령)이 해제되면 추가적인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주가는 4월에만 14.16% 올랐다.
◇아직 불안한 2차전지·석유화학
2차전지 업종에서도 실적 개선 흐름이 엿보인다. 코스닥 주도주 중 하나인 에코프로비엠을 포함해 LG에너지솔루션 등이 1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투자심리가 되살아나기엔 이르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 두 종목 모두 호실적을 내놓은 당일 주가가 하락했다. 한 증권사의 자기자본 투자담당 임원은 “2차전지주는 올해까지 긍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어 관망 중”이라며 “전기차 수요가 저조한 데다 국내 업체의 주력인 삼원계(NCM) 배터리가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석유화학과 에너지 업종 역시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대한유화는 올해 1분기 9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손실 규모가 시장 추정치(-23억원) 대비 네 배 이상으로 컸다. 대한유화는 에틸렌 등 기초 화학제품을 만드는 회사다. 중국 기업의 공세가 강화되며 제품 마진이 줄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태양광 모듈 업체인 HD현대에너지솔루션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손실이 커지고 있다.
석유업체 중에서는 에쓰오일이 1분기에 215억원 적자를 냈다. 이 회사 목표주가를 내린 증권사가 4월에만 14곳에 달했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이 정제마진 약세를 부르고 있다”며 “유가 하락으로 2분기엔 적자폭이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