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AI, 인문학자들이 나서야죠"
챗GPT에 ‘독도는 어느 나라 땅이냐’고 물었다. 한국어로 물으면 ‘대한민국 영토며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일본어로 하면 ‘국제적으로 명확한 판정은 없고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는 답변이 나온다. 요즘 인공지능(AI) 담론에서 빼놓지 않고 나오는 ‘소버린(주권) AI’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 2일 만난 허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장(한국사학과 교수·사진)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독주 속에서 한국적인 AI를 학습할 필요성이 시급하다고 느꼈다”며 “정보통신(IT)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데 인문학자로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 3월 말 KT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민연)과 협약을 맺었다. 상반기에 상용화를 목표로 한국 실정에 맞는 AI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민연이 제작한 한국어대사전을 비롯해 한국현대소설사전, 민족문화연구 총서 등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체 AI를 개발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9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한국 실정에 맞는 AI를 개발하겠다며 KT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뒤 나온 후속 조치다.

70년 역사를 지닌 민연은 인문학을 전공한 석·박사급 연구원 100여 명을 두고 있다. 정부 소속 연구소를 제외하고 인문학 싱크탱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허 원장은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한국사학 석·박사를 마쳤다. 모교 한국사학과 교수를 지내며 40년간 학교를 지켰다. 지난해부터 민연 원장을 겸하고 있다.

허 원장은 “인문학 연구기관은 고루하고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역동적이고 재미있는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며 “웹툰 영화 드라마 등으로 나타난 K컬처, 한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서사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공계 인재도 영입해 중책을 맡겼다. 고려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해 엔씨소프트 상무를 거친 장정선 교수가 대표적이다. 2023년 모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초빙했고 민연 내 AI인문연구단장을 겸임해 KT와의 협업 과제를 이끌게 했다.

공학도와 엔지니어들이 주도할 AI 시대에 인문학의 역할론도 강조했다. 문학·철학·역사학 전공 학자들이 홀대받기는커녕 더 바빠질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허 원장은 “AI 등장으로 인문학이 해야 할 역할이 늘었다”며 “새 기술이 가져올 윤리적 문제,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고민, 인간과 기술의 관계 설정 등이 인문학자가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