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과 고등어, 양파퓨레로 만든 카늘레, 마조람과 리코타치즈를 넣은 구운 라비올리, 밤 피낭시에로 준비된 네 가지 타파스. © 김혜준
국화꽃과 고등어, 양파퓨레로 만든 카늘레, 마조람과 리코타치즈를 넣은 구운 라비올리, 밤 피낭시에로 준비된 네 가지 타파스. © 김혜준
남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마주한 국경 부근 코트다쥐르의 작은 도시 망통, 니스 여행의 연장선으로 선택하기 좋은 망통을 대표하는 프렌치 레스토랑 ‘미라주르’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미쉐린 3스타, 2019~2021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1위를 자랑하는, 1930년대 건물에 들어선 이 레스토랑을 지휘하는 마우로 콜라그레코(Mauro Colagreco) 셰프. 20대에 프랑스로 이주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 셰프다.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알랭 파사르와 알랭 뒤카스의 가르침을 통해 땅과 바다에서 나는 식재료에 대한 탐미적 성향이 도드라지는 자연주의 요리를 추구한다.

시그니처 메뉴인 비트루트와 캐비아 크림소스.  © CYCLE
시그니처 메뉴인 비트루트와 캐비아 크림소스. © CYCLE
미라주르는 재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좇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서 유영하는 모든 경험, 즉 자연을 기반으로 뿌리, 잎, 꽃, 열매를 키우는 전 우주적 연구와 노력을 통해 완성되는 세계관으로 운영된다. 그가 추구하는 국적이나 경계가 없는 요리는 남프랑스 망통의 미라주르 외에 아르헨티나, 마카오, 미국, 중국 베이징 등지에서 캐주얼 레스토랑으로, 태국 방콕과 일본 도쿄에서 미라주르의 DNA를 담은 레스토랑으로 만나볼 수 있다.

도쿄에 오픈한 사이클(CYCLE) 레스토랑은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칸테상스 등을 개장한 일본 기업이 투자해 안정적인 출발을 보여줬다. 미라주르에서 수셰프로 근무하고 이제 도쿄 사이클 레스토랑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 미야모토 유헤이 셰프의 역량을 베이스로 홀 서비스를 맡은 리에 야스이 매니저의 호스피탈리티의 디테일을 더해 개장 1년 만에 미쉐린 1스타와 ‘베스트 서비스 어워드’를 동시에 수상했다.

사이클은 콜라그레코 셰프의 세계관을 이어 ‘순환적 미식’을 테마로 자연을 향한 존중과 애정을 담은 요리를 선보인다. 특히 일본 농업학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사상에서 큰 영감을 받아 일본 식문화에 접근하기 시작한 콜라그레코 셰프는 일본 생산자와의 교류는 물론 오테마치 도심 속에도 작은 정원을 조성해 허브 등을 재배하고 요리에 사용한다. 계절 흐름에 따라 메뉴는 바뀌지만 기조가 되는 철학을 담은 시그니처 요리를 소개하려 한다.

메인으로 준비된 비둘기 요리. ©김혜준
메인으로 준비된 비둘기 요리. ©김혜준
식물 자수가 수놓인 리넨 냅킨과 나란히 테이블에 놓인 메뉴를 받아 들면 그들의 철학을 담은 글과 함께 준비된 메뉴의 식재료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종이는 포도 껍질과 잎 같은 자연 친화적인 재료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남프랑스의 풍광 대신 사이클의 내부 공간은 일본 로컬 작가에게 의뢰해 거대한 크기의 나무 구조물과 테이블을 제작했으며 안정적이면서도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 요리를 살펴보자. 사이클은 자연을 원천으로 자라나는 식물의 순환 과정을 뿌리, 잎, 꽃, 열매 네 가지 요소에 근거한 에너지로 보여준다. 코스의 처음으로 네 가지 요소를 담아 꽃을 상징으로 절인 국화와 고등어, 열매인 밤으로 피낭시에, 뿌리인 양파 퓨레로 카늘레, 잎을 상징하는 마조람과 리코타 치즈를 더해 만든 구운 라비올리가 타파스 형태로 등장했다. 액자식 구성으로 디저트 역시 히비스커스 피낭시에, 로즈메리 맛차 슈크림, 생강 젤리, 유자 타르트 등 네 가지 요소의 프티 푸르가 등장한다.

그들이 선보이는 ‘빵’이라는 아이템은 그 의미가 소중하다. 직접 재배한 올리브에서 추출한 효모로 콜라그레코 셰프의 할머니가 요리해주던 레시피를 이용해 빵을 만든다. 투박하고 묵직한 로제타 형태의 이 빵은 미라주르에서도 칠레를 대표하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빵에 대한 찬가가 적힌 종이와 함께 서빙된다. 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일본 사이클에서는 일본에서 영시를 쓰는 것으로 유명한 노년의 시인이 쓴 시를 준비한다. 이런 감성적 풍요로움과 함께 미라주르가 위치한 남프랑스 망통의 특산물인 레모니한 풍미 대신 일본스러운 싱그러운 시소향 푸릇한 올리브 오일을 소개하며 빵과 함께 곁들이기를 제안한다.
마우로 콜라그레코 셰프와 일본의 미야모토 유헤이 셰프. ©CYCLE
마우로 콜라그레코 셰프와 일본의 미야모토 유헤이 셰프. ©CYCLE
이어지는 시그니처 메뉴로는 비트루트 요리를 꼽을 수 있다. 살짝 소금에 절인 비트루트를 얇게 저며 꽃처럼 담아내고 오세트라 캐비아를 담뿍 넣은 크리미한 소스를 넉넉히 부어준다. 비트 자체가 지닌 흙 내음이 주는 아름다운 생동감과 고소함이 크리미하고 짭조름한 소스와 어우러진다. 일본 식재료를 바탕으로 표현한 프렌치 요리라는 프레임 안에서 꽤 자유로이 유영하는 그들의 요리 스타일은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세 에비와 사프란의 매칭은 물론이고 메인인 비둘기 요리도 부드러운 고기 부분과 바삭하게 구워낸 껍질과 함께 일본의 카시스와 마늘 그리고 리소토를 곁들인다.

디저트로 등장하는 허니와인 젤리와 허니콤, 벌화분의 조합 또한 자연의 순환기 속에서 생명의 결실을 거두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와인 페어링 또한 절묘한 감각으로 매칭한 솜씨가 뛰어났다. 따스하게, 노련하게 우리를 맞이해준 리에 매니저의 품격 있는 서비스까지 완벽한 밤이었다. 2025년 미쉐린 서비스 어워드를 차지한 리에 매니저는 스페인 Sant Pau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스탠더드 이상의 환대를 구현함으로써 사이클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높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홋카이도 출신으로 서비스 경험치가 높은 그녀를 영입함으로써 키친과 홀의 밸런스를 맞추려 한 콜라그레코 셰프와 일본 파트너사의 세심한 의도가 돋보인다. 단순히 글로벌 톱셰프의 분점에 그치기보다 자생적인 코어를 키우기 위해 많은 투자와 인프라를 아끼지 않는 레스토랑으로 깊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