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40만 덫에 걸린 세종시…'아이 키우기 가장 좋은 동네'의 민낯
매년 초 대학입시 결과 발표일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국장과 과장 가족들이 서울 이사를 결정하는 날이기도 하다. 자녀가 대입에 실패한 가정은 재수학원 때문에, 경사가 난 집은 대학생 자녀의 생활비 부담 때문에 이삿짐을 싼다. 2년 전 세종에서 서울로 터전을 옮긴 한 경제부처 국장은 “따로 살면 자녀 한 명당 생활비가 매월 150만~200만원 들어가다 보니 서울에 전세를 얻어 함께 사는 게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경제 기반 없는 대도시의 허상

인구 40만 덫에 걸린 세종시…'아이 키우기 가장 좋은 동네'의 민낯
전국에서 가장 넓은 공원면적(1000명당 6만3000㎡)과 가장 높은 자연환경 만족도(68.8%), 두 번째로 낮은 범죄율(10만명당 2065명)을 자랑하는 세종시는 자타공인 ‘대한민국에서 아이 키우기 제일 좋은 동네’다. 하지만 세종시 종촌동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40대 여성은 “정확히는 초등학교까지 만의 얘기”라고 말했다. 교육 인프라가 약해 자녀가 중·고교생이 되면 서울 이사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게 세종시민의 고민이다.

대부분의 정부 부처 국·과장들은 2012년 시(市) 출범 때부터 세종시로 이주한 ‘원조 세종시민’들이다. 이제는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할 이들이 해마다 서울로 빠져나가면서 세종시 인구는 40만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16~2018년까지만 해도 15%대를 유지하던 인구증가율은 2023~2024년 1%로 급락했다. 세종시는 2040년 인구 목표를 78만5000명으로 잡았지만, 통계청 인구추계에 따르면 2050년에도 세종시 인구는 53만명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자립 기반 없이 행정기관만 옮겨 대도시를 만든다는 구상 자체가 허상”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시에 본사를 둔 대기업은 한화에너지가 유일하다. 어렵사리 유치한 기업이지만 그룹 본사는 서울, 주요 사업장은 지방에 있어 일자리 창출력에 한계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인구 40만 덫에 걸린 세종시…'아이 키우기 가장 좋은 동네'의 민낯
인구와 기업이 늘지 않으니 세종시 재정의 지속가능성에는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2019년 세입예산(1조1500억원)에서 자체적인 세수인 지방세의 비율은 59.9%(6922억원), 국가 보조금은 20.1%(2325억원)이었다. 2025년 세입예산(1조6468억원)에서 지방세 비율은 51.5%(8474억원)로 떨어지고, 국가 보조금 비율은 24.4%(4014억원)로 올랐다.

중앙정부가 거둬들인 부가가치세의 25.3%를 지방 정부에 나눠주는 지방소비세 비율은 6.7%(776억원)에서 17.8%(2928억원)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시 재정의 중앙 정부 의존도가 훨씬 커진 것이다. 세종시의 부동산 개발이 일단락되면서 자립 기반이었던 주 수입원이었던 취득세 비중은 25.8%에서 10%로 급감했다. 대기업이 없다 보니 기업이 지방자치단체에 내는 법인세인 지방소득세 비중도 6.7%에서 6.1%로 줄었다.

물가상승률은 전국 1위

시 재정은 위태롭고, 도시의 중추 역할을 할 국·과장 세대가 이탈하면서 세종시민의 삶의 질은 멍이 들고 있다. 지난 3월 세종시 물가상승률은 2.6%로 5개월 연속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위였다. 2% 안팎인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4월 외식 물가(4.5%) 오름세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4%를 넘었다. ‘공무원 도시’인 세종시 물가는 법인카드(업무추진비용)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해 물가와 소득 수준이 따로 논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학령기 자녀들이 있어 상대적으로 씀씀이가 컸던 국·과장 세대가 빠져나가면서 세종의 소득과 소비 수준 모두 내림세다. 전국 3위를 지키던 세종시의 1인당 개인소득은 2022년부터 대전에 밀려 4위로 내려앉았다. 1인당 민간 소비 지출액은 2023년부터 제주에 밀려 3위로 떨어졌다.

소비가 얼어붙으면서 세종시 상권은 빠르게 망가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종시 집합상가 투자수익률은 전 분기보다 0.18% 하락했다. 집합상가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2013년 통계 집계 이래 모든 광역 지자체를 통틀어 처음이다. 1분기 전국 평균 수익률은 1.1%이었다. 지금까지 세종시를 제외하고 수익률이 가장 낮았던 지자체는 2023년 3분기 광주(0.29%)였다.

집합상가란 분양 아파트처럼 대형 상업용 건물을 호실별로 분양해 소유주가 여러 명인 상가다. 세종시 중심부를 비롯해 대도시에 새로 들어서는 대형 상가건물은 집합상가가 많다. 투자수익률은 임대료 수입을 뜻하는 소득수익률과 상가 부동산 가치를 나타내는 자본수익률의 합이다. 부동산 가치가 다소 하락하더라도 임대료 수입이 있는 한 투자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세종시의 투자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자본수익률과 소득수익률 모두 전국에서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1분기 세종시의 자본수익률은 -0.88%로 전국 평균(0.12%)과 1%포인트 차이가 났다.

임대료 수입을 나타내는 소득수익률도 0.70%로 전국 꼴찌였다. 1분기 세종시의 임대가격지수 변동률은 -2.3%로 전국 평균(-0.22%)의 10배 넘게 하락했다. ㎡당 임대료가 1만8600원으로 특별시·광역시 가운데 가장 낮았다. 조사를 시작한 2014년 1분기만 해도 세종시의 ㎡당 임대료는 4만700원으로 서울(4만9600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본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집무실 예정 부지. 세종=정영효 기자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본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집무실 예정 부지. 세종=정영효 기자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상가 주인들은 공실로 두는 한이 있더라도 어지간해선 상가 임대료를 낮추지 않으려 한다”며 “세종은 상가 경기가 오랫동안 좋지 않다 보니 임대료를 큰 폭으로 낮춰서라도 임차인을 들이려 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관계자는 “국회와 대통령 집무실 건립 일정이 구체화하면 인구가 유입되고 상권이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6월 3일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이 국회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을 내걸자 세종 집값은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선거가 유일한 발전 호재인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송우경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행정기관을 중심으로 도시가 구성되다 보니 일자리가 생겨나기 어렵다”며 “도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산업 부문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