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식당, 숙박 등 서비스 업종의 인력난을 덜기 위해 2022년부터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E-9 비자) 채용을 허용하고 정원을 대폭 늘렸지만, 사업주의 사용 실적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절차가 까다로운 데다 최소 3년 동안 풀타임으로 채용해야 하는 등 경직된 제도 때문이다.
정부가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 채용을 허용한 지 3년이 됐지만 까다로운 고용 규제 등으로 실제 사업주들이 고용허가제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5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 외국인이 광고판을 드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정부가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 채용을 허용한 지 3년이 됐지만 까다로운 고용 규제 등으로 실제 사업주들이 고용허가제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5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 외국인이 광고판을 드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15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2025년 산업별 인력 수급 전망 및 외국 인력 수요’에 따르면 지난해 음식업, 호텔·숙박업, 택배업 등 국내 서비스 업체가 채용한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는 675명으로 정원인 1만3000명의 5.1%에 그쳤다. 정원 대비 사업주가 신청한 인원인 ‘채용 경쟁률’은 2022년 2.4 대 1에서 2024년 0.1 대 1로 낮아졌다. 지난해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를 사용한 사업장은 285곳에 그쳤다. 올해 3월 말 기준 서비스업의 고용허가 비자 발급 건수는 501건이다.

서비스업의 고용허가제 활용이 부진한 것은 고용 절차가 번거롭고 오래 걸리는 데다 사업주의 관리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3년 이상 정규직·풀타임 고용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평균 생존율이 3.6년에 불과한 음식점 등은 고용허가제 인력보다 ‘단기 알바’로 채용할 수 있는 외국인 유학생이나 불법 체류자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15일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어 식당에서 일하는 고용허가제 외국인에게 그간 금지해온 홀서빙 업무를 허용하고, 호텔 협력업체가 특정 호텔과 전속계약을 맺어야만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한 규제를 폐지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퇴직금, 주휴수당 등의 부담 때문에 한국인 직원도 쪼개기 알바로 쓰는 판국에 외국인을 풀타임 정규직으로 쓰라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에 외국인 유학생 비자의 고용허가제 비자 전환을 허용하고, 고용허가제의 근무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식당서 외국인을 풀타임으로 3년 쓰라니"…현실 모르는 고용허가제
음식·숙박 등 서비스업 고용허가제 신청 '지지부진'

“정부가 식당에서 고용허가제(E-9) 외국인 근로자 채용을 허용했다지만, 이 주변에서 외국인 직원 고용을 신청한 업주는 보지 못했습니다. ”

15일 서울 종로구에서 베트남 외국인 유학생 두 명을 종업원으로 고용하고 있는 한 고깃집 사장은 “유학생은 단기 아르바이트 형태로 고용하고, 홀 서빙 등 다양한 일을 맡길 수 있어 인기가 높다”며 “대부분 식당이 고용허가제 대신 유학생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 까다로운 고용허가제 대신 유학생 쓴다

2022년 업계의 요청으로 도입된 서비스업 고용허가제가 기대와 달리 사업주의 외면을 받는 이유는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 때문이다. 음식점은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E-9)를 고용하려면 업력이 5년 이상이고, 풀타임으로 최소 3년 이상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우리나라 음식점의 평균 생존 기간이 3.6년임을 고려하면 신청할 수 있는 사업주 자체가 많지 않다.

홀서빙 알바 누구야?…사장님들, 女유학생에 푹 빠진 이유
프랜차이즈협회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를 원하는 음식점 대부분은 이제 막 개업해 구인난을 겪는 업체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연구원은 “사업주가 숙소도 직접 구해주면서 외국인 근로자를 관리해야 하다 보니 채용을 포기하게 된다”고 전했다.

‘호텔 등 숙박업’도 마찬가지다. 숙박업은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채용 수요가 극과 극으로 달라진다. 연중 풀타임 고용이 의무인 고용허가제 근로자는 기피 대상일 수밖에 없다. 숙박업계 관계자는 “고용허가제 인력을 직고용하는 것보다 청소업체에 도급을 하는 편이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대체 인력이 많은 상황도 서비스 업체들이 고용허가제 근로자 채용을 꺼리는 이유다. 외국인 유학생(D-2, D-10 비자)은 학위 수준에 따라 주 30시간 미만 단시간 근로자로만 쓸 수 있다. 풀타임 정규직 고용을 꺼리는 사업주의 선호도와 일치한다.

고용허가제 근로자는 음식점에서는 주방 보조, 숙박업은 청소 등으로 업무가 제한돼 있다. 반면 한국어 실력을 갖춘 유학생들은 홀 서빙부터 고객 응대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외국인 유학생의 시간제 취업 허가가 2019년 6421건에서 2023년 2만1437건으로 급증한 이유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고 없이 일하는 유학생들을 감안하면 허가 건수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서비스업종에서 유학생은 노동력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경기 부진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사업주들이 늘면서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 한국에 정착할 유학생 끌어들여야

전문가들은 서비스업 고용허가제를 현실에 맞게 손질하고, ‘산업예비군’으로 자리 잡은 유학생을 노동시장에 끌어들일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인 유학생 비자를 고용허가제(E-9) 비자로 손쉽게 전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현재는 유학생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이 E-9 비자로 전환하는 게 금지돼 있다. 외국인 유학생을 한국에 정주시키면 서비스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외국인 근로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자국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취업 후 체류자격을 변경하는 절차를 간소화했다. 캐나다는 ‘졸업 후 취업비자’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유학생들이 학업을 마친 뒤에도 캐나다에 머물며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독일은 유학 기간에 취업을 허용하고, 가족들의 경제활동을 보장한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 및 정주 지원은 외국인력 정책의 일환”이라며 “유학생이 취업 비자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용희/정영효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