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협력사 임금도 올려달라"…떼법에 발목 잡히는 K조선
한화오션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20일 국회를 찾았다. “한화오션은 노동탄압 기업”이란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서였다. 이들 곁에는 진보당과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한화오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얘기를 여럿 했지만, 따지고 보면 요구 사항은 하나였다. 하청근로자 임금을 올려주고, 일부 협력사의 임금체불 문제를 한화오션이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지난 3월부터 하청지회장이 “상여금을 기본급의 300%로 올려달라”며 한화오션을 상대로 한 농성의 연장선상이다. 2020년 이후 매년 조(兆) 단위 적자를 낸 한화오션이 지난해 흑자(영업이익 2379억원)로 돌아섰으니, 다 같이 나눠 먹자는 얘기다.

문제는 원청기업인 한화오션이 하청근로자 급여 결정에 개입하는 건 불법이라는 데 있다. 한화오션이 협력사와 하청지회 사이의 임금교섭에 관여하는 순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위배된다. 대법원도 하청노동자는 원청의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터다. 협력사는 원청에 소재·부품 등을 공급하는 독립 기업이란 이유에서다.

한화오션 입장에선 “2만 명에 달하는 협력업체 근로자 중 고작 300여 명이 가입한 하청지회의 말도 안 되는 요구”라고 치부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거대 노조와 일부 정치권이 이들의 뒷배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한화오션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협력사들에게 “근로자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전부다. 직접 교섭할 권한이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하청지회는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직접 협상 테이블에 나오라”고 압박하고 있다. 심지어 “새 정부는 한화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편법과 탈법이 없는지 조사하라”는 주장도 펼친다. 최근 불거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와 3세 승계 문제를 집중 공략해 본래의 목적인 임금 인상을 얻어내겠다는 속셈으로 업계는 파악한다.

이들이 불법인 걸 알면서도 ‘막무가내’식 요구를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하청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범위를 원청으로 확대하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화오션을 통해 이슈를 만들어 새 정부 출범 후 법안 제정에 속도를 붙이려는 사전 정지작업 성격이 짙다”며 “금속노조가 한화오션을 제물로 삼은 셈”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이제 막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K조선의 상승세가 노란봉투법에 막혀 추락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방위산업과 함께 한국을 먹여살릴 몇 안 되는 유망 산업이 불법적 요구에 휘둘린다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