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만들어 먹을 시간에 프린셉의 '달콤한 휴식'을 감상하자
입력
수정
[arte] 이용재의 맛있는 미술관요즘 어린이들도 ‘탈무드’를 읽을까? 유대인의 법령집 ‘미쉬나’에 대한 해설판 모음집인 탈무드의 축약본은 내 어린 시절 필독서였다. 요즘의 세계정세를 감안하면 읽은 이유가 무색해지는 가운데, 아직 두 꼭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하나는 ‘아이들에게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유에 빠진 개구리 세 마리’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먹을 것 이야기이다.
발렌타인 카메론 프린셉
우유에서 크림을, 크림에서 버터를 분리해내는 건 맞다. 균질화 과정 때문에 거의 맛볼 수 없지만, 표면에 몽글몽글한 크림 덩어리가 떠 있는 우유를 요즘도 찾을 수 있다. ‘군계일학’ 또는 ‘알짜’를 의미하는 ‘크림 오브 더 크롭(cream of the crop)’이 바로 이 우유 표면에 뜬 크림에서 나왔다. 말 그대로 맨 꼭대기의 가장 두드러지는 존재를 뜻한다.
원심력이 원리라면 집에서도 버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가능하다. 실제로 19세기까지 버터는 집에서 소규모로 추출해 먹었다. 그러다가 1878년 스웨덴의 엔지니어 칼 구스타프 패트릭 데 라발(1845~1913)이 발명한 원심 분리기 덕분에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정말 개구리가 헤엄을 치듯 젓고 젓고 또 저어주면 되는데, 솔직히 인력으로 해내기에는 지루한 노동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교반기를 다루는 여성의 표정이 밝다고는 볼 수 없다. 영국의 라파엘 전파 화가 발렌타인 카메론 프린셉(1838~1904)의 작품 ‘버터천(The Butter churn)’ 속의 여성 말이다. 산업적인 규모로 생산하기 이전 버터는 가정에서 소규모로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고안된 교반(휘저어 섞다, churn)기가 있었으니, 바로 프린셉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나무통에 긴 손잡이가 달려 있다.
그렇다, 집에서 버터를 만들어 봐야 썩 맛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제과제빵용 믹서-나는 가지고 있다-가 있다면 손쉽고 빠르게 크림에서 버터를 분리할 수 있다. 더 단순한, 유리병과 톱니바퀴의 교반기가 달린 뚜껑으로 이루어진 기계식 버터 교반기도 쉽게 살 수 있지만 어떻게 만들어도 버터는 그다지 맛있지 않을 것이다.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스위트 크림(sweet crea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