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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꼴리와 우아함의 경계에서 풀어낸 베르트랑 샤마유의 라벨

[arte] 이진섭의 한 판 클래식

베르트랑 샤마유의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3 LP)'
프랑스 출신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 / 사진제공. 워너뮤직코리아
라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클래식 음반계는 그가 남긴 아름다운 작품들을 되새기고 있다. 올해 유니버설뮤직의 클래식 레이블인 그라모폰은 조성진의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과 <라벨 피아노 협주곡>으로 라벨의 고귀한 흔적을 되새겼다. 워너뮤직의 클래식 레이블 에라토에서는 프랑스 출신 음악가인 베르트랑 샤마유(Bertrand Chamayou)의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과 알렉상드로 타로(Alexandre Tharaud)의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재발굴해 LP로 내놓았다. 특히, 베르트랑 샤마유가 2015년에 녹음한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은 3장의 LP로 구성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재발매되어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난 베르트랑 샤마유는 파리 고등음악원에서 장-프랑수아 에세르(Jean-François Heisser)를 사사했고, 런던으로 터전을 옮겨 정명훈을 가르쳤던 피아노계의 명스승 마리아 쿠르시오(Maria Curcio)와 90년대 세계에서 가장 민감한 건반의 마술사로 평가받았던 머레이 페라이어(Murray Perahia)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파리 고등음악원 시절 베르트랑 샤마유는 장-프랑수아 에세르를 따라 셍장드루즈에 위치한 <라벨 아카데미>에 자주 방문했고, 매년 여름마다 그곳을 찾아 공부하면서 라벨에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었다고 한다. 라벨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블라드 펄레무터의 직계 제자이자, <라벨 아카데미>의 총책임자였던 장 프랑수아 에이서는 샤마유가 자연스러운 경험을 통해 라벨의 정통성을 잇는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길 바랐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라벨의 <물의 유희(Jeux d'eau, M. 30)> 악보를 처음 접했습니다. 순수하면서도 회화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어요. 다른 작곡가와 음악가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지만, 라벨의 음악은 저에게 항상 초석이 되었어요.”
- 베르트랑 샤마유 인터뷰 中

총 29곡이 3장의 LP에 담긴 리미티드 에디션
베르트랑 샤마유의 &lt;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gt;. / 사진제공. 워너뮤직코리아
베르트랑 샤마유의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은 그가 30대 중반 즈음 녹음한 중요 작품 중 하나인데, 이번에 라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리마스터링 과정을 거쳐 3장의 LP로 발매되었다. 당시 클래식 음악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샤마유는 경험을 넓히고, 음악적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라벨을 녹음했다고 밝혔다.

앨범은 샤마유가 어린 시절 처음 대면했던 곡 <물의 유희(Jeux d'eau, M. 30)>로 시작한다. 32분음으로 잘게 쪼개진 순간을 섬세하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하며 음 하나하나를 윤슬로 재탄생시킨다. 이어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M. 19>와 <샤브리에 풍으로(À la manière de Chabrier, M. 63/1)>가 담담한 어조로 곡을 이끌고 가는데, 마치 <물의 유희>의 잔향을 다독여주는 듯하다.

<거울(Miroirs, M. 43)>에 이르러 그는 음악과 빛이 만나는 순간을 연주한다. 라벨의 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색채감인데 샤마유는 이 지점을 명확하게 짚어낸다. <그로테스크한 세레나데(Sérénade grotesque, M. 5)>, <고풍스러운 미뉴에트(Menuet antique, M. 7)>, <보로딘 풍으로(À la manière de Borodine, M. 63/1)>,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Valses nobles et sentimentales, M. 61)> 등에서도 샤마유는 때론 화려하게, 때론 쓸쓸하게, 때론 우아하게 음악의 색감을 표현해낸다.

<밤의 가스파르(Gaspard de la nuit, M. 55)>는 동화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주가 인상적이다. ‘1번. 물의 요정’, ‘2번. 교수대’ 그리고, ‘3번. 스카르보’까지 샤마유가 표현하는 음악적 스토리텔링은 극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이번 앨범에서 샤마유만의 해석이 가장 돋보이는 연주는 <소나티네(Sonatine, M. 40)>가 아닐까 한다. 잔잔하게 속삭이듯 연주하다가 휘몰아치는 아티큘레이션이 내내 긴장과 완화를 동시에 선사한다. 서정적 멜랑콜리와 빛나는 우아함의 경계 어딘가에서 연주하는 그의 노련함은 이 앨범에서 <소나티네>를 자꾸만 듣게 만든다.
베르트랑 샤마유 &lt;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gt; 3장의 LP. / 사진. ⓒ이진섭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바로 <쿠프랭의 무덤(Le tombeau de Couperin, M. 68)>이다. 기교적인 접근보다는 감정의 흐름을 중점에 두고 전주곡, 푸가, 포를란느, 미뉴에트, 리고동, 토카타 등 6곡을 직조해나간다. 라벨의 본질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프랑스 음악의 에스프리(Esprit)를 표현하고자 애쓴 흔적이 많은데, 기교를 과시하지 않으면서 은근한 유머와 서정성을 곁들여 대곡의 퍼즐을 완성해나간 것이 그렇다.

베르트랑 샤마유 vs 조성진

베르트랑 샤마유가 10년 전 녹음한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은 라벨 탄생 150주년을 맞이해 2년 전부터 프로젝트를 구상해 앨범을 내놓은 조성진과는 조금 다른 해석과 속도, 농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두 피아니스트 모두 악보를 중요시한 라벨의 의도에 충실하기 위해 집중력과 섬세함을 연주로 보여준 것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의 세트리스트를 구성하는 데 두 아티스트가 보여준 관점의 차이도 보인다. 앨범에 샤마유는 총 29곡을 담았고, 조성진은 총 31곡을 담았다. 샤마유는 라벨이 쓴 모든 곡을 고집한다기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완결성에 부합하는 곡들로 세트리스트를 만들어 전곡이라고 칭했다. 앨범을 녹음하면서 더 예리한 소리를 내기 위해 피아노 튜너에게 악기의 촉감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샤마유의 말은 매우 시크하면서도 프랑스적인 화법으로 들린다.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은 누구 하나가 우위에 있다고 평가하기보다 명작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고 대물림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두 아티스트가 연주하는 라벨의 곡들을 함께 비교하며 듣는다면 인상파 작가들의 여러 그림 속에서 헤매다 나온 것 같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베르트랑 샤마유의 라벨 피아노 독주 전집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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