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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증 환자부터 밥 딜런까지...'팔색조' 케이트 블란쳇

[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

어떤 역할이든 다 내게 맡겨!
팔색조 배우, 케이트 블란쳇

성별까지 뛰어넘는 넓은 폭 연기

스티븐 소더버그 으로 스크린 찾아
케이트 블란쳇을 두고 아름답다느니, 미인이라느니 하는 소리는 그냥 다 하는 말이다. 오히려 그런 수식은 약간 오버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멋있고 당당하다. 그게 매력이다. 그래서 약간 남성적이라는 느낌마저 준다. 키가 장장 173cm나 된다. <캐롤>에서 그녀는 여자인 테레즈(루니 마라)를 사랑하고 그녀와 잔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여성성 남성성 둘 모두를 다 뛰어넘는 개념이지만 어쨌든 <캐롤>에서 블란쳇은 멋있었다.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들은 예쁘고 아름답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블란쳇의 윗세대인 메릴 스트립이 그랬고 아래 세대인 제시카 차스테인이 그렇다. 케이트 블란쳇은 특히 이 셋 중에서 독보적인데, 연기의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기 때문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팔색조다. 이런 배우의 경우 남자 역시 몇 안 되는데 그 중 한명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이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종종 루이스가 생각이 난다. 악역이면 악역(<한나>), 어떤 때는 사랑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기도 하고(<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어떤 때는 엄청나게 지식인스럽게 보이기도 하며(<매니페스토>) 또 어떤 때는 심지어 엄청나게 강인해 보이기도 한다(<골든 에이지>). 게다가 어떤 때는 꼭 독일 나치, 아리안족 여성 같은데(<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그래서 종종 매우 정치적인 영화 속 주인공 캐릭터에도 척척 들어 맞는다(<베로니카 게린>).
2018년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케이트 블란쳇. / 사진출처. ⓒMike Marsland/Mike Marsland/WireImage/IMDb
1969년생이니 이제 50대 중반을 넘겼고 필모그래피만 80편이 된다. 이제 그만 해도 될 만큼 여배우로서 일가를 이뤘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그 왕성함 역시 블란쳇의 특징이다. 사람들이(실은 내가) 요즘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취향 저격의 영화는 <블랙 백>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여기서 노련한 정보 분석가 ‘캐슬린’으로 나오고 점점 더 이중 스파이로 의심을 사게 되는데 그 비밀을 캐내려는 사람이 바로 그녀의 남편이자 역시 첩보원인 조지(마이클 패스벤더)이다. 사람은 자신의 신념 때문에 오랜 연인마저 속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처음부터 거짓으로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이 원래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인지, 저쪽을 위한 이중 스파이가 되려면 완전히 이쪽 사람으로 정체성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런 첩보영화의 핵심이다. 케이트 블란쳇만큼 그 이중성을 적확하게 연기할 여배우는 없다. 금발에 마른 얼굴, 체형은 그녀를 스파이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게다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다. 국내에서 이 영화 <블랙 백>이 잘 될까? 뭐 꼭 아주 잘되지는 않을 것이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 &lt;블랙 백&gt; 스틸 컷. 케이트 블란쳇의 마른 외형이 그녀를 스파이처럼 보이게 한다. / 사진출처. IMDb
케이트 블란쳇이 ‘미친’ 연기자라고 느끼게 되는 것은 두 편의 영화를 잇달아 보면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하나가 우디 앨런 감독의 <블루 재스민>(2013)이고 하나는 토드 헤인즈 연출의 <아임 낫 데어>(2007)다. <블루 재스민>에서 블란쳇은 한때 상위 1%의 남자와 살다가 ‘걷어차인 후’ 빈털터리가 됐음에도 여전히 자신이 상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재스민 역할을 한다. 그녀는 점점 머리가 살짝 돌기 시작한다. 당연히 혼잣말을 중얼중얼 댄다. 내가 예전에는 말야, 이런 건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말야, 내가 말야, 곧 다시 말야, 고급 아파트로 돌아갈 거란 말야, 말야말야말야 라고 끊임없이 중얼댄다. 그 연기는 아마도 우디 앨런이 가르쳐 준 것일 텐데 우디 앨런 자체가 중얼대는 데 선수이기 때문이다. <블루 재스민>의 마지막 장면에서 혼자 벤치에 앉아 끊임없이 중얼대는 재스민의 모습은 끔찍한 느낌의 피날레였다. 이 영화에서 블란쳇의 미친 연기는 일품이었다.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 영화이다. 토드 헤인즈는 밥 딜런의 정체성을 7가지로 분석해 그의 일대기를 그린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 영화로 남성인 밥 딜런 역에 도전했으며 그것도 7명의 밥 딜런을 연기한다. 이때의 블란쳇 연기는 한 마디로 능수능란 그 자체였다. 케이트 블란쳇은 <아임 낫 데어>로 연기력의 꼭지점을 찍고 <블루 재스민>으로 절정의 파노라마 연기를 펼쳤다. 이 두 영화 이후 케이트 블란쳇은 명실공히 연기파 배우 최상위로 등극했다.
영화 &lt;블루 재스민&gt;에서 케이트 블란쳇의 미친 연기는 일품이었다. / 사진출처. ©2013 - Sony Pictures Classics/IMDb
영화 &lt;아임 낫 데어&gt;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남성인 밥 딜런 역을 맡는다.
사람들에게 다소 숨겨진 영화로는 <트루스>(2016)와 <어디 갔어, 버나뎃>(2020)같은 작품도 있다. 이 두편의 영화는 케이트 블란쳇이 미국의 정치사회적 문제나 국제적인 이슈에 밝은 눈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트루스>는 부시 대통령의 허위 군 복무 사실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문서 위조라는 역공을 당한 끝에 CBS 간판 앵커 댄 래더까지 사임하게 한 ’60 미니츠’ 사태 문제를 다룬다. 케이트 블란쳇은 여기서 출중한 능력의 뉴스 PD 메리 메이스프 역으로 나와 끈질기게 추적하고, 분노하며, 정의의 이름으로 항거하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며 뒤로 물러나야 하는 역할을 해낸다. 지금의 미국과 한국 언론들이 되새길 만한 얘기의 인물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늘, 자신이 맡은 역할과 혼연일체가 되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직접 질문하는 느낌을 준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 영화 <트루스>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진짜 뉴스 PD, 진짜 기자 같았다.

<어디 갔어, 버나뎃>은 일종의 강박증, 편집증에 시달리는 한 천재 괴짜 여자 버나뎃의 이야기이다. 한때 최고의 건축 디자이너였지만 점점 괴상망측해져 가는 여자가 남극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는다. 그 과정을 블란쳇은 너무 촘촘해서, 오히려 짜증을 유발할 만큼의 압박 연기로 펼쳐 보인다. 오죽하면 남편인 엘지(빌리 크루덥)가 그녀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이런저런 행동이 이해가 갈 정도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런 히스테릭한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데 비교적 최근 영화인 <TAR, 타르>(2023)에서의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할도 그랬다. 블란쳇의 편집증 연기를 따라갈 배우, 거의 없다. 영화에서 지휘를 위한 연미복이 블란쳇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여자 레너드 번스타인 같아 보인다. 영화 속 지휘자의 실제 인물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수석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이다. 영화 주인공 리디아 타르는 결국 추락한다. 정상과 추락 사이. 이 역시 블란쳇의 넓은 연기 영역 중 하나이다.
영화 &lt;어디갔어, 버나뎃&gt;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강박증에 편집증까지 시달리는 건축 디자이너 역할을 맡았다. / 사진출처. IMDb
영화 &lt;TAR, 타르&gt;에서 역시 편집증에 시달리는 지휘자를 연기한다. 이런 히스테릭한 연기를 따라갈 배우가 있을까. / 사진출처. IMDb
케이트 블란쳇은 호주 멜버른 출신이다. 호주에도 집이 있지만 다른 배우들처럼 할리우드를 거점으로 활동한다. 이중국적이다. 특이한 것은(?) 28년간 한 남자와 스캔들 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며 아들 셋을 둔 게 다소 지겨웠는지 막내로 딸아이를 입양했다는 것이다. 유명 배우임에도 얼마나 자신의 소확행을 추구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배우라고 하는 사람이 세상의 사람들과 어떻게 반려하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실천적으로 보여 주는 사람이 바로 케이트 블란쳇이다. 끊임없이 문제작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흥행작에 출연한다. 칸, 베니스, 베를린 등 각종 유럽 영화제에서, 미국의 골든 글로브에서, 그리고 오스카 아카데미에서 빈번하게 후보로 오르고 종종 수상을 한다. 정상의 연기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케이트 블란쳇은 아마도 어느 시점에선가 스스로 박수 칠 때 떠나는, 쿨한 모습을 선보일 것이다.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가. 그게 이번 <블랙 백>일까? 그건 아직 머나 먼 얘기일 것이다. 한 20년쯤 후에나.
2018년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케이트 블란쳇. / 사진출처. ©Tristan Fewings/Getty Images/IMDb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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