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도시를 형광빛 테마파크로...“아이처럼, 놀이기구 타듯, 그냥 빠져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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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안은미의 뉴캐슬 공연축구로 유명한 뉴캐슬은 매우 전형적인 영국 북부의 공업도시다. 도시를 색으로 비유하자면, 회색이나 짙은 청색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런 뉴캐슬에서 오색찬란한 색감이 트레이드마크인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드래곤즈>가 무대에 올랐다. 회색빛 도시 뉴캐슬은 컬러풀한 안은미와 만나 순식간에 형광빛 테마파크로 변신했다. 이 작품은 올해 영국의 주요 극장 연합체인 댄스 컨소시엄(UK Dance Consortium)의 초청을 받아, 한 달간 영국 8개 도시를 순회 중이다. 지난 15일(현지 시각) 뉴캐슬 씨어터 로얄에서 열린 공연은 안은미가 현 기획사와 다양한 작품으로 월드 투어를 시작한 지 딱 200회째 공연으로, 특별함을 더했다.
UK 댄스 컨소시엄 초청 영국 순회 공연
뉴캐슬서 75분간 펼쳐진 판타지 월드
무대 막이 오르자, 안은미가 등장했다. 그는 코끼리의 긴 코처럼 보이는 은빛 튜브로 곡선을 그려가며 기이한 소리를 냈다. “오잇? 꺄아. 뀨! 퐈아!” 동물들이 낼 법한 본능적인 외계어가 쏟아지자, 무방비 상태였던 관객들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가 얼굴인지 엉덩이인지 알 수 없고, 알려고 해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이상한’ 생명체는 객석의 호기심을 단숨에 이끌었다. 낯선 외계 행성에 도착한 듯한 기이한 도입부는 이 공연이 관객에게 줄 독특한 자극을 예고했다.
안은미는 마법사인지, 무당인지, 어린아이인지, 외계인인지 모를, 좀체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한 비주얼로 분했다. 아마도 그가 상상한 세계의 용(드래곤)을 표현한 듯 보이지만, 판단은 불가능했다. 기존 공식을 깨는 색 조합과 비정형 디자인의 의상과 소품을 장착하고, 그만의 몸짓 언어로 무대를 장악했다. 기묘하지만 유쾌한 그의 세계는 괴이한 사운드와 함께 열렸다. 아주 거칠고 본능적이면서도, 한편으론 귀여운 선율처럼 느껴지는 도입부였다.
사실 이 작품의 독특한 판타지 장치는 팬데믹 시기에 탄생했다. 2000년 용의 해에 태어난 아시아 무용수들을 모으려는 프로젝트가 팬데믹으로 무산되면서, 고육지책으로 3D 홀로그램 기술을 동원한 것. 이태석 영상감독이 연출한 홀로그램 프로젝션은 반복되는 비트의 중독적인 음악과 결합해 관객들을 이 축제 속 일원이 되게 만들었다. 강렬한 비트에 몸을 흔들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 작품을 위해 준비한 의상만 200여 벌에 달한다.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무용수들이 입은 기이한 롱드레스, 몸을 휘감는 길이의 실크 스커트, 듣도 보도 못한 디자인과 색감의 의상들. 하나같이 반짝이고 화려하며, 전형적이지 않은 조합의 비주얼이 이 엉뚱한 세계에 빠져들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였다.
이날 객석 반응은 뜨거웠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10대 관객 리나(Rina)는 “정말 놀라운 공연이었다. 무용수들이 각자의 캐릭터에 맞게 개인화한 방식, 그들 각자의 퍼포먼스를 만들어낸 점이 정말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50대 영국인 관객 미셸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독특한 공연이었다. 특히 홀로그램 댄서가 무대 위 댄서들과 맞춰서 춤추는 조합이 마음에 들었고, 매우 강력한 무대 장치였다”고 강조했다.
작품의 타이틀인 ‘드래곤즈’는 영국인들에게 신선한 소재다. 중세 유럽에서 지도 제작자들은 미지의 세계를 용으로 표기하곤 했다. 용은 판타지의 세계, 그리고 특히 유럽인들에게는 신비로운 미지의 땅으로 여겨졌던 아시아의 특별한 상징이다. 신화적인 기대감이 있는 유럽인들에게, 이번 공연에 등장하는 용은 예상 밖의 용이다.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생기 넘치고 귀엽고 엉뚱한 용으로 형상화됐다.
뉴캐슬=조민선 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