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는 ‘미술 입문용’이란 착각...이중섭·장욱진이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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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수채 : 물을 그리다'
이중섭의 엽서화 등
34명 작가의 작품 100점
하지만 이는 오해다. 수채화는 유화 못지 않은 깊이를 품고 있고, 그리기는 오히려 더 어려운 그림이다. 맑고 부드러우면서도 투명하고 경쾌한 수채화의 아름다움은 다른 어떤 장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근대 서양미술의 첨병, 수채화
한국 수채화의 역사는 근대 미술의 역사와 함께 한다. 1900년대 초 국내에 처음으로 알려진 수채화 기법은 서양 미술을 국내에 앞장서서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종이에 물감이 흡수된다는 점, 물의 번짐 표현이 전통 동양화와 비슷하다는 게 첫 번째 이유. 붓과 물감, 팔레트만 있으면 그릴 수 있어 재료비가 적게 들고 진입 장벽이 낮다는 게 두 번째였다. 수채화 교육이 1910년대 미술 교육 과정에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1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런 장점들 덕분이다.
근대기의 한국 미술 대가들도 수채화를 즐겨 그렸다. 천재 화가 이인성이 대표적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전시 중 1부에서는 이인성의 ‘계산동 성당’을 비롯한 근대 화가들의 풍경화 작품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류재임 학예연구사는 “국내 화가들의 초기 수채화 작품은 밖으로 나가 대상을 직접 보고 그리는 사생(寫生)이 중심이었다”며 “이런 작품들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보이는 수장고’ 작품 보고, 그림도 그려볼까
전시 2부와 3부에서는 강요배, 김기린, 문신, 박서보 등 현대 작가들이 수채물감을 써서 완성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추상성이 강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수채화 뿐 아니라 다른 물감과 재료를 섞어 쓴 작품이 많고, 습작 느낌이 강한 그림들도 적지 않다. 근대기 이후 국내 미술계에서 수채화의 힘이 확 빠졌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술관이 준비한 수채화 관련 연표에서도 1970년대 이후에는 굵직한 사건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전시는 그간 관심 밖이었던 수채화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중섭 작가의 엽서화 코너를 보면 감탄할 것”이라는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의 말대로, 이중섭의 그림 하나만으로도 감상할 가치는 충분하다. 2층 ‘보이는 수장고’에서 전현선의 대작 ‘나란히 걷는 낮과 밤’을 감상한 뒤 옆에 마련된 공간에서 오랜만에 수채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전시는 9월 7일까지, 관람료는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