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나2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아이들의 상상력이 발견한 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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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박효진의 이상한 나라의 그림책카카모라가 오르페우스가 되는 순간
‘베르 사크룸(Ver Sacrum)’ 성스러운 봄이 될 것인가?
카카모라와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책에서 영화, 전시장으로
다시 피어나는 이야기의 기억
작년 겨울, 디즈니 영화 모아나 2가 새로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과 함께 극장을 찾았다. 영화 상영 중 한 장면을 보고 아이들이 흥분하며 말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귀 기울여 듣기도 전에 조용히 시키기에 급급했다.
극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책장으로 달음질쳐 가서 책 한 권을 가져오며 다시 흥분했다. 영화 속 장면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보았던 이야기와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신화 속 이야기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아손은 코르키스의 신성한 숲으로 황금 양털 가죽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그곳에는 황금 양털 가죽을 지키고 있는 용이 앞을 막고 있었다.
이아손의 모험에 최고의 음악가이자 시인인 오르페우스가 함께 한다.
코르키스의 신성한 숲으로 가는 항해 길에서 모든 배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바위를 만난다.
배가 바위 사이로 지나가려고 하면 큰 바위들이 간격을 좁혀 들어와 배를 호두 껍질 깨듯 부숴 버렸다. 이아손은 바위가 다시 열리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노를 저으라고 명령했다.
그때 오르페우스는 노 젓는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할 수 있도록 리라*를 연주한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 상상하고 기억하며, 다시 자신만의 장면을 만든다. 이러한 기억은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는 하나의 망으로 작용하며, 더 깊이 뇌 속에 저장된다. 책 속의 이야기는 기억, 지식을 넘어 ‘이해’로 이어진다. 카카모라와 주인공이 큰 바위를 넘어서는 위기의 장면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닌, 이 영화의 작가는 이 부분에 왜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넣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생각의 연결들은 감정의 이입, 공감의 능력을 향상한다. 단순히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이야기의 기억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에 대한 일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베르 사크룸(Ver Sacrum) ‘성스러운 봄’
얼마 전 성황리의 막을 내린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회에 갔을 때였다. 전시된 작품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관람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화가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사랑,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조용한 전시관이 조용한 콘서트장으로 변신한 순간이었다. 수많은 어른 사이에서 작품이 잘 보이지 않는지 까치발을 콩콩거리며 관람하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당황했던 나머지 조용한 전시장에서 아이 이름을 크게 부르며 놀란 눈을 하고 허둥지둥거렸다. 그런데 어느 한 관람객이 손짓하며 어딘가를 가리키며 불렀다. 손짓을 따라가 보니 아이가 한 작품 앞에 서 있었다.
오스트리아 예술가연합 비엔나 분리파의 공식 잡지인 ‘베르 사크룸(Ver Sacrum)’의 표지 작품이었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제1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의 포스터용으로 그린 그림을 표지로 활용한 것이었는데, 그림 안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책에서 자주 보던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와 황소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예술과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비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많은 관람객이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유명한 작품 앞에 모여 까치발을 들고 있을 때 우리는 조용한 한 켠, 작은 잡지 표지 앞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그 그림 앞에서, 내가 기억하던 신화의 이야기와 아이가 기억하는 이야기가 겹쳐지며 새로운 기억으로 남았다.
그림책은 단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은 책을 통해 기억하고, 상상하고, 연결하고, 해석하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책장에서, 영화관에서, 전시장에서, 그리고 삶 속 곳곳에서 다시 피어난다. 카카모라가 오르페우스가 되고, 테세우스가 전시관 속 그림 앞에서 다시 아이에게 말을 걸듯, 이야기의 기억은 살아 숨 쉬며 계속해서 새로운 ‘나만의 이야기’로 재탄생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 감정과 사고, 상상력과 공감을 키워주는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
한 시대의 예술가들이 그 말에 담은 희망처럼, 그림책과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이 피워내는 기억과 상상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따뜻하고 풍요롭게 변화시키는 지금 이 봄의 '성스러운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
박효진 길리북스 대표
*리라: 리라(lyre)는 고대 그리스에서 사용된 작은 현악기로, 말굽 모양의 틀에 여러 개의 줄을 걸어 손가락이나 피크로 튕겨 연주하는 악기. 시인과 음악가들이 시 낭송이나 노래를 부를 때 자주 사용했으며, 예술과 영감을 상징하는 악기로 여겨졌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르페우스는 리라 연주의 대가로, 그의 음악은 사람은 물론 동물과 자연까지 감동하게 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