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몸, 복제된 자아, 잃어버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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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수정의 영화 속 악녀들무대 위 아이돌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들은 얼마나 자신의 외모에 만족할까요? 아름다워 보일수록 타인이 결정한 육체로 살아가야 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계는 외모지상주의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력이 집약된 곳입니다. 몸매를 드러낸 아이돌이 무대를 장악합니다. 카메라는 그들의 얼굴, 가슴, 허리의 곡선을 부각합니다. 시청자들은 그들의 육체를 난도질하듯 하나하나 평가합니다. 누군가는 코가 너무 크고 누군가는 가슴이 빈약합니다. 완벽한 외모를 지녔다고 평가받는 누군가 역시 젊음과 미모를 잃는 순간, 끝장입니다. 그들은 대체 가능한 소비재일 뿐입니다. 곧바로 다른 신인들이 그들의 빈 자리를 메꿉니다. 연예인의 육체를 소비하는 행위는 이처럼 순환의 고리로 엮여 있습니다.
영화
우리의 몸은 언젠가 우리를 배신한다
엘리자베스는 오스카상을 받은 여배우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50대에 접어든 그녀는 왕년의 스타 취급을 받습니다. 젊음을 되찾아준다는 서브스턴스 요법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결국 유혹에 넘어가고 맙니다. 영화 초반 달걀 노른자에서 이루어졌던 복제가 엘리자베스의 육체에서 재현됩니다. '보다 나은 내가 되어라'라는 서브스턴스의 광고 문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육체를 찢는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숙주의 가슴을 뚫고 탄생하는 에일리언처럼 클론(복제 인간)은 그녀의 등골을 찢고 세상에 나옵니다. 숙주의 죽음과 함께 탄생하는 에일리언과 달리 클론은 원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공동체입니다.
카메라는 수의 입술과 엉덩이, 가슴, 배 등 그녀의 신체 일부를 확대해서 보여줍니다. 후술하겠지만, 파편화되고 조각난 바디 이미지는 이 신랄한 바디 호러 영화에서 충격적인 형태로 표출됩니다. 완벽한 바디 이미지에 대한 요구는 사회가 현대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입니다. 배는 납작해야 하지만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해야 합니다. 이 모순적 욕망을 실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수 역을 맡은 마가렛 퀄리는 풍만한 가슴을 위해 보형물을 옷 속에 덧대야 했습니다)
수의 몸에서 유방처럼 보이는 살덩어리가 튀어나옵니다. 이제 수의 몸은 기괴한 고깃덩이가 되어 관객들에게 피와 살점을 흩뿌립니다. 여성에게 가하는 사회의 폭력을 향한 피의 복수극입니다. 영화는 전형적인 인물과 상황을 내세웁니다. 자괴감과 외모 강박에 시달리는 중년 여성, 여성을 상품으로만 보는 엔터 업계 인물, 성적 매력만을 내세우는 젊은 여성. 얼핏 보면 전형적인 클리셰로 보이지만 이 설정에는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의도된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현대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영화 속 세계보다 세련되고 미묘하게 돌아갑니다.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걸 크러쉬'나 진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합니다. 외모에 관한 직설적인 언급은 무례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근원적 욕망은 여전히 아름답고 젊은 여성의 육체를 판매하려는 데 있습니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그 욕망의 원형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 위해 전형적인 인물과 상황을 제시합니다.
이수정 문화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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