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 같은 연주"…4월을 적신 6일간의 '베토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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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E가 되돌아본 협연
단원 60명, 작지만 강한 유럽 대표 중형악단
'伊 전설의 지휘자' 아바도가 21년간 이끌어
"피아니스트 아닌 지휘자 김선욱과는 첫 호흡
숨 멎는 테크닉으로 풍부한 베토벤 선보여
새 레퍼토리로 이달 공연 성공적으로 마쳐
우리의 강점은 연주 중 이뤄지는 소통·협력
지휘자의 즉흥적 창의성 맞춰 조율 가능"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21년간 이끌면서 이 악단은 유럽을 대표하는 중형 악단이 됐다. COE가 내한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부를 들려줬다.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지휘봉을 들고 연주도 했다. 이 악단 단원들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COE의 매력과 이번 공연의 특색을 짚어봤다.
이 악단의 단원은 단 60명. 하지만 COE를 거쳐 간 지휘자들을 보면 그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아바도뿐 아니라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이 오랜 기간 이 악단과 함께 유럽 음악인의 교집합을 만들어왔다. 최근엔 사이먼 래틀, 네제 세갱과 같은 지휘 대가가 일원으로 합류했다. COE는 지난 3일 대전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5일 서울 LG아트센터, 7~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했다. 이틀에 걸친 롯데콘서트홀 공연은 날짜별로 프로그램이 달랐다. COE는 롯데콘서트홀 공연 첫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2·4번을 연주한 뒤 둘째 날 협주곡 3·5번을 선보였다.
“김선욱, 풍부하고 뛰어난 음악적 직관 갖춰”
각 악기를 이끄는 수석도 굵직한 경력의 소유자다. 야스퍼 드 발 호른 수석연주자는 2004~2012년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에서 호른 수석으로 활동했다. 그는 “COE의 강점은 연주 중 이뤄지는 비언어적 소통”이라며 “김선욱은 풍부하고 뛰어난 음악적 직관을 갖춘 만큼 익숙한 레퍼토리에도 새롭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불어넣었다”고 했다. 고야마 리에 호른 수석연주자는 3년 전 내한 공연에서 김선욱을 만난 경험을 떠올렸다. 그는 2020년부터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바순 수석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고야마 수석은 “다양하고 섬세한 표현력, 명료하고 빛나는 음색, 뛰어난 그의 테크닉은 숨이 멎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고야마 수석은 김선욱이 표현할 베토벤 음악이 더 각별하다. 통상 바순은 다른 독주 악기가 빛나도록 든든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베토벤 작품에선 바순이 솔로로 치고 나가 빛날 때가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베토벤 작품은 바수니스트에게 보석과도 같아요. 바순이 가진 어둡지만 따뜻하고 풍부한 음색을 솔로 연주로 드러낼 기회죠.”
챔버 오케스트라 매력은 ‘유연함’
한국에선 중소규모 악단보다 연주자 80명 이상이 합을 맞추는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대세다. 실내악보다는 교향곡이 주목받는 국내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 COE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대형 악단에선 찾을 수 없는 중소규모 악단의 매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플레처 대표는 “COE는 실내악부터 중규모 교향곡까지 폭넓게 연주할 수 있다”며 “카멜레온처럼 지휘자의 의도에 맞춰 연주 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이 COE의 매력”이라고 말했다.“이 악단 이름에 붙는 챔버(chamber)는 단순히 규모를 뜻하는 게 아니고 실내악을 연주하면서 단원들이 소통하고 협력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대형 교향악단은 악기별 구역이 나뉘어 있고 지휘자가 이를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COE에선 단원들이 서로 세심히 듣고 (직접) 조율해가며 지휘자와 음악을 해석합니다.”
수석연주자도 작은 규모에서 오는 민첩함을 강조했다. 고야마 수석은 “COE는 대규모 교향악단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며 “교향악단이 풍성하고 꽉 찬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소규모 악단은 더 민첩하고 투명한 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드 발 수석도 “규모가 작다 보니 (COE 단원들은) 지휘자와 솔리스트의 즉흥적인 창의성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데, 이는 대형 악단에선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로맹 기요 클라리넷 수석연주자는 투명함과 명확함, 에너지 등을 이 악단의 매력으로 꼽았다. 기요 수석은 2008년부터 COE 수석으로 활동했다. 스위스 제네바 음악원과 서울대 교수로서 후학도 양성하고 있다. 그는 “대규모 오케스트라에서 풀타임으로 연주하는 것보다 순회공연을 하며 파트타임으로 연주하는 (중규모) 오케스트라에 있는 게 더 좋다”며 “COE는 반복되는 일상(루틴)과 안락함에서 벗어나 음악가로서 특별한 삶을 살게 해주는 에너지”라고 정의했다.
아바도 DNA…“‘3부 공연’ 땐 한국 음식 즐겨”
단원들이 챔버 오케스트라에 애정을 쏟는 데엔 아바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아바도는 창립 시점인 1981년부터 21년간 COE를 이끌었다. 단원들이 아바도에 대해 각자 나름의 추억을 품게 된 배경이다. 플레처 대표는 “아바도는 말수가 적었지만 음악적 통찰로 많은 이의 음악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이라며 “음악 자체에만 집중하고 다른 문제엔 흔들리지 않던 그의 모습에서 음악을 향한 진심, 사랑, 존경심 등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엔노 젠프트 더블베이스 수석연주자는 “조용하고 수줍어하던 아바도의 모습은 오히려 그가 악단 음악을 완벽히 통제하는 모습을 돋보이게 했다”며 지휘 거장의 생전 모습을 회상했다.COE가 45년째 단단하게 활동해온 비결은 뭘까. 플레처 대표는 “특정 국적, 소속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에만 충실한 점이 긴 활동의 원동력이 됐다”며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에 관객들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악단의 또 다른 일원인 데인 로버츠 베이시스트는 “COE엔 ‘아름다움은 안전과 재앙의 경계에 있다’는 말이 있다”며 “음악적 표현을 위해 기술적 위험을 감수하자는 의미인데 이는 단원들의 음악적 신념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내한 공연은 단원들에게 한국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도 선사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호른 연주자이자 지휘자로 활약한 드 발 수석은 “한국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설렜다”며 “연주자들 사이에서 ‘3부 공연’으로 불리는 뒤풀이 시간에 한국 음식들을 즐겼다”고 했다.
이주현 기자 deep@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