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슈필(Singspiel)이란 음악 장르가 있다. 징은 Sing, 영어로 Song(노래)이고, 슈필은 Spiel, 영어의 Play(놀이(극))이다. 곧 노래극을 말한다. 독일어라고 하면 ‘숨 막힌다’, ‘답답하다’ 란 반응이 주종이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다. 성냥갑을 Streichholzschächtelchen(슈트라이히홀츠셰히텔헨), 진주 같은 눈물방울을 Perlentränentröpfchen(페를렌트레넨트뢰프헨)이라고 하는 것에 비하면 약과 아닌가.

대략 1750년 즈음부터 징슈필이란 단어가 비엔나에서 처음 등장한다. 오스트리아의 계몽군주 요제프 2세는 시민⸱평민들을 위한 오페라로 환심을 사고 싶었다. 프랑스어⸱이탈리아어를 모르는 계층을 위한 독일어 작품이 필요했던 것. 징슈필, 노래극은 극의 대사가 우선하고 여기에 노래를 보태는 형식이다. 오페라로 따지면 레치타티보(Recitativo)가 없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레치타티보는 오페라에서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것이니, 이게 없으면 극의 전개가 산뜻하고 밀도가 높아지는 특징이 있다.

징슈필은 대부분이 희가극인데, 모차르트에 의해 최초로 유명해진 작품이 후궁으로부터의 도주(후궁 탈출, 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이다. 만년의 걸작 마술피리(Die Zauberflöte)도 사실은 징슈필에 속한다. 지금은 둘 다 뭉뚱그려 오페라로 칭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후궁 탈출’은 튀르키예를 배경으로, 해적에게 납치된 애인 콘스탄체를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스페인 귀족 벨몬테 이야기다. 무서운 악한인 줄만 알았던 바사 젤림(Basa Selim), 즉 튀르키예의 태수(太守)가 두 젊은이의 지극한 사랑에 감복해 죽음 대신 행복을 선사하는 피날레가 인상적이다. 여기엔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시기, 튀르키예에 대한 동경⸱매력과 멸시⸱혐오라는 이중적인 인식이 반영돼 있다.

아리아 둘을 소개한다. 먼저 벨몬테가 태수의 궁전(하렘, Harem)에 당도해 콘스탄체를 그리며 부르는 사랑 노래가 있다.

‘오 이토록 간절히, 또한 열렬히(O, wie Ängstlich, o, wie Feurig)’

"오 이토록 간절히, 열렬히 두근대다니 / 사랑으로 가득 찬 이 심장! / 재회의 눈물이 보상하리라, 이별의 불안한 고통을 / 벌써부터 떨립니다, 그리고 비틀거립니다 / 겁이 납니다, 그리고 동요됩니다 / 부풀어 오릅니다, 떨리는 이 가슴 / 아, 이것은 그녀의 속삭임인가, 극도로 애가 탑니다 / 이것은 그녀의 탄식인가, 나의 두 뺨은 불타오릅니다 / 혹시 거짓이나 꿈은 아닌지”

[프리츠 분더리히(Fritz Wunderlich)가 부르는 '벨몬테의 아리아']


독일이 낳은 불세출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의 노래로 들어야 제맛이다. 우리 판소리에 '천구성'이란 게 있다. 천성적인 명창의 소리. 선천적으로 맑고 곱고 풍부한 성량을 타고나 하늘에서 내려준 목소리라 일컫는다. 천구성 중에서도 특히 슬픔이 깃든 소리를 애원성(哀怨聲)이라 하는데 최상으로 친다. '청아하고 미려한 궁극의 소리', 바로 분더리히의 그것이다.

그는 고대하던 미국 데뷔를 앞두고 집에서 친구들과 축하 파티를 하다가 계단에서 실족해 즉사한다. 36세, 통탄할 죽음이었다. 그러나 몇 안 되는 녹음들은 60년이 지나도 찬연히 빛나고 있다.
프리츠 분더리히(Fritz Wunderlich, 1930~1966.) / 사진. © Siegfried Lauterwasser / DG
프리츠 분더리히(Fritz Wunderlich, 1930~1966.) / 사진. © Siegfried Lauterwasser / DG
다음은 콘스탄체의 아리아. 예쁜 여자들의 숙명은 아군과 적군을 막론하고 사랑을 고백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튀르키예 태수 젤림의 유혹과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절을 지키는 그녀가 부르는 노래다. '어떤 고통이 오더라도(Martern aller Arten)'. 여기엔 소프라노가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기교가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주 시간 9분 안팎의 난곡(難曲). 잉게보르크 할슈타인(Ingeborg Hallstein)이 빼어나게 잘 불렀다. 역대 독일 디바 중 가장 아름다운 외모에 반듯하고 맛깔나게 노래하는 데 정평이 나 있다. (1936년 생, 뮌헨 출신. 88세.)
잉게보르크 할슈타인(Ingeborg Hallstein) / 사진=필자 제공
잉게보르크 할슈타인(Ingeborg Hallstein) / 사진=필자 제공
"어떤 고문이 기다린다 해도 나는 웃으리라 / 어떤 고통도 아픔도 나를 흔들 수는 없으리 / 오직 진실과 함께 할 때 두려울 것이 어디 있으랴 / 어떤 무서운 명령이든 내려라. 미친 듯이 협박하고 벌하려무나 / 죽음을 맞더라도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잉게보르크 할슈타인(Ingeborg Hallstein)이 부르는 '콘스탄체의 아리아']


오페라 '후궁 탈출'은 1782년, 26세의 팔팔하고 자존심 강한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의 출세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작품으로, 위대한 범(汎) 독일인 모차르트가 독일어로 쓴 자긍심 넘치는 명작이다. 그 안에서 꿈틀대는 보석 같은 아리아들을 놓친다면 당신은 충분히 불행한 사람일 터.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