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회의는 춤춘다
1814년 9월부터 1815년 6월까지 10개월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선 밤마다 무도회가 끊이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전후 질서를 다시 짜는 회의에 참석한 200명이 넘는 정치인과 외교관이 무도회의 주역이었다. 외교 협상 테이블에 쌓인 난제들은 오스트리아 재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가 마련한 무도회와 만찬장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이런 모습을 리뉴백작 카를 요제프 라모랄은 “회의는 춤춘다”는 표현으로 압축했다.

화려한 복장의 선남선녀가 와인잔을 들고 환담하며 왈츠를 추는 무도회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절’의 한 장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서구 주요국에선 여전히 중요한 정치·사회적 행위로 명맥을 이어왔다.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 대통령 취임 축하 무도회가 대표적이다. 대통령과 부통령 내외가 참석하는 무도회는 20세기 초 일시 폐지된 적이 있지만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취임과 함께 부활한 이후 꾸준하게 규모를 키워왔다.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전후해 워싱턴DC에서도 3대 공식 축하 무도회와 17개 비공식 무도회가 줄지어 열린다. 그중에서도 취임식 당일 저녁 열리는 ‘사령관 무도회’(Commander in Chief Ball)와 ‘자유의 취임 무도회’(Liberty Inaugural Ball), ‘스타라이트 무도회’(Starlight Ball)가 핵심으로 꼽힌다. 특히 정·재계 VIP가 모여 트럼프 대통령과 친밀감을 높일 기회가 될 스타라이트 무도회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부부와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등이 참석한다는 소식이다.

취임 무도회는 단순한 사교 행사가 아니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국가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얽힌 수많은 물밑 협상이 이뤄진다. 200년 전 빈의 무도회 구석에서 프랑스 외무대신 탈레랑은 ‘똥을 황금과 교환하는 일’에 비견되던 패전국 프랑스의 지위를 승전국과 동등하게 인정받고 100년 평화의 초석을 닦았다. 한국 기업인도 그에 버금가는 ‘민간 외교사절’ 역할을 해내길 기대한다.

김동욱 논설위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