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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욱 기자
    김동욱 기자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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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 중기과학부장입니다.

  • 고대 중국에서 뿌리내린, 나와 남을 구분하고 타자를 ‘인간 이하의 동물 같은 존재’로 바라보는 세계관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국가로 퍼졌다.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 각지에 오랜 후유증을 남겼다.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율령제(律令制)의 확산이다. 율령제는 중국식 화이사상(華夷思想)을 확산하는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 중국과 가장 먼저 직접 접촉한 고구려부터 중국을 빼닮은 자국 중심적 세계관이 발현됐다. 414년에 조성된 광개토대왕비에서부터 자신을 높이고 주변을 깎아내리는 시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비문 곳곳에서 ‘노객(奴客)’ ‘귀왕(歸王)’ ‘궤왕(跪王)’ 등 남을 폄훼하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이다. 고구려는 자신들에게 복속한 주변 집단에 대해 자신들을 정점으로 하는 상하 관계로 서열을 매겼다. 백제를 겨냥한 ‘백잔(百殘)’ ‘잔국(殘國)’ ‘잔주(殘主)’ 등의 비칭(卑稱)에서도 자국 중심적 세계관이 진하게 느껴진다.4~5세기경이 되면 고구려는 주변의 신라, 예(濊), 동옥저(東沃沮) 등을 포함한 자신들만의 세계관, 그들만의 질서를 구축했다. 고구려에 신라는 “예부터 속민(屬民)으로 고구려에 조공하는”(광개토대왕비) 존재였으며, 고구려는 “동이(東夷) 매금(寐錦) 위에 군림하는”(충주 고구려비) 존재였다. 고구려는 ‘천하의 중심’(모두루묘지)이자 ‘천손의 나라’(신포시 오매리 절골터 금석문)였다. 일본 역사학자 고치 하루히토(河內春人)는 “고구려가 수당과의 전쟁에서 말갈(靺鞨)을 동원하는 등 주변에 영향력을 실제로 행사하는 데 중화사상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작지

    2025.05.19 10:00
  • [책마을] 돈 풀기가 낳은 '좀비 경제'…자본주의는 길을 잃었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삐걱댄다. 다른 모든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에서 불평등이 심화하고 기업 독점이 확대되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마찰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망나니처럼 날뛰는 자본주의의 ‘고삐’를 죄지 않은 탓일까. 하지만 자본주가 ‘일탈’한 이유를 뜯어볼수록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는 노력은 등한시한 채 ‘돈 풀기’(이지머니)의 유혹에 빠져 몸집만 키운 정부가 자본주의를 망치고 있다는 증거가 쏟아진다. 자본주의가 악한 게 아니라 거대정부의 유혹이 자본주의를 타락시킨 주범이라는 얘기다.<무엇이 자본주의를 망가뜨렸나>는 25년간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글로벌 투자전략을 책임진 루치르 샤르마 록펠러인터내셔널 의장이 살펴본 현대 자본주의 ‘진단서’다. 월가의 투자 전설로 불리는 저자는 시종일관 경쟁과 성장이라는 자본주의의 기둥을 무너뜨리는 원흉으로 ‘정부 기능의 확대’를 꼽는다.일반적으로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등장으로 뉴딜정책 이후 이어진 ‘큰 정부’ 기조에 제동이 걸렸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일부 부분에서만 잠정적으로 정부 확대의 속도가 조금 늦춰졌을 뿐이다. 정부의 팽창은 멈춘 적이 없었다. 감세, 탈규제, 국영 기업 민영화, 자유무역협정 확대, 재정적자 및 공공 부채 감축은 말만 번지르르할 뿐이었다. 대신 복지와 규제는 꾸준히 확대됐다. 큰 정부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지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주기적으로 빚어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커진 ‘시장의 실패’를 질책하는 목소리는 정부 지출을 과도하게 부추겼다.작은 정부를 공언한 정

    2025.05.16 17:25
  • 자신이 속한 집단을 높이고, 외부 민족을 짐승이나 벌레에 비유하거나 머나먼 상상 속 공간에 사는 괴물처럼 묘사하는 사고방식은 세계 각지의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고대 그리스인이 주변 이민족을 두고 “말을 제대로 못 한 까닭에 마치 짐승처럼 ‘버~ 버~’ 소리를 내는 존재”라며 ‘바르바로이(βάρβαροι)’ 라고 부른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기후가 좋은 이탈리아반도 출신의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도 게르만 민족의 풍속을 그린 <게르마니아>에서 “게르마니아는 삼림들로 인해 섬뜩하고 늪지들로 인해 보기 흉한 지역”이라며 “이곳에서 과수는 키울 수 없고, 가축은 수는 많지만 대부분 보잘것없다”고 박하게 평가했다. “뿔 있는 짐승까지도 번듯한 뿔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묘사는 타지에 대한 폄하와 적개심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조성되는지와 이를 타파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잘 보여준다.반면 자신들은 하늘의 선택을 받은, 신이 점지한 특별한 존재라는 의식도 ‘보편적’이라고까지 부를 만큼 ‘흔한’ 현상이다. 중국에서 황제를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을 지닌 천자(天子)라고 일컬은 것처럼 유목민족인 흉노족을 이끈 지도자인 ‘선우(單于)’도 자신을 하늘이나 천신에 비견할 만한 자격을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로 여긴 게 대표적이다. 선우의 공식 호칭은 ‘탱리고도선우(撐犁孤塗單于)’로, 하늘을 뜻하는 ‘탱그리(撐犁)’의 자손인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흉노제국을 통일한 묵특선우(冒顿单于)는 한나라 문제(文帝)에게 보낸 서한에는 ‘하늘

    2025.05.12 10:00
  • “무제가 즉위한 후 동중서(董仲舒)는 강도(江都)의 국상(國相)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춘추>에 기재된 자연재해와 특이한 현상 변화를 보고 음양(陰陽)의 도가 바뀌는 원인을 유추했다. 따라서 비가 내리길 청할 때는 모든 양기(陽氣)를 가두고 모든 음기(陰氣)를 방출시켰다. 비가 그치길 청할 때는 그 반대의 방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방법을 강도국에도 적용해 실행했는데, 원하는 대로 실행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나쁜 짓을 하면 하늘이 벌을 내린다거나 정치 지도자의 잘못을 두고 하늘이 천재지변으로 경고한다는 생각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통상 사마천의 <사기(史記)> 유림열전(儒林列傳)에 등장하는 전한 시대 유학자 동중서(董仲舒)가 이런 원시적 사고를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구체화한 인물로 평가된다. <사기>에 묘사된 동중서는 자유롭게 비를 내리게도, 그치게도 하는 인물이다. ‘음양의 조화’를 탐구해 비를 부르고, 그치게 하는 ‘도사’와 같은 존재인 것.동중서는 각종 재이(災異)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음양의 변화’를 꼽았다. 그가 판단 근거로 삼은 것은 <춘추(春秋)>였다. <춘추>가 다루는 242년간의 시기에 등장하는 홍수, 가뭄, 일식, 지진, 혜성, 운석, 서리, 폭설, 해충, 한해와 같은 재이(災異)에 대해 동중서는 그 재난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음양설(陰陽說)에 기초해 설명했다. 그는 “봄과 여름의 주도적인 양기나 가을과 겨울의 주도적인 음기는 하늘(天)에 있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있다”고 주장하며 자연 세계에 적용되던 음양의 원리를 인간세계에까지 확장했다.때마침 <춘추>가 다루는 세계에선 홍수나

    2025.05.05 10:00
  • “소마(素麻)는 1석 5두(一石五斗)를 빌려 1석 5두를 상환했으며 아직 7두 반(七斗半)이 남아 있다.”2008년 충남 부여 쌍북리 저습지에서 출토된 ‘좌관대식기(佐官貸食記)’ 목간에는 백제의 이자 관련 기록들이 담겨 있다. 특히 관(官)이 백성들에게 쌀을 빌려주고 회수하는 과정에서 연 50%에 달하는 높은 이자율을 적용한 사례가 다수 눈에 띈다. 고려시대에 ‘쌀 15두(斗)에 5두’ 하는 식으로 연 33% 정도의 이자율을 적용했고, 조선시대 환곡(還穀)이 감가상각비 조로 모곡(耗穀) 10%를 더 받은 것에 비하면 상당한 고리(高利)가 아닐 수 없다.외국에서도 고대사회에선 ‘이자’가 ‘고리대금’ 수준이었던 게 흔한 일이었다. 원금을 떼일 위험이 크고, 농업의 한계생산성이 증대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에선 곡물의 연평균 이자율이 33.3%에 달했고, 아시리아(30~50%)와 페르시아(40%)에선 원금의 절반 가까이 이자로 냈다. 다만 실제 이자를 취하는 데는 유연한 면이 있었다. 함무라비법전은 가뭄이나 홍수로 흉년이 들었을 때는 1년간 곡물 이자의 수취를 유예할 것을 명시했다.고대 그리스에선 ‘선박 저당 대부(bottomry loans)’가 자주 접할 수 있는 이자의 형태였다. 미리 돈을 빌려줘 배를 빌리거나 화물을 확보하도록 한 뒤, 해상 교역을 마치면 큰 폭의 이윤을 챙기는 행위였다. 배가 침몰하면 한 푼도 챙길 수 없지만, 해상 교역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큰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아테네에서 오늘날 튀르키예의 보스포루스 해협까지 왕복할 경우 전시에는 이윤이 투자금의 30%, 평시에는 투자금의 22.5%를 ‘이자’로 챙겼다. 위험한 항해의 경우에는 ‘이자

    2025.04.28 10:00
  • 기원전 30년부터 기원전 14년의 기간은 라틴어 문학의 황금기였다. 로마 시대를 대표하는 주요 문학 작품이 이때 쏟아졌다. 수많은 시(詩)가 프린켑스(원수)였던 아우구스투스의 후원을 자양분 삼아 꽃을 피웠다.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였던 가이우스 킬니우스 마이케나스(Gaius Cilnius Maecenas)는 당대의 문인들을 후원하는 로마 권력자의 통로였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마이케나스의 이름은 예술과 학문에 대한 후원을 의미하는 ‘메세나(Mecenat)’라는 단어를 통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서구 문학사에서 ‘아우구스투스 문학(Augustan literature)’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기의 작품들은 라틴어 문학의 황금기로 평가된다. 당대의 유명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 엘레지(悲歌) 작가 티불루스, 프로페르티우스와 오비디우스는 모두 아우구스투스 혹은 마이케나스의 후원을 받으며 아우구스투스의 이미지를 조성하는데 동원됐다.이들 문인은 ‘존엄한 자’라는 뜻을 지닌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처럼 절대 권력자의 업적과 덕성이 문학 작품의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들은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상(像)을 만들어 나갔다. 시인들은 아우구스투스가 듣기를 원하는 데로 로마의 역사를 읊었다. 시인의 언어는 곧바로 권력자의 언어였다.기원전 19년경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베르길리우스는 대표작 ‘아이네이스’에서 건국의 영웅 아이네아스라는 인물을 통해 이상적인 지도자(프린켑스)의 이미지를 도출했다. 신화 속 인물이었던 아이네이아스와 카이사르,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사이의 연관성은 지속해서 암시됐다. 베르길리우스는 독자들에게 그의 황제

    2025.04.21 10:00
  • 세월 지날수록 더 빛난다…'살아있는 신화' 피터 틸의 '통찰' [<제로 투 원> 출간 10주년]

    “그동안 나는 성공과 실패의 수많은 패턴을 발견했다. 비록 이 책에서 ‘성공의 절대 공식’은 등장하지 않지만 내가 찾아낸 성공의 패턴을 (꾸밈없이) 공유한다.”오늘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핫’한 인물은 누구일까. 페이팔과 팰런티어를 설립하며 화려한 스타트업 신화를 썼고, 페이스북과 스페이스엑스를 비롯한 수백개의 스타트업에 투자자로 참여하는 등 ‘황금 감식안’을 뽐낸 인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대선 출마의 초석을 닦고, J.D 밴스 부통령을 정치 거물로 이끈 피터 틸 팰런티어 테크놀로지 회장이 단연 첫손에 꼽힐 것이다.틸 회장이 자신의 도전 경험과 성공비결을 곱씹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유일한 책이 <제로 투 원>(한국경제신문)이다. 세계적으로 100만부 넘게 팔리며 ‘스타트업계의 바이블’로 불린 이 책이 국내에 소개(2014년)된 지도 10년이 됐다.눈 깜짝할 사이에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대격변이 이어지는 첨단 기술 전쟁의 시대에도,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100년을 내다보는 틸 회장의 안목은 조금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 이 현대 경영의 고전은 오늘날에도 제2의 구글, 제2의 애플, 제2의 페이스북을 꿈꾸는 스타트업 기업인들에게 여전히 끝없는 영감을 주고 있다. 10주년 기념판을 새로 선보인 시점에서도 이 책은 도전하는 기업인의 열정을 북돋우고, 경쟁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주의를 주며, 사업의 본질에서 한눈팔아선 안된다는 서늘한 경고를 전한다.책이 전하는 가장 큰 매력은 ‘살아있는 신화’가 주는 경외감과 생동감이다. 낡은 역사책 속에 박제된 과거의 인물이 아닌, 같은 시대를 호흡하는 인물들의 성

    2025.04.19 08:00
  • 영국 대영박물관은 ‘바빌로니아 천문일지(Babylonian Astronomical Diaries)’라고 불리는 쐐기문자로 적힌 일련의 점토판을 소장하고 있다. 1988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의 저명한 근동학자 에이브러햄 삭스와 오스트리아의 아시리아 연구가인 헤르만 훙거가 번역한 내용이 공개된 이들 점토판은 흔히 ‘삭스·훙거 컬렉션(Sachs-Hunger Collection)’이라고 불린다.이 점토판에는 매일의 날씨와 천문 현상이 촘촘하게 기록돼 있다. 화성이나 금성 같은 행성과 별들의 움직임은 물론 비, 우박, 돌풍 등의 기상현상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자연현상뿐 아니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점토판 322)과 같은 주요 정치적 사건에 대한 기록도 체계적으로 남아 있다. 특정 날짜의 상품 가격 등도 담겨 있어 역사 정보로서 가치가 작지 않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점토판 320’이다. 이 점토판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 간 운명이 결정된 가우가멜라 전투를 전후한 시기의 정보가 기록됐다.왕의 호칭 변화도 눈에 띈다. 가우가멜라 전투가 있던 날(24번째 날) 아침에 점토판은 다리우스를 가리켜 ‘세계의 왕’이라고 부른다. 곧이어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에 대패한 내용을 언급하고선 “왕의 부대가 그(다리우스)를 버리고 떠났다”고 묘사한다. 조금 더 뒤에는 “세계의 왕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에 들어왔다”라고 담담하게 기록한다. 저명한 고대사학자 에이드리언 골즈워디는 이를 두고 “누가 왕이 되었든, 신전의 기록은 그저 계속 이어질 뿐”이라고 평했지만,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정보 속에서 당대인

    2025.04.14 10:00
  • 전통 시대 중국에선 상업 활동과 상인, 그리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조세 수입과 관련해 국가가 상업 발전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에 저항하는 민간의 움직임이 오랫동안 대립했다.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라는 민간 격언의 뿌리는 깊었다. 일찍부터 발달한 상업·시장경제와 이를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국가 간에는 긴장 관계가 꾸준히 이어졌다.자본 활동과 부의 축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중국사 초기 단계부터 등장했지만, 이는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엄격한 신분 구조를 유지하고, 농업 중심적 경제를 관철해야 한다는 시각이 중국사의 전 시대를 관통한 주류 사상이기도 했다.한나라 때 상홍양(桑弘羊)이란 인물과 얽힌 이야기는 이러한 국가권력과 민간 상업 간 긴장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기원전 110년 한나라 무제는 낙양 상인 집안 출신인 상홍양을 발탁해 국가 재정을 맡겼다. 상인 출신답게 상홍양은 상공업과 무역을 중시한 현실적 인물이었다.상홍양의 정책 구상은 그의 저서 <염철론(鹽鐵論)>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재정과 외교, 도덕, 철학 등 다방면의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핵심은 경제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특히 책의 정책 초점은 국가 재정에 맞춰져 있었다.때마침 국가의 자금 수요가 폭증했다. 앞서 기원전 140년 한 무제 즉위 이후 한나라는 사회적·경제적으로 안정되며 번영을 구가해왔다. 하지만 동시에 이 시기는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상류층의 사치품 수요가 급증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 이민족과 군사적 대립이 늘면서 국가 재정 수요가 급증했

    2025.04.07 10:00
  • 함무라비 법전은 오랫동안 인류 ‘최초의 법전’으로 불렸지만, 사실 그보다 앞선 시대에 만들어진 법전이 적지 않다. 나중에 발견된 ‘우르남무 법전’이나 ‘에슈눈나 법전’ 등이 함무라비 법전보다 이른 시기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행한 법률이지만 함무라비 법전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고대 바빌로니아의 6대 왕인 함무라비(BC 1792~1750)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재통일한 군주다. 그의 시대에 조성한 건축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쐐기문자 텍스트를 통해 당대의 모습이 상세하고 생생하게 전해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an eye for an eye, a tooth for a tooth·lex talionis)”라는 문구로 널리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은 함무라비가 새로 건설한 왕국의 통합을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여 년 전 우르 왕국이 몰락한 뒤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던 여러 도시 국가를 하나로 통합하는 수단으로 새로운 법규범을 도입한 것은 대단히 중요했다.2.35m 높이의 검은색 섬록암에 아카드어로 새긴 함무라비 법전의 작성 연대는 기원전 1772년경까지 올라간다. 1901년 프랑스 고고학자 자크 드모르강이 이끄는 탐험대가 발견한 이 법전은 당시의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282개 법 조항으로 구성된다. 텍스트 첫 줄에서부터 함무라비는 모든 백성을 공평하게 대하는 ‘정의로운 왕’으로 소개한다.법전에는 경제적 내용이 가득하다. 거짓 증언과 절도, 은닉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고, 노동·재산·상거래·결혼·이혼·상속·입양·농업·급여·임대료에 관한 사법적 문제도 다루고 있다. 바빌로니아와 외국에서

    2025.03.31 10:00
  • “만약 스파르타라는 도시가 폐허가 돼 신전과 건물의 기초만 남게 된다면, 시간이 흐른 뒤 후손들은 이 지역이 과연 펠로폰네소스반도의 5분의 2를 점령하고 지역 맹주로 군림하던 강력한 장소였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 도시에는 신전이나 웅장한 기념물도 없다. 그저 마을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을 뿐이다. 외관만 비교하면 아테네가 스파르타보다 2배는 강성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아테네 출신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당대의 라이벌 스파르타를 두고 ‘검소함의 모범’으로 높게 평가했다. 오늘날에도 스파르타를 가 보면 과거의 영화를 떠올릴 수 있는 이렇다 할 유적을 찾을 수 없다. 명목상 그리고 실제로 검소한 평등사회를 지향했던 스파르타의 특색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플루타르코스 등에 따르면 기원전 7세기의 전설적 입법자 리쿠르고스는 부를 축적하고 사치를 누리는 것을 없애기 위해 사실상 화폐 사용을 금지했다고 한다. 토지는 추첨으로 균등 분배했다고 전해진다.실제로 스파르타 지배층들은 새로운 부의 창출보다 근검과 절약을 미덕으로 여겼고, 이 같은 규범을 실천에 옮겼다. 스파르타의 용사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식사도 함께 하고, 초라한 진흙 벽돌로 지은 집에서 잠도 같이 잤다.보통의 스파르타인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를 비롯한 각종 개인의 자유, 사적 재산의 소유 등은 극도로 제한됐다. 교육도 좋게 보면 의무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강제 교육’이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스파르타식 교육이 지향한 목적은 문자 그대로 ‘개·돼지’로 여기던 피정복민 노예인 헤

    2025.03.24 10:00
  • [천자칼럼] 발 묶인 히스로공항

    “세상사에 울적해질 때마다 나는 히스로공항을 떠올리곤 한다.” 2003년 개봉한 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영화배우 휴 그랜트가 읊는 ‘영국의 관문’에 얽힌 독백으로 시작한다. 영화 속 공항은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승객이 오가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사랑과 행복이 교차하는 감정적 장소로 새롭게 그려진다.현실에서도 공항은 방문국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감성적 공간이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전해지는 독특한 체취, 입국심사원이 미소와 함께 건넨 인사에 사르르 녹아내린 긴장감 등의 경험은 만국공통이다. 예상보다 캐리어를 빨리 찾았을 때의 소소한 즐거움이 유명 관광지에서 찍은 기념사진보다 더 오래 뇌리에 남기도 한다.반대로 결항과 지연에 발목을 잡히면 여행을 둘러싼 기억에 통째로 먹구름이 낀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히스로공항에서의 상주 경험을 담은 <공항에서 일주일을>에서 “나는 내 비행기가 늦어지기를 갈망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공항에서 뭉그적거릴 수 있으니까”라고 공항을 향한 무조건적인 애착을 드러냈다. 하지만 범인이 지연·결항 정보가 가득한 안내판 앞에서 진정하기는 쉽지 않다. 사업 스케줄에 차질이 빚어지고, 매서워질 직장 상사의 눈초리 걱정에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세계인의 감성과 일상이 교차하는 유럽 최대인 런던 히스로공항이 지난 21일 화재에 따른 정전으로 하루 동안 전면 폐쇄됐다. 그제 저녁부터 운항이 부분적으로 재개됐다지만 항공편 1300여 건이 취소·변경된 후폭풍이 상당하다. 29만 명 이상의 발이 묶였다. 전 세계로 흩어진 승무원과 고객·물류

    2025.03.23 17:29
  • [천자칼럼] 자유의 여신상 '가정법'

    “이건 단순한 장사 이상이었다. 젊은 일본인 부부와 사교를 맺을 기회였다.” 1962년 출간된 필립 K 딕의 소설 <높은 성의 사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이 승리해 미국을 분할 점령한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소설 속 일본 점령하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골동품상 칠던은 ‘눈이 유난히 까만’ 일본인 부부가 매장을 찾자 ‘지배 민족’에게 잘 보일 기회로 여겨 한껏 들뜬다.‘완료된’ 역사에 ‘만약에’라는 가정을 붙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아쉬운 과거를 바꾸면 초라한 현재의 모습도 단박에 빛이 날 것만 같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으면 세계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란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의 표현이 공감을 얻는 이유다. 전제를 바꾸면 세상에서 ‘당연한’ 일도 찾아볼 수 없다. 소설가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에 붙은 ‘경성(京城), 쇼우와 62년’이라는 부제는 일제로부터의 독립이 얼마나 어렵게 얻은 결과물인지를 서늘하게 전한다.프랑스가 187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맞아 미국에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을 소재 삼아 때아닌 ‘역사 가정법’ 논쟁이 벌어졌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그제 ‘자유의 여신상’을 돌려달라는 프랑스 정치인의 주장에 대해 “절대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며 “지금 프랑스 사람들이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오직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덕분”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휴전 협상에서 배제한 미국을 향해 ‘자유의 여신상이 담고 있는 자유의 가치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공격적으로 답한 것이다. 그

    2025.03.19 17:33
  • [천자칼럼] '사즉생'에 담긴 진짜 주문

    고대 중국의 군대는 중앙, 좌익, 우익의 삼군(三軍)으로 구성됐다. 통상 우익에 주력부대를 배치하고 좌익에 약한 동맹국의 원군을 둬, 어느 쪽이 상대방의 좌익을 먼저 깨느냐에 전투의 승패가 갈리곤 했다. 강점과 약점을 서로 잘 아는 군대끼리의 충돌에선 ‘전열’을 얼마나 잘 유지하는지가 중요했다. ‘열심히 싸우자’는 개인적 각오가 아니라 조직적인 전열 정비가 강조됐다. 춘추전국시대 <오자병법>도 ‘죽기를 무릅쓰면 산다(必死則生)’는 비장한 지침으로 장병들에게 끝까지 전열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모든 분야에서 (삼성의)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며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임직원에게 주문했다. 현재 삼성의 처지를 두고는 “죽느냐, 사느냐는 생존 문제에 직면했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썼다. 이 회장이 ‘위기’를 직접 거론하며 대대적인 쇄신 의지를 밝히자 ‘제2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란 반응까지 나온다.과거 삼성전자는 반도체, 휴대폰, 가전이 ‘삼군’을 이뤄 서로 돕는 이상적인 체제를 구축했다는 평을 들었다. 지금은 전 사업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늘 선두에 섰던 ‘주력’ 반도체 사업은 예봉이 꺾였다.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선 ‘복병’ SK하이닉스의 기습에 휘청이고 있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선 대만 TSMC의 ‘아성’을 좀처럼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 범용 D램에서는 YMTC 등 중국 업체의 추격이 거세다.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온 휴대폰 사업도 애플과 샤오미, 오포 등의 협공에 시달리고 있다. 가전은 ‘약

    2025.03.18 17:35
  • [김동욱 칼럼] 정주영을 정몽주로 기억하는 사회

    정몽주. 필기시험 답안지 채점을 시작하자마자 엉뚱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굳어졌다. ‘주요 5개 그룹 창업자 이름을 쓰라’는 올해 한국경제신문 입사 시험 문제에서 현대그룹을 일군 기업가(정주영)로 고려말 충신을 답안으로 적은 지원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SK그룹(최종건), LG그룹(구인회)은 정답률이 다소 낮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병철(삼성그룹), 정주영이란 이름 석 자를 젊은이들이 모를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영화 ‘타짜’ 속 평경장이 내뱉는 “고니야 부자가 되고 싶니? 이거이 이병철이고, 이거이 정주영이야”라는 대사도 요즘 세대에겐 ‘암호문’이지 싶었다. 창업주 5인을 정확하게 쓴 수험생은 단 두 명이었다.황당한 오답의 부끄러움이 젊은 지원자만의 몫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에 무심한 것이 어디 청년만이겠나. 한국 사회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6624달러(2024년)의 풍요 속에 살지만 이런 번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부가 어디서 나왔고, 성공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관심 밖이다.학교 교육부터 그렇다. 10년 전 국정교과서 파동 당시 8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이병철·구인회 회장이 전혀 등장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정주영 회장도 일부 교과서에서 ‘소 떼를 북한에 보낸 사람’으로 지나가듯 언급됐을 뿐이었다.지금이라고 다를까. 현행 한국사 교과서들은 여전히 경제성장은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고 기술한다. 경제 관련 챕터가 아예 없는 경우(해냄출판사)도 있다. 전태일은 빠짐없이 다뤄지고 ‘동일방적사건’(동아출판사 271쪽), ‘광주대단지

    2025.03.17 17:40
  • 서구 문학의 첫 장을 연 작품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영웅 아킬레스의 분노를 다룬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의 10년 모험담을 다룬 <오디세이아>는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각종 콘텐츠로 재생산되면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이 두 작품의 저자는 일반적으로 ‘호메로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인으로 전해진다. 전설 속에서 키오스섬 출신이라고도 하고, 스미르나·콜로폰·살라미스·로도스·아르고스·아테네 같은 도시도 연고권을 주장하는 이 시인의 정체는 불분명하다. 이름부터 ‘보다’라는 뜻을 지닌 고대 그리스어 ‘호로스’와 부정을 뜻하는 ‘메’가 합쳐져 ‘눈먼 사람’을 뜻하는 호메로스로 불리는 게 심상치 않아 보인다.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다. 호메로스라는 시인은 과연 실존 인물이었을까. 정말로 존재한 사람이라면 단 한 명일까, 아니면 여러 시인의 개별 작품을 호메로스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모은 것일까.이런 궁금증은 오래전부터 학문적 논란으로 이어졌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어디까지가 예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전통의 산물인지, 어디부터 개인의 창작물인지에 대해서도 학자마다 의견이 갈렸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창작자가 같은 사람인지를 두고서도 서로 다른 견해가 쏟아졌다.19세기 이래 고전학자들은 이런 논쟁점들을 두고 ‘호메로스 문제(Homerische Frage)’라고 불렀다. 학자들은 크게 ‘분석론자(analysts)’와 ‘단일론자(unitarians)’라는 2개 진영으로 나뉘었다.분석론은 호

    2025.03.17 10:01
  • [천자칼럼] '최후의 길드' 의사 집단

    “길드의 장인들은 시장에서 그들의 경쟁자를 늘릴 것 같은 모든 법률에 반대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중세의 장인·상인 동업조합인 길드에 날카로운 비판의 메스를 들이댔다. 사회의 후생 증대를 위해선 폐쇄적 자격증에 편승해 시장을 왜곡하고 과도한 이익을 얻는 행태를 꼭 시정해야 한다고 ‘경제학의 아버지’는 강조했다. 동시에 “길드는 과도하게 커진 군대처럼 정부에 위협적인 존재”라며 개혁에 저항하는 동업조합의 위험성도 경고했다.무기를 만드는 일처럼 특수한 기예를 갈고닦을 필요가 있는 수공업 종사자를 중심으로 출발한 길드는 13세기 들어 유럽 각지로 퍼졌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선 한때 금세공업자, 선원, 제빵사 등 142개 업종별 길드가 활동했고, 1380년대 볼로냐에선 길드 조합원만 9000명에 달했다. 길드는 내부로는 ‘근로 방식’을 규제하고, 외부로는 ‘독점화’를 요구했다. 이를 강제하는 길드의 힘은 회원의 자격 획득 과정을 통제하고, 회원 수를 엄격히 제한하는 데서 나왔다.도제식 인력 양성과 폐쇄적 인원 관리로 ‘최후의 길드’라고 불리는 의사 집단의 납득하기 힘든 행보가 잇따르고 있다.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두고 전공의들이 대한의사협회 지도부에 의대 증원 이전 정원(3058명)에서 올해 증원 인원(1509명) 이상을 빼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정부가 휴학 의대생의 3월 내 복귀를 전제로 의대 모집인원을 올해 증원 전으로 되돌리기로 했지만, 조금도 만족을 모르는 모습이다. 의협 지도부도 “내년도에 의대 신입생을 한 명도 뽑지 말라”는 상식 밖의 주문을 반복하고 있다. 의대생들은 ‘학

    2025.03.12 17:28
  • [천자칼럼] 유럽의 '강제 재무장'

    독일 사람을 두고 ‘혼자 있을 때는 천재지만 둘이 모이면 조직을 만들고, 세 명 이상이 되면 전쟁을 일으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죄로 독일에는 ‘전쟁 기계’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2차 대전 말기 헨리 모겐소 미국 재무장관은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을 없애고자 독일 내 모든 공업시설을 파괴해 16세기식 농업국가로 되돌리자는 ‘모겐소 플랜’을 내놓기까지 했다. ‘군사력 강화’라는 단어가 현대 독일에서 ‘금기어 목록’ 1순위에 오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그런 독일이 다시 총을 들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차기 총리인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 대표는 최근 군비 확대 등을 위해 10년간 총 5000억유로 규모의 특별기금을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의 부채 한도 규정에서 국방비는 예외를 인정하도록 헌법도 바꾸겠다고 했다. 독일 재무장을 막던 걸림돌이 제거되는 셈이다.독일만 부산한 것이 아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병력 규모를 현재 15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증강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핀란드는 대인지뢰 금지협약 탈퇴를 검토하고 나섰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 재무장’을 위해 총 8000억유로 규모 군비 증강을 공언했다. 프랑스는 서랍 속에서 잠자던 ‘프랑스 핵우산’을 유럽 동맹으로 확대하겠다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이 연상되는 긴박한 양상을 미국과 러시아가 앞장서 조성하는 모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노골적으로 러시아 편을 들어 유럽의 오랜 ‘러시아 공포&rsq

    2025.03.09 17:24
  • [천자칼럼] 독일서도 갈라진 MZ 남녀

    남자와 여자는 별개의 생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점에서 다르다. 언어와 사고방식, 기호 등 엇갈리는 지점은 한두 곳이 아니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갈라선 원인과 관련해 생물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생물학적 본성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문화적 양육 환경 탓에 가는 길이 달라졌는지를 두고 끝없는 논쟁을 벌였다.요즘 들어 남자와 여자 간 ‘편 가르기’는 정치적 선택 영역으로 주전장을 옮겼다. 한창 친할 나이에 이대남·이대녀의 선택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이는 한국 사회의 문제만은 아닌 모양이다. 독일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최근 ‘젊은 여성은 왼쪽으로, 젊은 남성은 오른쪽으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독일 사회에 거대한 ‘장벽’이 생겼다고 지적했다.FAZ에 따르면 최근 독일 총선에서 35세 미만 여성의 35%가 좌파당에 투표했다. 좌파 성향 녹색당(20%)에 던진 표까지 감안하면 젊은 여성 과반수가 진보정당으로 쏠렸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 성향 두 정당이 얻은 전체 득표율이 20%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젊은 여심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만약 독일 연방 선거 투표권이 도시에 사는 젊은 여성에게만 주어졌다면 지금 독일 총리 당선인은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아니라 좌파당의 얀 반 아켄이 됐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반면 젊은 남성들은 25세 미만의 20%, 25~35세 사이의 25%가 강경 우파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표를 몰아줬다.고학력 젊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지원하는 좌파당의 선거전략이 먹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과거에 여성을 묶어 두던 아이(Kinder

    2025.03.06 17:57
  • [천자칼럼] "법률가는 모두 죽여라"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극 작품에는 날카로운 통찰이 가득하다. 그가 남긴 표현 중 널리 언급되는 것으로 <헨리 6세>에 등장하는 “법률가는 모두 죽여라(Let’s kill all the lawyers)”는 문구가 있다. 법률가들이 부와 특권을 독점하면서 관료주의를 심화하고 법치주의를 왜곡하는 데 앞장서는 행태를 극 중 무뢰한의 극단적 발언을 빌려 직격했다.법률가를 향한 고까운 시선은 그 뿌리가 깊다. <성서>에서도 “화가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누가복음 11장 52절)라며 법조인을 향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 배경에는 “돈 때문에 하얀 것을 검다고 증명하는 기술자”(조너선 스위프트)라는 오랜 인식이 깔려 있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는 “모든 혁명기에 법률가는 잽싸게 반대파를 사형대로 길 안내를 했다”(영국 정치학자 해럴드 래스키)는 진단처럼 정치권력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던 법기술자들의 비굴함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했다.납득이 쉽지 않은 판결이 잇따르면서 사법부 신뢰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그제 헌법재판소는 직원 가족을 채용하기 위해 위법·편법을 자행한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감사원 직무감찰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친인척을 채용하는 전통이 있다”는 선관위의 뻔뻔한 변명에 최고법원이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보류한 것을 두곤 “국회 권한을 침해했다”고 결정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의결 없이 권한쟁의를 청구한 것을 헌재가 법리대로 ‘각하’하지 않고, 국회에 ‘절차적 흠결’ 보완을 주문한 모습에서 ‘채점자가

    2025.02.28 17:37
  • [천자칼럼] 러시아의 북한군과 '빙장(氷葬)'

    전사자 시신 처리는 예부터 전장의 사기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631년 당 태종은 고구려가 요서 지역에 수나라 군사의 유골로 쌓은 ‘전승탑’인 경관(京觀)부터 파괴하며 고구려 침공의 전의를 불태웠다. 스파르타의 ‘300 결사대’에 막혔던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스파르타군을 이끈 레오니다스의 사체를 훼손하는 것으로 졸전의 분풀이를 했다. <일리아스>에선 트로이의 국왕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유체를 찾고자 홀로 적진으로 향하는 것으로 그려진다.통상 시체는 사망 3~4시간 뒤부터 부패가 시작돼 6시간 뒤엔 피부가 청록색으로 변하고, 몸이 부풀면서 악취를 풍긴다. 하지만 부패 속도와 양태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총포탄에 훼손된 사체가 혹한과 혹서, 습도 등으로 한 번 더 기괴하게 변형된 모습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된다. “러시아에서의 죽음은 아프리카의 죽음과는 다른 냄새를 풍겼다”는 소설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건조한 문장에는 참전 병사들의 처절한 경험이 진득하게 녹아 있다.북한이 내부 민심 동요를 우려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사망한 자국 군인의 시신 인계를 거부하고 ‘빙장(氷葬·promession)’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북한의 해외 주재원들이 시신을 급속 냉동해 분쇄하는 빙장 설비를 알아보는 동향도 감지됐다고 한다. 전사자 부모에게 끔찍한 상태의 시신을 인도하면 민심 이반이 클 수밖에 없어 낯선 장례 수단까지 알아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스웨덴 생물학자 수잔 비예메사크가 1997년 제시한 빙장은 영하 196도 액체 질소에 인체를 급속 냉각해 분말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실용

    2025.02.27 17:49
  • [천자칼럼] 프랑스식 자존심

    프랑스 하면 콧대 높은 자존심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다. “명료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어가 아니다”라는 18세기 작가 앙투안 드 리바롤의 단언에선 단순한 ‘모국어 사랑’ 이상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치즈 종류가 246가지나 되는 나라’라는 자기 인식에선 자국 식문화에 관한 범접할 수 없는 프라이드가 전해진다. 워털루 전장에서 사지에 몰린 나폴레옹 근위대가 마지막까지 챙긴 것도 “근위대는 죽지만 (영국 놈들에게) 항복은 하지 않는다”는 자존심이었다.현대 프랑스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인물은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점령당해 프랑스는 더는 유럽이라는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을 수 없었다. 하지만 드골은 뒷좌석으로 밀리길 거부했다. “프랑스는 전투에선 패배했지만,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니다”(영국 망명 후 라디오 연설)며 열변을 토한 그의 기개는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 유럽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냉전 주도권 다툼으로 이어졌다.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냐”고 미국에 외치며 독자 핵 개발도 밀어붙였다.드골의 행보를 연상시키는, 프랑스식 자존심을 세우는 꼬장꼬장한 모습이 그제 또다시 연출됐다. 백악관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독불장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면전에서 주저하지 않고 ‘할 말’을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빌려준 돈을 돌려받는다”고 하자, 마크롱 대통령이 즉각 “아니다”고 사실관계를 정정했다. “솔직히 말하면 유럽은 (빌려준 게 아니라) 돈을 냈다. 돈을

    2025.02.25 17:35
  • [천자칼럼] 국민 반대 직면한 '25만원 쿠폰'

    대영제국의 전성기는 1859년 출간된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Self-Help)>이 큰 반향을 얻은 때와 겹친다. 출간 1년 만에 2만 부라는 당시로선 기록적으로 팔린 이 책에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문구로 상징되는 ‘자조(自助)’와 근면, 인내 등 산업혁명 수행에 필요한 가치가 집약돼 있다. 공교롭게도 이후 토머스 칼라일과 찰스 디킨스 등 ‘비판적 지식인’을 통해 반(反)기업 정서가 힘을 얻고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향한 동경이 퍼지며 영국의 ‘좋은 날’도 저물었다.국가와 사회의 전성기는 그 구성원이 ‘근면’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쳐주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년 365일을 밤낮으로 일했기에 가능했던 ‘한강의 기적’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역사학자들이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의 성공 요인으로 그에 선행한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에 주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반대로 쇠퇴기를 가늠하는 기준은 ‘근면’의 반대말 격인 ‘공짜’로 삼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오늘날 한국 사회는 성공과 실패 중 어느 길을 가고 있을까. 이를 가늠할 지표로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이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국민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55%)이 찬성하는 답변(34%)을 압도했다. ‘국가가 공짜로 돈을 주겠다’는데 국민 대다수가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어서 함의가 작지 않아 보인다.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간 이를 노린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복지’와 ‘분배’의

    2025.02.21 17:38
  • [천자칼럼] 韓 법원 향한 로마법의 '경고'

    1000년 넘게 존속한 로마는 수시로 법을 만든 탓에 법 간에 충돌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동로마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제각각인 법률을 네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법적 논쟁점을 정리한 <학설휘찬>과 요약판 법전인 <법학제요>, 옛 황제의 칙령을 모은 <칙법휘찬>, 당대에 반포한 법을 다룬 <신칙법>에는 수많은 분쟁을 거치면서 축적된 로마인의 지혜가 경구 형태의 법언(法諺)으로 빼곡하게 담겼다.이 중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는 표현으론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는 문장이 첫손에 꼽힌다. 이해 당사자가 아니라, 공정한 제삼자에게 심판받아야 한다는 뜻의 이 문구는 마르틴 루터와 장 보댕, 토머스 홉스의 저술에 인용됐고 미국 대법원의 판결문에도 단골로 등장한다.그제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에서 재판관의 이해충돌 가능성을 경고한 라틴어 문구가 떠오르는 장면이 반복됐다. 조한창·정계선 등 3명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이유로 대통령직 권한대행에서 탄핵당한 한 총리의 탄핵·권한쟁의 심판에 당사자인 헌법재판관들이 ‘심판’으로 참석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은원(恩怨)뿐 아니라 판결 결과에 따라선 헌법재판관 자리까지 위협받을 이들이 ‘최종 결정자’가 되면서 이런저런 ‘뒷말’을 피할 수 없게 됐다.로마법전을 넘기다 보면 오늘날 한국 사법부가 뜨끔할 구절이 적지 않다. ‘판결을 끌지 않는 것은 좋은 판사의 의무’(Boni judicis est judicium sine dilatione mandare executioni)라는 법언은 일부러 재판을 지연하는 판사에겐 준엄한 ‘경고장’에 다름없다. ‘서두르는 정

    2025.02.20 17:24
  • [천자칼럼] '베르사유 조약'의 재등장?

    1919년 6월 28일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베르사유궁전 거울의 방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매듭짓는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으로 패전국 독일은 알자스·로렌을 프랑스에 돌려주고 단치히(폴란드명 그단스크)를 폴란드에 넘기는 등 영토의 15%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700만 명의 국민을 잃었다. 추가 협상 끝에 확정된 1320억골드마르크(2025년 기준 환산액 6050억달러)에 달하는 전쟁배상금은 독일에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경제학자 존 케인스가 ‘카르타고 방식 평화’(적국의 완전한 굴복)를 구현한 수단이라고 비꼰 막대한 규모의 배상금은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됐다. 배상금 지급 부담 때문에 경제가 파탄을 맞는 모습을 보면서 생긴 ‘국민적 굴욕감’을 발판 삼아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이 부상했다. 베르사유 조약은 갚는 것이 불가능한 채무를 매몰차게 강요한 연합국의 승자독식과 독일이 느낀 패배감과 절망, 복수심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낡은 역사책의 한구석에 숨어 있던 ‘베르사유 조약’이라는 용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가시화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제시한 ‘재건투자기금 협정’ 초안에서 “지금까지 미국으로부터 받은 군사 지원 등의 대가로 5000억달러(약 722조원)를 갚으라”고 요구했다. 구체적인 수단으로 우크라이나가 자원 채굴로 얻는 수입의 50%를 미국이 챙기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미국이 적대국도 아닌 우크라이나에 요구한 액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살펴볼 때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이 졌던 것보다 부담

    2025.02.18 17:44
  • 보건복지부가 올해 업무계획에서 현재 65세인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는 논의를 본격 착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과거와 달리 신체가 건강하고 경제력을 갖춘 노인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노인 연령은 1981년에 제정된 노인복지법을 기준으로 할 때 40년 넘게 만 65세 그대로 유지돼왔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이 촉발한 노인 연령 기준과 관련해 대한노인회는 지난해 노인 연령 기준을 75세로 단계적으로 조정하자고 제안했다. 인구 중 65세 이상이 전체의 20%에 육박한다. 늘 제자리를 맴돈 노인 연령 기준 상향 논란이 이번에는 매듭지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찬성] 이대로면 50년 뒤 1명이 1명 부양…기준 개선해 후세대 부담 줄여야사회적으로 ‘노인’이라고 인식하는 연령이 크게 높아졌다. 현행 기준은 평균수명이 60대에 머물던 시대에 만들어졌다.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 66.1세이던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3.6세로 늘었다(2023년 기준). 한국 사회는 2017년 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에 접어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93만8000명으로 전체의 19.2%를 차지했다. 올해 초고령사회(20% 이상) 진입이 확실시된다.수명뿐 아니라 건강도 좋아졌다. 요즘 60대는 자신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늙었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경제력도 과거 노인과 다르다. 복지부가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새로 노인 연령에 진입한 65~69세 가구의 연간 총소득은 4787만원으로 전체 65세 이상 평균 3469만원보다 38%이나 높았다. 부동산(3억3600만원)과 금융 자산(5500만원) 등 보유 자산도 4억원이 넘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당히 많았다. 요즘 60대는 대

    2025.02.17 10:00
  • [천자칼럼] 흔들리는 이름의 법칙

    문화 풍속 중 가장 보수적인 게 이름이다. 성명에 관한 관습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고대 중국에선 항우, 조조, 유비처럼 성 한 글자에 이름 한 글자로 성명이 구성됐다. 전한을 멸망시킨 왕망은 이를 금지(二名之禁)하고 이름을 두 글자로 쓰도록 강제했다. 우리 민족도 중국 문화의 영향으로 ‘홍길동’처럼 성 한 글자·이름 두 글자 체제를 2000년가량 유지하고 있다.성명 체계가 경직된 것은 이름을 둘러싼 정치권력과 사회의 압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원래 유럽에서 성명은 누구누구의 아들이란 뜻의 ‘son’을 붙여 윌리엄 로버트슨의 아들은 토머스 윌리엄슨(윌리엄의 아들)으로 불렸고, 다시 토머스의 아들은 헨리 톰슨(토머스의 아들)으로 칭하는 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 세금 징수와 징병의 필요에 따라 부계의 성(姓)이 이어지도록 바뀌었다.한번 못 박힌 성명 체계는 개인과 민족 정체성의 근간이 됐다. 마크 저커버그(독일어로 설탕산) 메타 최고경영자(CEO)나 마이클 블룸버그(꽃동산) 블룸버그 창업자, 마커스 골드만(황금을 다루는 사람) 골드만삭스 창업자의 성씨에선 재물과 지명을 섞어 성을 만들던 중·동유럽계 유대인(아슈케나짐)의 자취가 묻어 있다.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목말 태우고 등장한 그의 다섯 살 난 아들이 독특한 이름으로 주목받았다. 애칭이 엑스(X)인 소년의 정식 이름은 ‘엑스 애시 에이 트웰브(X Æ A-Xii)’. 머스크가 좋아하는 것들의 총집합체다. 엑스는 변수, A와 E를 합쳐 놓은 애시(Æ)는 인공지능(AI)을 뜻한다고 한다. 에이 트웰브는 머스크가 좋아하는 정찰기 ‘A-12’에서 따왔다. 머

    2025.02.13 17:39
  • [김동욱 칼럼] '한국은 중국 땅'이라는 중국夢

    6·25전쟁 기간 국군 사망자는 13만7899명, 부상자는 45만742명에 이른다. 민간인 사상자와 실종자는 공식통계만 99만968명에 달한다. 이런 대규모 한국인 인명피해는 누구에 의해 발생했을까.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이 지리멸렬했던 만큼 3년간 이어진 전쟁의 사상자 대부분은 중공군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중공군은 온정리전투와 현리전투 등 대규모 공세를 펼 때 미군보다 훈련이 부족하고 장비도 빈약한 국군만 집요하게 노렸다. 그런 중공군을 이끈 사령관이 펑더화이였다.펑더화이는 국공내전 당시 서북인민해방군을 이끌며 같은 부대에서 정치장교로 활동하던 시중쉰(시진핑 현 국가주석의 아버지)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펑더화이와 시중쉰은 문화대혁명 때 함께 숙청돼 고초를 겪는 ‘운명 공동체’로 관계가 깊어졌다. 2011년 펑더화이의 고향 집을 찾아가 “대단히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평했던 시진핑 주석이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선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시 주석 발언에서 한국을 얕잡아 본 펑더화이의 그림자가 느껴진다.한국을 낮춰보는 중국인의 시선은 비단 시 주석이나 펑더화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대다수 중국인은 한국을 자신의 영역으로 여겼다. 1944년 카이로 회담 직후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가 마련한 ‘조선 문제 연구 요강 초안’에도 중국군의 한반도 파견과 한강 이북 지역을 중국군이 관리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도 적지 않은 중국인이 한반도를 ‘중국 땅’이라고 생각한다. 바이두 같은 중국 인터넷 포털에선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

    2025.02.10 17:53
  • [천자칼럼]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

    고대 중국에선 다양한 종류의 달력이 사용됐다. 하력(夏歷), 은력(殷歷), 주력(周歷) 등은 한 해의 시작을 잡는 기점도 모두 달랐다. 하력은 정월을 세수(歲首·설)로 삼았고 은력은 12월, 주력은 11월이 한 해의 출발점이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하력 10월 초하루를 세수로 삼는 ‘표준’을 정했고, 한 무제 때(기원전 102년) 설날이 하력 정월 초하루로 고쳐진 뒤 2000년 넘게 쓰였다. 동양사회의 역법은 한나라 때 큰 틀이 확립됐다.달의 움직임에 기반한 중국 역법은 태양의 위치 변화에 따른 계절의 바뀜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 태양의 움직임을 가미해 입춘(立春), 하지(夏至), 처서(處暑), 백로(白露) 등 24절기를 만들어 보완했다. 이들 각 절기 명칭도 전한시대에 편찬된 <회남자(淮南子)>에서 최종적으로 정착됐다. 자연스럽게 24절기는 한나라 도읍인 낙양을 ‘기준’ 삼아 정해졌다.고대 낙양 스탠더드에 맞춰진 절기는 ‘보편성’을 띠기 어려웠다. 지난 2000년간 지구 전체 기후가 크게 변했고, 세차 운동의 영향으로 태양의 위치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위 34도 40분, 대륙 내륙에 자리한 낙양(연평균 기온 14.9도·강수량 731㎜)과 아시아 각 지역의 기후 환경은 크게 달랐다. 자연스럽게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는 옛말처럼 절기와 날씨가 맞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따뜻한 봄이 떠오르는 입춘에 관한 고정관념과 달리, 이 무렵 한반도에선 매서운 추위가 닥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며 늦추위의 매서움을 지적하거나, ‘입춘 추위

    2025.02.06 17:42
  • [천자칼럼] '호수 위의 달'

    1934년 1월 17일자 일본 일간 시사신보에 ‘반초카이(番町會)를 폭로한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도쿄주식거래소 이사장과 일본상공회의소 소장을 지낸 고세이 노스케를 중심으로 한 기업인 모임인 반초카이가 당시 일본 상공대신, 철도대신과 결탁해 섬유회사 제국인견의 주가를 조작해 큰 이익을 봤다는 내용이었다. 사이토 마코토 내각이 총사퇴하는 등 정경유착 스캔들이 미친 후폭풍은 거셌다.265회의 공판 끝에 1937년 10월 반전이 일어났다. 후일 일본최고재판소장이 되는 이시다 가즈토 판사가 사건 관계자 16명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것. 정상적인 주식 거래가 있었을 뿐 범죄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썩어빠진 정·재계를 바로잡고 국가를 혁신하겠다’던 검찰은 고문도 마다하지 않고 ‘허위 자백’을 받았다. 이런 문제점을 간파한 이시다 판사는 “물속의 달그림자를 잡으려 하는 것과 같다”는 판결문을 남겼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범죄 혐의는 ‘공중누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 이 문구는 요즘도 일본 드라마 대사에 나올 정도로 일본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무엇보다 이 판결은 “법 해석이 세론에 휩쓸리면 위험하다”(미야케 마사타로 전 일본 사법차관)는 말로 대변되는 ‘진중한’ 일본 사법 문화를 이끈 계기로 평가된다.그제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기일에 출석해 계엄 선포 당일 정치인 체포 의혹을 두고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를 쫓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평소 투박하고 직설적인 화법을 애용하는 윤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시적인 비유를 들었기에 주목받았다.

    2025.02.0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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