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와 달리 기괴한 울음소리를 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백조는 숨을 거두기 직전, 단 한 번의 순간에 세상 누구든 홀릴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음색의 노래를 부른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데요. 그러한 이유로 예술가들의 최후 작품을 '백조의 노래'라고 칭하곤 합니다. <박소현의 백조의 노래>에서는 "한 시대를 빛냈던 작곡가들의 마지막 결실을 만나다"란 주제로 작곡가들의 마지막 작품을 하나씩 만나보며, 그들의 음악과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볼 것입니다.
'백조의 노래'라는 이름이 붙여진 작곡가들의 유작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바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의 가곡집 《백조의 노래 (Schwanengesang)》입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는 보리수, 송어, 마왕 등 600여편의 독일 가곡을 작곡해 '가곡의 왕 (König der Lieder)'이란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독일 가곡인 리트 (Lied)를 완성시킨 음악가라고 칭송받는 슈베르트의 3대 가곡집이 바로 1823년에 완성한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Schön Müllerin, D.795)》, 1827년작 《겨울 나그네 (Winterreise, D.911)》, 그리고 《백조의 노래》입니다.
슈베르트의 1829년 가곡집 《백조의 노래》 초판 1권 표지 / 출처. Wikipedia
앞선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와 달리 가곡집 《백조의 노래》는 유일하게 슈베르트가 사망한 후 출판된 가곡집입니다. 슈베르트가 31세란 너무나 이른 나이에 안타깝게 병사하고 다음 해인 1829년, 오스트리아의 출판업자 하스링거(Tobias Haslinger, 1787~1842)는 슈베르트의 14개 미발표 가곡들을 모아 '백조의 노래'란 제목을 붙여 출판했습니다.
슈베르트가 사망하던 해에 작곡한 《백조의 노래》 속 14개 가곡 중 제1곡 <사랑의 사자 (Liebesbotschaft)>, 제2곡 <병사의 예감 (Kriegers Ahnung)>, 제3곡 <봄의 동경 (Frühlingssehnsucht)>, 제4곡 <세레나데 (Ständchen)>, 제5곡 <보금자리 (Aufenthalt)>, 제6곡 <먼 나라에서 (In der Ferne)>, 제7곡 <이별 (Abschied)> 등 첫 일곱 곡은 독일의 시인이자 평론가 렐슈타프(Heinrich Friedrich Ludwig Rellstab, 1799~1860)가 베토벤에게 바친 시를 가사로 붙였습니다.
1875년에 빌헬름 리더 (Wilhelm August Rieder)가 그린 슈베르트의 초상 / 출처. Wikipedia
이 시는 베토벤의 비서로 알려진 안톤 쉰들러(Anton Felix Schindler, 1795~1864)가 베토벤이 사망한 후에 슈베르트에게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렐슈타프의 시를 가사로 한 제4곡 <세레나데>는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속 14개의 곡 중 가장 유명한 곡입니다.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첼로와 같은 악기들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독주하는 편곡으로도 흔하게 연주됩니다.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중 제4곡 <세레나데 (Ständchen)> 가사]
《백조의 노래》중 제8곡 <아틀라스 (Der Atlas)>, 제9곡 <그녀의 초상 (Ihr Bild)>, 제10곡 <어부의 딸 (Das Fischermädchen)>, 제11곡 <도시 (Die Stadt)>, 제12곡 <해변에서 (Am Meer)>, 제13곡 <도플갱어 (Der Doppelgänger)> 등 마지막 곡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곡은 독일 시인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의 대표 시집 『노래의 책 (Buch der Lieder)』에 수록된 시들을 가사로 하고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하이네의 『노래의 책』 속 다섯 개의 연작시 중 세 번째 연작시인 「귀향 (Die Heimkehr)」에 수록된 시 여섯 편을 엄선해 작곡했습니다. 끝으로 《백조의 노래》의 마지막 곡인 <비둘기 전령 (Die Taubenpost)>은 오스트리아 시인 자이들(Johann Gabriel Seidl, 1804~1875)의 시를 가사로 하고 있습니다.
[좌] 렐슈타프의 초상 [우] 1854년에 독일의 석판화가 아돌프 다우타게 (Adolf Dauthage)가 작업한 자이들의 초상 / 출처. Wikipedia
슈베르트의 3대 가곡집 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겨울 나그네》는 그가 연가곡집으로 작곡했습니다. 이 두 가곡집과 달리 《백조의 노래》는 슈베르트가 연가곡집으로 의도해 작곡했는지, 아니면 14개의 가곡을 그저 하나의 모음집으로 발표하려고 했는지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연가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슈베르트가 제14곡 <비둘기 전령>을 제외한 13개의 곡들을 자신의 친필 사인을 한 악보에 차례로 작곡했기에 그가 연속적인 곡들로 생각하며 작곡했다고 설명합니다.
렐슈타프와 자이들의 시를 가사로 한 곡들을 따로 묶고, 하이네의 시를 가사로 한 여섯 개의 곡만을 따로 모아 각각 다른 출판사에 출판 제안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원래 이 곡들은 두 개의 독립적인 가곡집으로 출판될 예정이었고, 연가곡이 아니라는 주장 역시 큰 신빙성을 얻었습니다.
1831년에 모리츠 오펜하임 (Moritz Daniel Oppenheim)이 그린 하이네의 초상 / 출처. 한경DB
"죽은 자는 말이 없다"란 말처럼 슈베르트가 어떤 식으로 이 가곡들을 내려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백조의 노래》에 수록된 14개의 가곡은 슈베르트 특유의 치밀한 구성 속에 가사 내용에 충실한 멜로디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에 어울리는 피아노 반주로 화자의 두근거림, 고통, 그리움, 외로움과 같은 감정을 짙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우린 슈베르트의 유작 《백조의 노래》를 통해 그의 음악을 더욱 깊게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소현 작가•바이올린/비올라 연주자
[♪ 카운터테너 필립 자루스키 (Philippe Jaroussky) -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중 제4곡 <세레나데 (Ständ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