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재즈 싱어>로 유성영화 시대 열어
진 켈리, 주디 갈란드 등 스타와 함께
195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 장식
1960년대 들어서며 주류에서 밀려나지만
1990년대 '디즈니 르네상스'와 함께 다시 인기
봉준호조차도 보기 힘들다고 혀를 내두르는 뮤지컬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다가가기 어려워 하는 장르다. 하지만 영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화의 역사는 뮤지컬에서 시작했다.
by_구교범 기자
<미키 17>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의 최근 인터뷰가 화제다. 미국의 인기 심야 토크쇼 <레이트 쇼>의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가 봉준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많은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뮤지컬 영화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는가?" 이에 봉준호 감독은 만들 생각이 없다며 이렇게 대답다.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을 못 참겠어요".
유성영화 시대 연 뮤지컬 영화 <재즈 싱어>
봉준호 같은 영화 거장조차 보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뮤지컬 영화는 애호가들만 좋아하는 '매니악'한 장르로 여겨진다. 하지만 영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성 영화는 뮤지컬 영화로 시작했다. 1800년대 녹음 기술이 등장했고,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유성 단편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소리와 영상을 동기화 시키는 기술이 부족했다. 극장을 채울 만큼 소리를 증폭하는 음향 기술도 없었다. 이 때문에 초창기 유성영화에서는 대사가 없었다. 배우들은 무성영화와 똑같이 대사 없이 연기를 했고, 악기로 연주한 음악과 효과음만 추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1927년 개봉작 <재즈 싱어 (The Jazz Singer)>는 본격적인 유성영화 시대를 연 작품으로 꼽힌다. 당시 영세한 영화 제작자였던 워너브라더스의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최초의 유성영화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전에도 소리가 담긴 영화는 많았다. <재즈 연주자>는 최초로 '대사를 담은' 장편 유성 영화다. 비록 영화 러닝타임 전체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배우들이 뮤지컬처럼 부른 대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자 워너브라더스는 이듬해 1928년 후속작 <노래하는 바보 (The Singing Fool)>를 발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28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상승세를 탄 워너브라더스의 1929년 개봉작 <브로드웨이 멜로디 (Lights of New York)>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작품상까지 받았다.
뮤지컬 영화들이 잇따라 성공을 거두면서 처음에 유성영화에 시큰둥했던 영화계의 판도가 뒤집혔다. 극장들은 앞다퉈 음향시설을 구비하기 시작했고, 영화 제작자들도 유명한 작곡가들을 섭외하고 나섰다. 이때부터 수많은 뮤지컬 작품이 쏟아져 나와 1930년 한 해에만 할리우드에서 100편이 넘는 뮤지컬 영화가 발표됐다.
갑작스러운 열풍은 되레 독이 됐다.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작품에 관객들의 흥미가 떨어지며 인기가 빠르게 식었다. 1931년에는 고작 14편 밖에 나오지 않았을 정도였다.
195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와 함께 뮤지컬 영화 스타들이 등장했다. 1939년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를 연기한 주디 갈란드, 1952년 개봉작 <사랑은 비를 타고>의 진 켈리,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구멍을 가리는 데 사용한 포스터의 주인공 리타 헤이워스 등 숱한 고전 명작들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배우들이 뮤지컬 영화로 탄생했다.
1960년대 최고 뮤지컬 스타 줄리 앤드루스
뮤지컬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하나를 꼽는다면 많은 사람이 <사운드 오브 뮤직>을 얘기할 것이다. 1965년 개봉해 올해 딱 60주년을 맞은 작품이지만 여전히 뮤지컬 영화의 상징처럼 남아있다. 주인공인 마리아 폰 트라프 역을 맡은 줄리 앤드루스도 뮤지컬 영화사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1935년 영국에서 태어난 줄리 앤드루스는 뮤지컬 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1954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더 보이프렌드>로 데뷔했다. 19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찬사가 이어졌다. 이때 눈에 띈 앤드루스는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연에도 발탁돼 인기를 끌었고, CBS에서 제작한 TV 뮤지컬 <신데렐라>의 주연으로 출연했다.
안타깝게도 <사운드 오브 뮤직> 이후에는 이혼과 슬럼프를 겪고 수술 부작용으로 목소리를 잃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2001년에는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에 출연, <슈렉> 시리즈에서는 피오나 공주의 엄마 릴리언 왕비, 미니언즈 캐릭터로 사랑받는 <슈퍼배드>에서 성우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류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70년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대성공으로 영화 제작자들은 많은 예산을 투입한 뮤지컬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 대작들이 연이어 나왔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며 영화계 시류가 리얼리즘으로 옮겨가면서 뮤지컬 영화의 인기도 사그라들었다. 뮤지컬 영화들의 풍조도 달라졌다. <지붕 위에 바이올린 연주자>, <카바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처럼 사회, 종교, 정치에 대한 목소리를 담은 예술성을 띈 뮤지컬 원작 영화들이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에는 뮤지컬 시장이 호황을 맞아 영화 제작자들도 이에 맞춰 뮤지컬 영화 제작에 나섰지만, 눈에 띄는 흥행작은 없었다.
'디즈니 르네상스'가 점령한 1990년대
실사 뮤지컬 영화가 주춤한 사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디즈니의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제2의 황금기를 맞았다. 디즈니의 첫 번째 황금기는 1937년 최초의 풀컬러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애니메이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시작으로 <피노키오>, <밤비>, <덤보> 등 걸작을 내놓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을 일컫는다.
1966년 월트 디즈니 사망 후 1980년대까지 심각한 침체를 겪었던 디즈니는 1989년 <인어공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후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등 지금까지도 디즈니를 대표하는 명작들을 연달아 발표했다. 전 세계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Under the Sea', 'A Whole New World' 등 수많은 명곡이 탄생했다. 이런 이유에서 1990년대는 디즈니의 두 번째 전성기라는 뜻에서 '디즈니 르네상스'로도 불린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다시 침체기에 들어섰다. 기다렸다는 듯이 실사 뮤지컬 영화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헤드윅>, <시카고>, <물랑루즈> 등 인기 뮤지컬 원작 영화들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흥행했다. 특히 <시카고>는 아카데미 작품상, 여우주연상, 미술상, 의상상, 편집상, 음향효과상까지 6관왕에 오르며 극찬받았다. 비욘세를 앞세운 2006년 개봉작 <드림걸즈> 와 스웨덴의 팝그룹 아바(ABBA)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 독립 영화 <원스>도 인기를 끌었다.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은 2016년 개봉한 <라라랜드>다. 1940~5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 고전 영화들을 오마주하며 향수를 자극하는 연출과 탄탄한 줄거리, 완성도 높은 음악까지 모두 호평받았다. 2017년 골든글로브에서는 7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 모두 휩쓸었고, 아카데미상에서는 역대 최다 부문인 14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타이타닉>과 동률이다. 그중 6개 부문을 휩쓸었다.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사랑받은 작품으로, 역사상 최고의 뮤지컬 영화 중 하나로로 평가된다.
2010년대에는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또 한 번 전성기를 맞았다. 한동안 흥행작을 내지 못했던 디즈니가 2010년 <라푼젤>로 간만에 성공을 거뒀다. 2013년 수록곡 'Let It Go'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겨울왕국>이 초대박을 터트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후에도 <모아나>와 <겨울왕국 2>까지 연이어 큰 성공을 거뒀다.
부활할까 말까…들쑥날쑥 2020년대
2020년대에 들어서는 뮤지컬 영화들이 성적이 들쑥날쑥하다. 고전 뮤지컬 <캣츠>를 원작으로 해 큰 기대를 모았던 영화 <캣츠>가 희대의 괴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박스오피스에서도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누린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조차 영화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평단에서는 좋은 평가가 나왔으나 흥행 성적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높은 완성도와 와킨 피닉스의 열연으로 극찬받은 <조커>의 속편 <조커: 폴리 아 되>는 뮤지컬 영화로 제작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패착이었다. 디즈니 고전 명작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뮤지컬 영화도 <미녀와 야수>와 <알라딘>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피노키오>와 <인어공주>는 혹평받았다.
반면 여전히 부침을 겪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영국의 보이밴드 '테이크 댓' 출신 로비 윌리엄스의 자전영화 <베터맨>은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흥행면에서는 엄청난 손실을 거둘 전망이다. 디즈니의 <백설공주> 실사화 영화는 개봉 전부터 캐스팅 논란이 불거지며 흥행 여부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