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관의 매력이 각양각색의 극장이 가진 고유한 개성과 예술영화관 특유의 고상함이라면 멀티플렉스의 그것은 어느 지점으로 향해도 기대했던 편안함과 안락을 준다는 점 아닐까. 서울 명동에 위치한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역시 그러한 안락함을 보유한 프랜차이즈 지점 중 하나지만, 거기에 또 다른 정체성을 더한다. 바로 (지점의 이름이 명시하듯) 영화 도서관을 갖춘 예술영화관이라는 점이다.

씨네라이브러리는 아마도 내가 가장 많은 예술영화를 본 멀티플렉스 극장일 것이다. 시네필들에게 화제가 됐던 예술영화들, 예를 들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나 김기영 감독의 회고전 같은 특별한 예술영화는 모두 이곳에서 관람했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 사진제공. 김효정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 사진제공. 김효정
일반적으로 예술영화관의 관람은 다소 엄격한 룰, 예컨대 식음료를 반입하지 못한다거나 10분 이상의 지각을 허용하지 않는 등의 정책을 적용한다. 씨네라이브러리는 크레딧 중간에 불을 켜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룰은 적용하되 편안한 의자에서 매점의 음식을 마음껏 이용한다는 프랜차이즈 극장의 편의성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거부하기 힘든 강점이 있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는 팬더믹 기간에 4개월간 휴점했을 정도로 부침을 겪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영화관이 큰 변형과 축소 없이 우리에게 복귀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문턱을 낮춘 라이브러리와 재미난 기획으로 중무장하고 말이다.

이번 인터뷰는 팬더믹 이후 씩씩하게 돌아온 씨네라이브러리의 이야기이다. 인터뷰는 CGV의 전략지원담당 황재현 담당과 진행했다.
CGV 전략지원담당 황재현 / 사진제공. 김효정
CGV 전략지원담당 황재현 / 사진제공. 김효정

▷ CGV의 ‘아트하우스’ 사업은 일반 관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된 사업이 아닌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그 시초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 2004년에 다양성 영화를 지원하고자 하는 취지로 독립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했던 ‘인디영화관’을 개관한 것이 현재 아트하우스의 모체다. 2007년에 ‘무비꼴라쥬’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전문 브랜드를 만들었고, 2014년에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아트하우스로 변경 확장했다. 세 개관으로 시작한 인디영화관이었는데 현재는 18개로 늘어났다.

▷ 당시 한국 관객의 특성을 어떻게 반영했는지.

관객들에게 호평 받지만 대중성이 떨어져서 조기에 종영되는 작품들이 수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매니악하면서도 상업적일 수 있고, 상업적인 듯 하면서도 매니악한 작품들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처음으로 상영한 작품이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었다. 관객들에게 반응이 매우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 현재의 씨네라이브러리 자리가 원래는 씨너스가 있던 곳으로 알고 있다. 굳이 이 극장을 인수해서 같은 지역 명동에 두 개의 상영관을 만들 이유가 있었나.

CGV 명동이 먼저 자리했는데 상영관 수가 5개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당시 CGV 명동의 관객수가 100만명(연간 기준)이 넘을 정도로 많을 때라 독립 예술영화 관객까지 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강남 쪽에는 이러한 컨셉으로 CGV 압구정이 독립예술영화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터라 강북은 명동역 쪽으로 새로 자리를 잡아 씨네라이브러리점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 사진제공. 김효정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 사진제공. 김효정
▷ 씨네라이브러리의 컨셉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현재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컨셉은 어떤 것이었나.

일단 영화관이 위치한 명동/충무로는 한국영화의 메카이자 상징 같은 곳이 아닌가. 그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그리고 영화와 가까운 관객들이 많이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가 컸다. 특히 독립예술영화를 좋아하시는 관객분들 중에서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관련 책을 가까이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나. 그래서 (원래 씨너스에 있었던) 182석의 구조는 그대로 살리되, 거기에 더해 영화 전문 서적을 가득 채운 라이브러리를 만들게 된 것이다.

라이브러리라고는 하나 책을 읽고 조용히 독서만 하는 곳이 아닌 영화와 관련한 전문 토크나 강연, 그 외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친근하고 재미나게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운영되길 바랐다. 현재 씨네라이브러리가 애초에 기획되었던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하나의 작은 자찬을 하자면 (웃음), 현재는 전면 무료로 개방된다. 초기에는 영화 티켓을 소지한 관객에 한해, 1000원의 이용료를 받을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무런 조건 없이 입장할 수 있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 사진제공. 김효정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 사진제공. 김효정
▷ 현재는 GV 문화가 활성화됐지만, 씨네라이브러리가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그런 문화가 만연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로 예를 들면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상영관에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보고 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된 토크를 봤던 기억이 난다. 이 장소가 생기고 기획됐던 초반의 이벤트들을 공유해주신다면. 그리고 당시의 관객들 반응은?

물론 다른 예술영화관도 그렇지만 우리 역시 다양한 토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해 온 것 같다. 특히 라이브러리 관은 그런 토크 행사의 선두에 섰던 공간이다. 시네마 클래스 특강, 라이브러리 토크 정도가 가장 대표적인데, 이곳의 특징이라면 영화가 상영되는 상영관이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의 토크가 가능하다.

기억나는 것은 데이비드 린치 특별전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트윈 픽스>를 연속 상영했던 때이다. 상영 후에 평론가 토크가 있었는데 영화 상영부터 강연까지 무려 1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장에 있던 관객들 대부분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이다. 정말 열정과 체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던 순간이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 사진제공. 김효정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 사진제공. 김효정
▷ 코로나 때 휴관했던 몇 안 되는 극장이었다. (서울 도심 기준) 휴관을 결정했을 때, 아예 폐관을 고려하지는 않았는지.

명동이라는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임대료가 부담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적자가 그만큼 컸음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폐관을 만약 결정한다고 했을 때도 거기에 상응하는 손실이 컸을 것이다. 사실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임대인의 배려로 몇 개월을 휴관한 후 다시 개관했지만, 아직도 그 어려움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하긴 힘들다. 특히 팬더믹이 끝난 후에도 복원되지 않는 풍습(?)들, 특히 홀드백(영화 개봉 후 OTT에 공개되기까지 기간)이 너무 짧거나 없는 분위기는 극장에 있어서 정말 힘든 부분이다. 홀드백은 반드시 수호해야 하는 정책이다.

▷ 씨네라이브러리 관에 오는 관객들은 일반 CGV를 찾는 관객층과 어떻게 다른가.

정말 다르다. 특히 CGV는 상업영화관이기 때문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불을 켜는 것이 관습이다. 대부분 그때 퇴장하시기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도 있고, 불이 빨리 켜지지 않으면 (영화가 끝났을 때) 때로는 컴플레인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관만큼은 (다른 예술영화관처럼) 모든 크레딧이 다 올라올 때까지 불을 켜지 않는 법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것이 창작자들을 위한 존중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다행히 이 극장을 찾는 분들은 그런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

▷ 아트하우스의 프로그램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기획이 되는지.

콘텐츠 편성팀이 따로 있고, 팀에서 영화를 선정한다. 제작사, 배급사, 수입사 등과 협력해서 이루어지는데 아무래도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 보니 선정의 과정이 쉽지 않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이 오면 골고루 조금이라도 많이 틀어드리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 사진제공. 김효정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 사진제공. 김효정
▷ 한국 독립영화와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물론 우린 상업영화관이지만 독립영화와의 상생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단순히 이 영화들을 상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제작사, 배급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추적인 일이다. 사실 협업이라고 하면 아마도 아트하우스와 KAFA, 그러니까 한국영화아카데미의 협업이 가장 초기의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산학협력을 해서 영화제작 지원금을 제공하고, 아카데미의 졸업 상영을 CGV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현재는 한독협(한국독립영화협회)과 정기적으로 만나서 서로 필요한 점, 도움이 될 수 있는 점을 논의한다. 그 중 결과물로는 독립영화들을 선정해 예술영화관이 있는 CGV에서 예고편 광고를 내보내는 것이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관객들에게도 반응이 좋다. 압구정 CGV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울독립영화제를 열어 온 것도 이러한 협업 중 하나다.
2024년 CGV 압구정에서 서울독립영화제 개최 / 사진출처. 서울독립영화제 페이스북
2024년 CGV 압구정에서 서울독립영화제 개최 / 사진출처. 서울독립영화제 페이스북
▷ 올해뿐만 아니라 향후 몇 년간은 한국영화와 독립영화의 개봉 편수가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의 관점에서는 어려운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경향에 있어서 CGV 아트하우스는 어떤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일단 외화, 한국영화를 떠나 관객들이 관심을 갖는 영화들이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관객들이 한국영화에 관심을 더 갖는 것은 사실이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만큼 한국영화와 한국영화 산업은 극장 산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중요하다는 것을 넘어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 같은, 거의 같은 운명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적은 편수의 한국영화라 해도 그 안에서 옥석을 찾고 관심 포인트를 발굴해서 관객들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영화의 숫자적인 (편수나 제작비에 있어서) 가치는 줄겠지만, 이 안에서 한국영화의 존재적 가치를 유지하려는 대비책이 될 것이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 사진출처. CGV 씨네 라이브러리 페이스북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 사진출처. CGV 씨네 라이브러리 페이스북
지근거리에 극장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그 극장 안에 예술영화관이 있다는 것은 더더욱 행복한 일이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은 션 베이커(Sean Baker)는 인류가 영화와 사랑에 빠진 순간은 극장에서였다고 언급하며, 이 아름다운 전통과 공간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선언을 수상소감으로 대신했다.

이번 씨네라이브러리 탐방은 베이커 감독이 “battle cry”(전쟁터에서의 함성)이라고 표현했던 그의 절실한 연설을 떠올리게 한다. 극장이 감내하고 있는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래서 인류의 아름다운 전통이 존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결국 우리, 관객뿐이다.

Hooray for cinema!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