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텔믹 직원이 3차원(3D)으로 형상화한 도면을 대조하며 초정밀 설비로 고객사가 주문한 부품을 가공하고 있다.  도코나메=이정선 중기선임기자
일본 텔믹 직원이 3차원(3D)으로 형상화한 도면을 대조하며 초정밀 설비로 고객사가 주문한 부품을 가공하고 있다. 도코나메=이정선 중기선임기자
4차원(4D) 레이싱 게임기 모양의 휴게 의자, FM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운용, 와이드 스크린이 설치된 화상 회의장…. 언뜻 스타트업을 연상시키는 이 회사의 본업은 놀랍게도 금속 가공 제품을 제작하는 일본의 마치코바(町工場·소공장)다. 지난달 28일 아이치현 도코나메시에 있는 텔믹(tel-mic) 영업·제작·출하센터에 들어서니 커다란 고양이 인형이 방문객을 맞았다. 홍보 직원 린린은 “학생부터 기업인까지 견학을 많이 오기 때문에 회사 이미지를 오래 남기기 위해 만든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1990년 작은 철공소에서 시작한 텔믹은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제조(모노즈쿠리)의 엔터테이너화’를 표방하는 혁신 기업이다. 디지털 전환(DX)을 발판으로 마케팅 혁신에 성공한 마치코바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도면 DB화…소셜미디어 적극 활용

텔믹은 산업용 금속 부품을 가공한다. 원래 철공소에서 자체 제작했으나 지금은 중국 50개 협력 업체를 통한 외주 생산 방식으로 전환했다. 텔믹이 만드는 제품은 거의 단품이다. 자동차나 항공산업 분야 제조 업체에서 주문하는 맞춤형 지그(jig·제조 공장의 보조 기구) 수요가 가장 많다.

20년간 쌓인 종이 도면, 3D 변환…"의료·우주부품까지 다 만든다"
다나카 히데노리 텔믹 대표(사진)는 “공장마다 필요한 단 1개의 제품도 얼마든지 대응 가능한 제작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며 “견적서를 받아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비행기로 공수해 바로 다음 날이면 고객사에 납품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제조하기 어려운 정밀 부품은 일본 본사와 영업소에서 첨단 장비를 이용해 자체 제작한다.

견적에서 납품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과정을 위해 텔믹이 가장 공을 들인 건 도면의 데이터화다. 텔믹은 20여 년간 수주하면서 받은 도면을 3차원(3D) 형태로 입력한 ‘MIC 시스템’을 독자 개발해 영업에 활용하고 있다. 오랜 경력에서 쌓인 눈썰미와 손재주로 대응하는 대다수 소공인과 다른 점이다. 다나카 대표는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모아놓은 도면을 데이터화하니, 조금만 응용하면 고객사가 요청하는 웬만한 주문을 다 맞출 수 있다”며 “도면을 잘 볼 줄 모르는 여직원도 고객사와 상담하거나 영업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거래처를 돌아다니며 수주하던 영업 방식도 채팅, 이메일, 전화 상담 등으로 이뤄지는 온라인 플랫폼 시스템으로 바꿨다. 구글, 야후재팬 등 포털사이트의 리스팅 광고와 소셜미디어 등을 활용해 자사 홈페이지로 유도한다. 홈페이지에는 견적 의뢰 사이트가 개설돼 있다. 제조업에 쿠팡과 홈쇼핑식 마케팅 기법을 접목한 셈이다. 매주 수요일엔 라디오 생방송을 하고 유튜브에 녹화 방송을 띄워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약 15억엔을 투자해 물류 방식도 DX 시스템으로 뜯어고쳤다. 첨단 물류센터에선 중국에서 보내온 제품을 무인운반차량(AGV)과 자동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해 제품을 출하한다. DX 혁신에 성공한 텔믹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2014년 3억5700만엔이던 매출은 지난해 51억8600만엔으로 약 14배 늘었다. 3년 뒤엔 100억엔을 넘어서는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다.

◇DX 혁신 통해 초고속 성장

20년간 쌓인 종이 도면, 3D 변환…"의료·우주부품까지 다 만든다"
미에현 고모노마치에 있는 54년 역사의 마에다테크니카 레이저 복합 가공기, 후판재 절단 레이저 등 장비를 활용해 모터 제어 부품에서 의료기기 부품, 우주 방위 장비 부품까지 온갖 분야의 금속 가공 제품을 생산한다. 1개부터 100개 이하의 다품종 소량 주문에 특화돼 있다. 한 주에 800개 품목, 4000건의 주문을 소화한다.

마케팅 혁신에도 나서고 있다. 매년 지역 주민을 초청해 금속 가공 체험 이벤트를 연다. 작업장에 남은 금속 자재로 자동차와 비행기 모양 장난감을 만들어 파는 ‘토이 메탈’ 브랜드를 출시했으며 인스타그램 홍보도 시작했다.

윤정호 한국소공인진흥협회 본부장은 “한국 소공인이 고령화와 2세 승계 거부로 수십 년간 쌓은 암묵지가 사장될 위기에 놓여 있는 만큼 일본처럼 데이터화하거나 마케팅 혁신을 거쳐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코나메·고모노마치=이정선 중기선임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