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역겹다" 외치던 男…돈 많은 女 만나 결혼 후 생긴 일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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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발로통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가난한 애인을 버리고 아주 돈이 많은 여성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녀는 아이가 셋 딸린 과부였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조롱하던 부잣집. 발로통은 이제 그 그림 속의 등장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요. 발로통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파리의 스위스인
발로통은 1865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은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미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아들을 유학 보낼 수 있을 만큼은 넉넉했습니다. 열일곱 살에 파리에 도착한 그는 미술학교에서도 단연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발로통의 아버지가 미술학교 선생님에게 “아들이 화가로 먹고살 수 있겠냐”는 편지를 보내자, 선생님은 이렇게 답장했습니다. “아드님은 탁월한 학생입니다. 만약 저에게 발로통 같은 아들이 있다면 저는 아들의 미래를 전혀 걱정하지 않을 것이고, 아들의 예술을 돕기 위해 어떤 희생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이런 성격 덕분에 발로통은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최고의 예술 학교로 널리 인정받았던 에콜 데 보자르 입학시험에도 합격했지요. 다만 판화에 관심이 있었던 발로통은 다른 학교(줄리안느 아카데미)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피에르 보나르, 에두아르 뷔야르 등 친구들을 만나 함께 ‘나비파’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 시기 발로통의 생활은 넉넉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부쳐 주는 생활비가 늘 모자랐거든요. 그래서 그는 신문과 잡지에 실릴 그림을 그리고, 판화를 제작해 판매하고, 초상화를 그려서 모자란 용돈을 벌었습니다. 그래도 발로통은 행복했습니다. 그에게는 젊음과 자유가 있었으니까요. 밤이면 발로통은 거리에서 나비파 친구들을 비롯한 예술계의 동료 화가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엘렌 샤트네라는 재봉사와 연애도 했습니다. 사랑은 서로 결혼을 이야기할 만큼 깊었습니다.


흑백, 단순한 선. 설명도 대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그림 앞에서 발을 멈췄습니다. 밀회와 불륜, 질투와 분노 같은 감정이 판화 속에서 조용히 폭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거야.” 발로통은 마침내 자신이 추구해야 할 자신만의 화풍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판화의 단순함과 평면적인 느낌을 살리되, 마음속의 감정과 생각을 강렬한 색과 구도 연출로 담아내는 그만의 방식이었습니다.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이미 화가로서 자리를 잡은 발로통. ‘친밀함’ 연작을 발표해 명성을 얻은 다음 해인 1899년 마침내 그는 결혼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상대는 모두가 예상했던 애인, 엘렌이 아니었습니다. 파리의 유명 미술상인 베른하임 가문의 딸이자 사별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세 아이를 둔, 두 살 연상의 과부 가브리엘 로드리게스-엔리케스였습니다.

그림 속 인물이 되다
당연히 상대가 엘렌일 것이라고 생각한 가족과 친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결혼 상대는 어떤 사람이냐. 엘렌은 어떻게 됐느냐”는 가족에게 발로통은 장문의 편지로 구구절절 설명합니다.“엘렌에게 잘 설명했고, 우리는 계속 연락하고 지내기로 했어요. 가족이 제가 엘렌을 배신했다고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중략)…제가 결혼할 사람의 이름은 가브리엘이고, 전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그녀는 유명한 미술상인 베른하임 씨의 딸인데, 베른하임 가문 사람들은 아주 훌륭하고 부자입니다. 저는 가브리엘을 4년간 알고 지냈어요. 그녀는 보기 드물게 아주 착한 사람이고 우리 둘 다 서로를 잘 이해합니다. 가브리엘은 세 자녀가 있는데 첫째는 열다섯 살, 둘째는 일곱 살이에요. 그 아이들은 저를 좋아하고 나도 아이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결혼 생활은 모든 게 아주 합리적일 겁니다….”
발로통의 편지 곳곳에는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이를 애써 합리화하려는 듯한 복잡한 감정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이 결혼을 위해 발로통은 가난한 시절을 함께 했던 애인을 버렸습니다. 누가 봐도 이는 신분 상승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때까지 자신이 그림으로 비판해온 그 계산적이고 속물적인 상류층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발로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처럼 초상화를 그리다 만난 가브리엘. 그녀는 세련되고 따뜻한 사람이었고, 발로통을 호의적으로 대했습니다. 발로통도 그녀에게 묘한 끌림을 느꼈습니다. 만약 그녀와 결혼한다면 그는 돈을 벌기 위한 작업을 때려치우고 그토록 바라던 순수미술가로서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발로통은 그 기회를 잡기로 했습니다.

맞지 않는 옷
하지만 그는 행복해지지 못했습니다. 의붓자식들과 사이가 나쁜 게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발로통의 집을 방문해 아이들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붓자식들이 발로통을 난폭하게 괴롭히고 있다”라고요. 발로통이 형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그의 어려움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큰아들이 너무 밉살스럽게 굴어. 그렇지만 않으면 모든 게 잘 될 텐데.” “딸은 모든 일에 흠을 잡아. 정말 살기가 힘들어.” 하지만 가브리엘 입장에서도 자식들을 두고 발로통의 편만 들어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발로통은 집 안에서 홀로 고립됐습니다.상류층으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손님 대접과 같은 사교생활도 갈수록 괴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1905년 형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금 나는 야자수와 오렌지 나무로 둘러싸인 호화로운 별장에서 지내고 있어. 하지만 마음이 불편해. 그냥 혼자 시골 오두막에서 조용히 혼자 생각하고 싶어.” 1907년의 편지는 이랬습니다. “무의미한 수다, 시끄러운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있어. 하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없어. 외로워.” 이런 괴로움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1918년 발로통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견뎌온 거짓된 생활.”


중년이 된 발로통은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증상은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신경질적이고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태도 탓에 가족과 사이는 계속 악화되기만 했고, 친구들과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예술계에서도 발로통에 대한 평가는 점점 나빠졌습니다. 피카소의 입체파가 등장하는 등 예술계의 흐름과 유행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었지만 발로통은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자신의 화풍을 고수했습니다. 어느새 그는 예술계의 주류에서 동떨어진 괴짜 취급을 받게 됐습니다. 한 평론가는 그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혹평했습니다. “발로통의 그림에는 즐거움이 전혀 없다. 건조하게 삐걱거린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그는 결국 사람과 자연을 버리고 정물화에 집중했습니다. 생생한 색상, 조심스러운 배열, 극도로 정밀한 묘사가 특징입니다. 1919년,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정물화만이 나를 즐겁게 합니다. 달걀의 완벽한 모양, 토마토가 갖고 있는 촉촉함, 수국꽃의 두드러진 질감. 그것만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니까요.”
불안의 화가
1921년, 56세의 발로통은 일기에 썼습니다. “나에게도 한때 소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몇 주 전인 것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인생은 연기와 같다. 싸우고, 패배해서 굴복하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환상을 움켜쥐려 애쓰다 보면, 어느새 죽음이 다가와 있다.” 그는 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4년 뒤 60세 생일을 하루 넘긴 1925년 12월 29일,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고독과 불안에서 나오는 완벽주의는 발로통의 탁월한 예술을 만들어낸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균형 잡힌 구도와 아름다운 긴장감은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비롯한 후대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습니다. 오늘날에도 그의 그림은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발로통이 남긴 그림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슬픔이, 보는 이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불안을 공감하듯 어루만지기 때문일 겁니다.

***후속작 출간 준비를 위해 2주간 연재를 쉬어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 담당 기자가 미술사의 거장들과 고고학, 역사 등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연재물입니다. 매주 토요일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미술 소식과 지금 열리는 전시에 대한 평가, 심층 분석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 구독 중인 7만여명의 독자와 함께 아름다운 작품과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앞서 다뤘던 화가들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들은 두 권의 책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과 <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으로 곁에 두고 즐길 수도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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