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기업에 원가 공개를 요구한 것은 지역난방업계가 처음이 아니다. 과거 정유업체의 석유제품 도매가격 공개를 추진했고, 건설업체를 대상으론 분양원가 공개를 압박했지만 “시장경제 원리에 배치된다”는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원가가 공개되면 정부가 사실상 가격을 통제하게 되는 만큼 기업은 비용 절감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이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가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령 개정에 나선 건 2022년이다. 당시 정유업체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는데, 원가를 공개하면 정유사들이 챙긴 막대한 이익의 일부가 소비자에게 이전될 것으로 보고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도매가를 지역별로 공개하는 내용을 시행령에 담기로 했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반(反)시장 규제’라는 반발에 부딪혀 없던 일이 됐다. 원가 공개를 강제하는 건 민간기업의 영업 비밀을 보장하는 헌법에도 위반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유시장 체제에서 석유제품 원가를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 원가 공개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도 한몫했다. 당시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 등은 “경쟁사 원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으면 주유소 간 가격 동조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원가가 비슷한 주유소끼리 ‘묵시적 담합’을 통해 가격을 높게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민간 아파트 분양가 공개 요청이 번번이 실현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정부는 부동산시장이 과열될 때마다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만지작거렸다. 정부는 원가가 공개되면 건설사들이 폭리를 취하기 힘들어지는 만큼 분양가가 인하될 것이란 논리를 펼치지만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반박에 직면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분양가는 시장의 수요·공급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운데 원가를 공개하면 분쟁만 커질 것”이라며 “원가 공개가 아파트 분양시장을 침체시켜 신규 주택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원가 공개로 기업이 일정 마진만 챙길 수 있게 되면 어떤 기업이 혁신을 통해 원가 절감에 나서겠느냐”며 “원가 공개는 아무 실효성 없이 시장을 왜곡하는 문제만 낳을 뿐”이라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