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이 죽기 전 듣던 벨리니의 곡…'천상의 목소리'로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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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초월한 '뮤즈' 안나 모포
11개 오페라 만든 빈첸초 벨리니
음악사 '암흑 낭만주의' 시대 열어
마지막 작품 '청교도' 아리아
모포의 아름다운 음성과 찰떡
11개 오페라 만든 빈첸초 벨리니
음악사 '암흑 낭만주의' 시대 열어
마지막 작품 '청교도' 아리아
모포의 아름다운 음성과 찰떡

쇼팽마저 병약해 죽기 직전, 평생 찬미하던 이 작곡가의 노래를 들려주길 청했을 정도다. 누굴까? 이탈리아의 빈첸초 벨리니(1801~1835)가 그 주인공이다.
벨리니는 젊은 나이에 은퇴한 로시니의 맥을 잇는 위치에 자리한다. 19세기 중반 10여 년 동안은 그의 오페라가 세상을 풍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30대 나이로 요절하는 바람에 네 살 위 라이벌 도니체티에 길을 터준 당사자이기도 하다. 공교롭게 오페라의 왕 베르디가 본격 활동한 시기도 그의 죽음 후에 비로소 이뤄졌다.
벨리니는 도니체티와 자주 비견되는데 도니체티의 음악이 정감 있고 구성지다면, 벨리니는 세련되고 격조가 있다. 그가 남긴 11개 작품은 하나같이 빼어나다. 그중 ‘몽유병 여인’(1831), ‘노르마’(1831), ‘청교도’(1835)를 보통 3대 오페라라고 부른다. 음악사에서 이른바 ‘암흑 낭만주의’를 도입한 인물이다. 전에 없던 공포·악령·죽음·광란·퇴폐·에로틱 등을 오페라에 투영해 특유의 비가적(悲歌的) 멜로디에 입혀 극적 효과를 드높였다.
오페라 ‘청교도(I Puritani)’는 그의 마지막 작품. 청교도 총독 발톤 경에겐 어여쁜 딸이 있다. 엘비라다. 아버지는 같은 정파인 혁명파 장교 리카르도와 딸을 결혼시키려 한다. 그러나 엘비라가 사랑하는 사람은 얄궂게도 스튜어트 왕조의 왕당파 기사인 아르투로다. 딸을 이기는 아버지는 좀체 없는 법. 발톤은 둘의 혼인을 결국 허락하지만, 결혼식 직전 일이 터진다. 성채에 자신이 모시고 있던 왕의 부인 엔리케타가 갇혀 있음을 알게 된 아르투로가 충성심을 주체하지 못해 왕비와 함께 탈출한 것. 이 소식을 듣고 실성한 엘비라가 아르투로를 그리며 부르는 아리아가 ‘당신의 부드러운 음성이 나를 감싸고(Qui la voce sua soave)’다.
‘당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요/그러나 이제 사라졌어요/여기서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고 맹세했어요/그런데 도망쳤어요, 잔인한 사람… ’
오페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프라노 중 한 사람, 안나 모포(1932~2006)가 기막히게 부른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모포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해 학예회 단골 출연은 물론 결혼식·장례식에까지 불려간 신동. 미모 또한 빼어나 할리우드 제작자 눈에 들었으나, 보수적인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는 바람에 수녀원에 보내질 운명이었다. 그러나 재능이 워낙 뛰어나 고향 필라델피아의 명문 커티스음악원에 장학생으로 뽑히자 마침내 가수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졸업 후 모포는 독특하게도 본향이기도 한 이탈리아로 가 페루자대학에서 역사를, 산타체칠리아음악원에서 오페라를 다시 공부한다.
아름답고 화려한 외모 때문에 수많은 오페라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다. 20대 때 4년간 12개의 새로운 배역으로 출연했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좌에서 20년간 21개 배역을 소화한 기념비적 기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급기야 1970년대 초반 목에 이상이 생겨 공백기를 맞았으나 1976년 컴백해 1983년, 51세 때까지 활동하고 미련 없이 커리어를 접었다.
“오페라는 눈물을 이끌어내야 한다. 사람들을 전율케 해야 한다. 노래를 통해 죽게끔 해야 한다.” 벨리니의 오페라 관(觀)이다. 모포야말로 여기에 꼭 맞는 벨리니의 뮤즈요 페르소나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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