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관세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수출 중심국인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주저앉았다. 시장 예상보다 훨씬 강도 높은 관세율이 발표되자 글로벌 경기 침체가 현실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아시아 증시를 덮쳤다.
3일 한국 코스피지수는 0.76% 내린 2486.70에 거래를 마쳤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2.77% 급락한 34735.93에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으로 350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동안 글로벌 국가의 제조기지 역할을 해온 동남아시아 증시도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고강도 관세율을 맞닥뜨리자 일제히 급락했다. 46%의 상호관세율을 부과받은 베트남 VNI지수는 6.68% 하락했다. 홍콩 항셍 지수(오후 4시 기준)도 1.60% 내렸다.
미국 주가지수 선물도 급락했다. 오후 4시 기준 미국 나스닥100 선물은 3.39%, S&P500 선물은 2.96% 내렸다. 중국에 54%의 상호관세가 부과되자 애플은 시간외 거래에서 7.14% 폭락했다.시간 외 거래에서 엔비디아(-5.70%) 아마존(-6.13%) 등 빅테크 주가도 일제히 크게 내렸다.
예상보다 강도높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공개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각국의 경기침체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탓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전망했던 시나리오 중 가장 최악의 관세율”이라며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주저앉았다”고 말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관세율이 공개되자 글로벌 투자자금은 안전자산으로 몰렸다. 국제 금 가격은 또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 현물 가격은 이날 오전 한때 온스당 3167.84달러를 기록하며 고점을 높였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해 10월 중순 이후 최저 수준인 4.06% 수준으로 내려간 상태(채권 가격 상승)다.
국내 증시에선 전기전자와 해운, 금융 업종이 뚜렷한 급락세를 보였다. 삼성전기(-8.50%), LG이노텍(-6.44%), LG전자(-5.81%) 등 46%의 상호관세를 맞닥뜨린 베트남 등에 생산 거점을 보유한 전기전자 기업이 일제히 급락했다. 이번 상호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교역 둔화세가 뚜렷해 것이라는 전망에 HMM(-3.89%), 대한항공(-2.55%) 등 운송·해운 업종도 약세를 보였다. 강달러 기조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KB금융(-4.22%) 등 금융업종도 일제히 하락했다. 가까스로 ‘이중관세’를 피했지만 현대차(-1.27%) 기아(-1.41%) 등도 약세를 피하지 못했다.
다만 ‘관세 불확실성’이 정점을 통과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뒤늦게 힘을 받으며 오전 장중 3% 가까이 떨어지던 코스피지수는 오후 들어 낙폭을 줄였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하루 앞두고 국내 증시를 짓눌러온 가장 큰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는 1조4437억원어치의 매물 폭탄을 던졌지만 개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가가 각각 8618억원, 4646억원 어치를 순매수하며 지수를 방어했다.
증권가에선 당분간 불가피하게 증시 변동성이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도높은 관세를 부과받은 각 국가들이 잇따라 보복 관세 카드를 꺼내들때마다 증시는 또다시 휘청일 수 밖에 없다. 트럼프 1기 당시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한 2018년 7월 이후 그해 말까지 코스피지수는 12.25% 하락했다. 다만 미국과 각 국가가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하며 최종 관세율이 낮아지고, 이를 반영한 증시도 반등할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상장사의 실적이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하고 있는 점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101개의 올 1분기 영업이익 합산치는 37조6410억원으로 1개월 전(30조2043억원) 대비 1.17% 늘었다. 최종혁 씨스퀘어자산운용 대표는 “글로벌 관세 뿐 아니라 탄핵, 공매도 재개 등 국내 증시를 짓누르던 불확실성이 본격적으로 해소되는 시점에 왔다”며 “국내 증시는 하반기로 갈 수록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엄밀히 말하면 50개국에 관세가 부과되면서 한국만 상대적 열위에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시총 비중이 가장 큰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통과하고 있는만큼 증시가 상승할 수 있는 여력은 남아있다”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