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강관세로 경쟁력 향상 기대
(2) 미국의 국가 안보에 필수 요소
(3) 경합주 러스트벨트 표심 공략
(4) 일본과의 무역 협상용 카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이틀 연속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인수 가능성을 열어놨던 것과 다른 기조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철강산업 보호를 이유로 내세웠다.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할 것이 아니라 미국에 공장을 더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US스틸 매각을 일본과의 협상 카드로 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외국이 사는 것 받아들이기 힘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US스틸은 미국 역사상 위대한 업체 중 하나”라며 “일본을 사랑하지만,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US스틸 브랜드를 외국이 사는 것을 받아들이기 조금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그들은 직접 공장을 지으면 안 되고 US스틸을 인수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뒤 “그래서 거래를 거부했고 이제 그들은 투자자로 돌아왔으며 나는 그에 대해 기분이 더 낫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 관세 등으로 US스틸의 미래가 밝다고 강조했다. 그는 “US스틸은 관세 때문에 잘될 것”이라며 “그들이 왜 거래가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US스틸은 특별한 회사”라며 “우리는 US스틸이 일본이나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12일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발효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선 이에 따라 미국 철강 회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US스틸은 그동안 수입 철강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전체로는 흑자를 냈지만 4분기만 놓고 보면 8900만달러 적자(순손실)를 내는 등 경영 사정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관세 부과로 수입 철강의 미국 내 가격이 오르면 US스틸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국가 안보도 트럼프 대통령이 주목하는 분야다. 트럼프 행정부는 철강이 없으면 무기도 만들 수 없다며 철강을 국가 안보의 핵심 산업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US스틸 본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는 미국 정치권 판도를 좌우하는 대표적 경합주로 꼽힌다. 내년 중간선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핵심적으로 공략해야 하는 지역이다. 민주당은 지난 8일 하원 다수당 탈환을 위한 핵심 거점으로 펜실베이니아주를 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해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 지역) 표심을 잡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반대하고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과 협상 목적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에도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반대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드물게 의견이 일치한 부분이었다. 그랬던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통화하고 나서 행정부에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문제를 재검토한 뒤 45일 안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바이든 전 대통령이 내린 ‘US스틸 인수 불가 결정’을 뒤집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는데 다시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와 관련해 이처럼 입장을 번복한 이유는 일본 정부와 무역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대비 엔화 약세를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의 핵심 이유로 꼽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가 성사되려면 일본 정부가 엔화 강세를 용인하고 미국산 수입 확대를 위한 협상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를 압박할 카드로 US스틸을 활용한다는 해석이다.
최근 미국 국채 가격 폭락(국채 금리 상승)에 일본이 연관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트럼프 대통령 심기를 건드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 지난해 말 기준 미국 국채 보유국 1위로, 1조598억달러어치를 갖고 있다. 2위 보유국인 중국(7590억달러)과 규모 면에서 격차가 크다.
특히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로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과 일본 국채를 내다 팔면서 일본 정부도 시장 불안에 대응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실제 일본 재무성은 2022년에도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미국 국채를 매도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