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맘에 안들어" 해고하겠다는 트럼프…가능할까?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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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대해 해고하겠다는 위협을 공개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파월 의장을 “‘너무 늦는’ 제롬 파월”이라고 부르면서 “파월의 해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만났을 때도 “그와 함께 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그에게 그가 나갈 거라고 알려 달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이런 위협은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선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미국 대법원 판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Fed의 독립성이 본격적으로 위협받으면서 금융시장이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파월, 맘에 안들어”
파월 의장의 의장으로서 임기는 내년 5월15일까지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해 2018년부터 4년간 의장을 맡았고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그를 한번 더 의장(2022년 5월23일~2026년 5월15일)으로 지명했다.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해고하겠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금리인하가 더뎌서’다. 그는 이날 파월 의장을 향해 트루스소셜에서 “항상 너무 늦고, 틀린다”면서 “파월은 유럽중앙은행(ECB)처럼 오래 전에 금리를 인하했어야 했으며 지금이라도 인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기자회견에서도 파월 의장 해고를 계획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만약 그가 금리인하 정책을 변경하지 않는다면”이라고 답했다. “유가는 배럴당 60~65불로 하락했고 식료품 가격도 내려갔다. 금리를 인하하면 더 나은 상황이 될 것이다. 인플레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전날 파월 의장이 관세 정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특히 심기를 거슬렀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책에 대한 시각차는 그에 대한 해고의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연방준비제도법에 따르면 Fed 이사(의장 포함)에 대한 해임엔 “정당한 사유”가 필요하다. 법원은 그간 이를 ‘부정행위’나 ‘직무 태만’으로 해석했다.
파월 의장에 대한 해임을 강행할 경우, 소송이 뒤따를 전망이다. 미국 수정헌법 2조2항은 대통령에게 연방공직자를 ‘지명’할 권한만 주고 상원에서 ‘조언과 동의’ 과정을 거쳐서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인사권을 휘두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다만 해임에 관해서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
해임 기준에 관해 가장 중요한 판례는 1935년에 나온 ‘험프리의 집행자 대 미국’ 판결이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연방무역위원회(FTC) 위원을 이유 없이 1933년 해임한 건에 대하여 대법원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건이다. 당시 대법원은 “위원은 비효율성, 직무 태만, 부정행위를 이유로 대통령에 의해 해임될 수 있다”는 FTC 규정을 들어 대통령의 해임권한을 “법에 명시된 사유로만 제한한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험프리 사건 후에도 대통령의 연방공무원에 대한 해고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대법원은 2020년 트럼프 1기에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수장을 임의로 해임한 건에 관해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수장이 한 명인 연방기구와 달리 FTC나 Fed와 같이 ‘이사회’ 체제로 되어 있는 조직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구성을 의도한 것인 만큼 대통령이 임의로 해임할 수 없다는 의견이 더 우세하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해석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취임 직후 그는 그웬 윌콕스 노동관계위원회(NLRB) 위원과 캐시 해리스 공무원성과체계보호위원회(MSPB) 위원장을 해고했다. 베릴 하월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지난달 7일 두 사람이 제기한 복직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반면 대법원의 기류는 좀 다르다. 현재 대법원은 보수파가 6명, 진보파가 3명이다. 보수파 중 3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1기에 임명했다. 이 중에서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과 닐 고서치 대법관은 험프리의 집행자 판결이 ‘잘못된’ 선례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스스로 사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작년 11월 기자회견에서 거듭 밝혔다. 소송전이 벌어질 경우, 이는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규정하는 핵심 판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시장 충격 우려
Fed의 독립성이 흔들리면 결국 물가 관리라는 Fed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되고, 인플레이션 기대치 상승으로 장기 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과 반대방향의 결과를 얻게 되는 셈이다. 달러가치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할 수도 있다.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파월 의장 해임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티코는 익명의 복수 소식통을 인용해 베선트 장관이 백악관 관계자들에게 파월 의장을 해고하려는 노력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울 위험이 있다고 반복적으로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베선트 장관은 앞서 Fed의 기준금리보다 10년물 국채 수익률을 낮게 유지하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하면서 Fed에 대한 간섭 논란을 차단하려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직설화법 앞에서 이런 노력은 무용지물이 됐다. 파월 의장의 후임으로는 케빈 워시 Fed 이사, 아서 래퍼 래퍼어소시어츠 회장 등이 거론된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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