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보다
다채롭게 변주되는 거대한 환상적 교향악의
순음악적인 아름다움을 느껴라
교향악 작품 가운데 클래식 초심자가 쉽게 들을 수 있는 곡을 꼽으라면, 두말없이 흔쾌히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교향시 <셰에라자드>를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흔히 <세헤라자데>로 불리지만 정확한 표기는 <셰에라자드>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아라비안 나이트'로 알려진 소설 '천일야화' 또는 '천일(1001)일의 아라비아의 밤'이라는 흥미로운 스토리를 배경으로 하고있는 데다가, 우리 귀에 착 감기는 이색적인 선율까지 함께 어우러져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천일야화'는 자신의 왕비가 흑인 노예와 바람이 난 것에 격분하여 그 이후로 처녀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하룻밤을 지낸 후 처형하기를 일삼는 포악한 왕(술탄)을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로 달램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면하고, 결국 술탄의 마음을 풀어 그의 왕비가 되는 지혜로운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Hermann Emil Sprengel, <세헤라자데(Scheherazade)> (1881) / 사진=필자 제공
전체 4악장으로 구성된 이 교향시에는 '천일야화'와 관련이 있는 '바다와 신드밧드의 배'(1악장), '칼렌다르 왕자 이야기'(2악장), '젊은 왕자와 공주'(3악장), '바그다드의 축제-바다-난파-종결'(4악장) 등과 같은 표제들이 달려 있어서, 듣는 사람들은 마치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천일야화'의 이야기를 그림책을 읽는 것처럼 느끼며 음악에 쉽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출판 시에 붙여진 위와 같은 표제적 제목은 사실,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따른 것이지 작곡가가 애당초 스스로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표제적 제목으로 인해 사람들이 이 음악을 아주 구체적인 스토리를 표현한 프로그램 음악처럼 오해하자 오히려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곡에서 그러한 표제적 제목들을 제거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 곡의 음악적 내용을 분석할 때, 그로부터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합니다만, 이러한 노력은 이 곡을 순음악적으로 느끼고 이해하는 데에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곡의 처음에 제시되는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샤리아 왕을 묘사하는) '술탄의 동기'나, 이어지는 바이올린 솔로가 제시하는 '셰에라자드의 동기'를 포함하여 다양한 주제나 동기들이 이 작품에서 마치 바그너의 악극에 나오는 유도동기(leitmotif)와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곡가가 처음에 제시한 위 두 가지의 핵심 동기들이 전체 곡의 음악적 축을 이루는 것은 맞지만, 이러한 동기들은 유도동기처럼 작용하는 것은 아니며, 악장별로 등장하는 음악적 주제나 동기들이 각기 어떤 특정 인물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물론 앞서 설명드린 '천일야화'가 이 곡의 작곡에 있어서 영감의 원천이고, 전체 곡 역시 술탄과 셰에라자드의 동기에 기반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곡의 진행 과정에서 수시로 세헤라자드의 동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주고, 마지막에는 술탄의 동기와 세헤라자드의 동기가 결합하는 듯 끝을 맺는 것으로 작품이 설계되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큰 줄기의 흐름 이외에 각 악장을 채우는 다양한 음악적 소재들은 무슨 구체적인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묘사하는 표제적인 소재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만) 그러한 음악적 소재의 대부분은 이 곡의 핵심 소재인 술탄과 셰에라자드의 동기에 기반한 것이어서 서로 음악적으로 매우 긴밀한 관련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교향시의 음악적 일관성을 높이기 위해 마지막 악장에는 (소위 '술탄의 동기'와 '셰에라자드의 동기'에 기반한) 이전의 악장의 다양한 소재들이 다시 소환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이 곡이 술탄의 동기와 셰에라자드의 동기 등 일정한 음악적 소재들을 기반으로 한 하나의 거대한 변주인 것처럼 전체 곡을 (고전주의적 교향곡 이상으로) 통일된 하나의 음악적 구축물로 만들어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동기나 그와 관련된 변주가 전개될 때마다, 그 동기가 유도동기와 같이 늘 일정한 어떤 캐릭터를 상징하거나 묘사하는 것처럼 이해하며 '천일야화'에서 그에 해당하는 표제적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시도하는 것은 작곡가의 의도에서 벗어난 부질없는 일입니다.
결국, 이 작품을 감상할 때 각 부분마다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를 묘사하는 프로그램 음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뿌리를 같이 하는 다양한 음악적 소재들이 상호 유기적 일관성을 유지한 채 다채롭게 변주되며 만들어내는 하나의 통일된 구조의 거대한 환상적 교향악으로 파악하고, 그 속에 담긴 순음악적인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 작곡가의 의도에 더 부합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 작품은 콘드라신1), 테미르카노프, 로스트로포비치, 게르기예프2) 등 러시아 지휘자들 외에도 첼리비다케3)나 정명훈4) 등이 아주 멋진 음반을 남겼지만, 이하에서는 핀란드의 거장 제거스탐의 독특한 연주를 중심으로 이 작품의 정교한 음악적 구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Rimsky-Korsakov: Scheherazade op.35 - Leif Segerstam - Sinfónica de Galicia]
<1악장>
곡은 금관이 아래와 같이 근엄하면서도 고압적인 느낌의 술탄(샤리아)의 주제를 E단조로 제시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는 목관들이 술탄 '주제'의 화성적 구조를 펼쳐 보여주듯이 e - d - c - f# - a를 순차적으로 제시합니다.
그 후 아름다운 공주 셰에라자드를 묘사하는 주제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하프의 아르페지오와 함께) 아래와 같이 바이올린 악장의 솔로로 노래됩니다. 바이올린의 독주로 묘사되는 셰에라자드의 동기는 전체 곡에서 수시로 등장하면서 곡의 흐름과 국면을 전환하는데, 이 교향시의 마지막 또한 이 셰에라자드의 동기로 마무리됩니다.
도입부에서 제시되는 이러한 두 가지의 대조적인 음악적 재료를 토대로 하여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엄청난 교향악적 구조물을 구축해나가는데, 이 두 개의 동기와 더불어 1악장에서 매우 중요한 또 다른 동기는 '바다와 신밧드의 배'라는 표제적 제목이 시사하는 바다의 동기입니다(아래 악보의 첼로 파트 참조).
위와 같이 상행 후 하행하는 음형으로 구성된 바다의 동기는 마치 출렁이는 파도나 흔들리는 배를 묘사하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셰에라자드가 술탄에게 들려주는 환상적인 이야기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 바다의 동기는 술탄의 동기와 음악적으로 긴밀한 관련성을 가지면서 이후 교향시의 전개에서 자주 함께 등장합니다. 이러한 음악적 구성이 어떤 면에서는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환상적인 이야기에 술탄이 이미 동화되며 빠져드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술탄의 동기와 셰에라자드의 동기가 도입부에서 느리게 제시된 이후 1악장이 위의 악보와 같이 Allegro non troppo의 템포로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할 때, 위 악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첼로가 바다의 동기를 연주하는 그 위로 술탄의 동기가 운동성이 느껴지는 트릴을 섞어가며 변주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술탄의 동기와 함께 크게 요동치던 바다의 동기는 곧 잔잔해지면서 목관들이 이제는 부드럽게 변모된 바다의 동기를 연주하는데, 곧이어 호른에 의해 연주되는 술탄의 동기도 같이 부드럽게 울립니다.
그 후 독주 악기들이 잔잔해진 바다를 연주하지만, 갑자기 바이올린 독주가 셰에라자드 동기에 기반한 가락을 연주하고, 이를 계기로 오케스트라 또한 셰에라자드 동기를 화려하게 변주하면서 곡은 이제 위의 세 가지 기본적인 동기들이 서로 한데 어우러져 요동치며, 환상과 모험이 가득한 항해로 접어듭니다(이 부분은 마지막 4악장의 끝에서 다시 소환됩니다).
트럼펫이 술탄의 동기를 불며 더욱 끓어오르던 오케스트라는 목관들이 부드럽게 변모된 바다의 동기를 연주하면서 다시 잠잠해집니다. 이 대목에서 첼로가 부드럽게 변모된 (마치 이야기가 궁금하여 애원하는 듯한) 술탄의 동기를 노래하면 클라리넷 등 목관이 바다의 동기를 대화하듯 연주합니다.
이때 다시 독주 바이올린이 셰에라자드의 동기를 연주하자 오케스트라 또한 다시 셰에라자드 동기를 화려하게 변주하면서 곡은 다시 위의 세 가지 기본적인 동기들이 한데 어우러진 환상과 모험의 항해를 반복합니다.
그 후 다시 플룻이 조용히 술탄의 동기를 연주하면서 분위기는 잦아들고, 목관이 이전처럼 잔잔해진 파도처럼 부드러운 바다의 동기를 연주하면서 1악장은 고요히 끝이 납니다.
이처럼 1악장은 표제적 제목처럼 신밧드를 둘러싼 어떤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묘사한다기보다는 술탄, 셰에라자드, 바다(파도, 이야기) 등을 상징하는 주요 음악적 동기들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천재적인 필치에 의해 서로 절묘하게 얽혀 서로 대조를 이루며 변주되는 하나의 환상곡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2악장>
격랑 하던 파도가 잔잔해지듯 1악장이 끝나면 다시 셰에라자드의 동기가 1악장의 처음처럼 하프와 함께 울리면서 2악장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셰에라자드의 동기는 (마치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나가려는 노력처럼) 처음보다 더 치열해지는데, 이야기보따리를 툭 하고 던지듯 하프가 아르페지오가 울리자 바순(파곳)이 아래와 같은 음악적 동기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위 동기의 끝부분은 이어지는 주제의 후반부에서 아래 악보의 밑줄 친 부분과 같이 변형되어 반복되는데, 이는 2악장의 중간부를 장식하는 음악의 주된 소재로도 작용하고 또 4악장에서 거듭 소환되기도 합니다.
흔히 표제적 제목에 따라 칼렌다르의 주제라고 불리는 이 음악적 소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2악장에 대하여, 어떤 분들은 천일야화에 나오는 탁발승 칼렌다르를 둘러싼 구체적인 이야기를 프로그램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2악장은 칼렌다르 왕자를 둘러싼 어떤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묘사한다기보다는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또 다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일관성 있는 음악 언어로 변주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바순이 노래하는 위의 칼렌다르의 주제는 자세히 들어보면 이 역시 술탄의 동기에 뿌리를 두고 음악적으로 변형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1악장의 다양한 음악적 소재나 라벨이 편곡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서 바순 등이 연주하는 음유시인의 노래처럼)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또 다른 옛날이야기를 추상적으로 상징하는 음악적 동기라고 보면 족할 것입니다.
아무튼 바순이 노래하는 칼렌다르의 주제는 바로 오보에가 이어받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는 오케스트라로 확산합니다.
그 후 첼로 솔로가 아래 악보와 같은 칼렌다르 주제의 후반부 상승 음형을 노래하는데, 이에 관악파트가 칼렌다르 주제의 전반부로 화답하지만, 급기야 칼렌다르 주제의 후반부 동기가 격렬하게 변한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2악장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먼저 현의 트레몰로를 배경으로 금관(트럼본, 트럼펫)들이 마치 전쟁이라도 하듯이 서로 대립하며 격렬하게 변모한 칼렌다르 동기들을 주고받습니다.
다음에는 현의 피치카토를 배경으로 역시 같은 동기를 클라리넷이 연주한 다음 오케스트라로 확산되면서 칼렌다르의 동기가 부점 리듬의 행진곡 풍으로 연주됩니다. 그리고는 다시 현의 피치카토를 배경으로 이번에는 바순이 같은 동기를 연주한 다음 중간부가 끝납니다.
그 후 (짧은 경과부를 거쳐) 바순이 칼렌다르의 동기를 원래의 형태로 연주하면서 곡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데, 2악장이 서두에서처럼 칼렌다르 동기가 오케스트라로 확산하던 중 현과 하프 개입하면서 현의 트레몰로를 배경 플루트가 부드럽게 칼렌다르 주제를 재현하고, 이어서 호른과 바이올린 솔로, 그리고 첼로 솔로 등이 주제를 이어받아 노래하다가 끝에서 갑자기 짧게 끓어오르며 2악장은 아주 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3악장>
3악장은 현악기가 아래와 같이 사랑스러운 느낌의 주제(사랑의 동기)를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결국 지워버린 3악장의 표제는 '어린 왕자와 어린 공주'인데, 이러한 제목으로부터 이 3악장이 '천일야화'의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표제적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앞에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아무래도 지나친 해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히려 이 주제 또한 전반부 부점 리듬에 의한 동기는 술탄의 동기와 그리고 이어지는 아르페지오의 흐름은 셰에라자드의 동기와 모종의 음악적 관련성이 느껴지는데, 여기서는 둘 다 매우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변모되어 있습니다.
이 부드러운 주제 뒤에는 클라리넷이 마치 키스나 애무의 동작과도 같이 부드러운 아르페지오가 뒤따르는 것도 특이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노래는 저음현에 의해 다시 노래되면서 오케스트라에 퍼져나가는데, 이번에는 다시 플루트가 부드러운 아르페지오의 가락을 거듭 연주합니다.
이렇게 사랑의 노래와 그에 반응하는 아르페지오가 이어진 후, 스네어드럼 등 타악기 배경으로 클라리넷을 필두로 목관과 트라이앵글까지 가세하여 귀엽고 장난기 넘치는 발랄한 리듬으로 변주됩니다(이 발랄한 사랑의 동기는 마지막 4악장에서 다시 소환됩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다시 고음현의 변주로 처음의 주제 가락이 다시 노래되는데, 여전히 부드러운 아르페지오가 뒤따르고 첼로의 화답을 지나 오보에를 통해 마무리되는데, 그 끝자락에서는 2악장의 칼렌다르의 동기의 끝부분이 잠시 오버래핑되면서 다양한 음악적 동기의 유기적 관련성을 새삼 느끼게 해줍니다.
이때 불현듯 바이올린 솔로가 셰에라자드의 동기를 연주하면서 3악장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바이올린 솔로는 연이어 (활을 현 위에 튕기며 연주하는) 스피카토 주법으로 바다의 동기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오보에를 필두로 사랑의 주제가 이어지면서 (마치 셰에라자드의 현실과 이야기의 경계선이 무너지는 듯) 끝에서 오케스트라에 의해 사랑의 주제가 감정적으로 폭발하며 노래됩니다.
그리고는 다시 바이올린 독주의 화려한 스피카토가 반복되자 키스나 애무와도 같은 부드러운 아르페지오가 뒤따르고, 호른이 자못 신중하게 사랑의 주제를 노래합니다.
그러자 발랄한 느낌의 사랑의 동기가 이번에는 좀 더 열정적이고 간절하게 변모하여 오케스트라에 의해 다시 노래되는데, 그 끝자락에서 원래 모습의 우아한 사랑의 동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이 두 가지 음악적 재료의 유기적 관련성이 다시 한번 강조됩니다.
그리고는 (마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변하는 술탄의 마음을 상징이라도 하듯) 신중하였던 사랑의 주제가 이제는 완연히 익살스러울 정도로 친밀한 형태로 변하며 3악장이 마무리됩니다.
<4악장>
마지막 4악장은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어 매우 조급해하는 술탄의 심정을 표현이라도 하듯) 아래와 같이 다소 거칠게 술탄의 동기가 재현되면서 시작됩니다.
이에 독주 바이올린이 (조급히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하려는 셰에라자드를 묘사하듯) 격정적으로 셰에라자드의 동기로 반응하는데, 이렇게 술탄의 동기와 셰에라자드의 동기가 대화하듯 한 번 더 울린 다음 탬버린 등 악기들의 분주한 리듬 위로 플룻이 아래 악보와 같이 기민하게 축제의 동기를 연주합니다.
마치 러시아 민속 춤곡의 가락과도 같은 이 축제의 동기 역시 자세히 들어보면 (2악장과 3악장의 주제처럼) 그 뿌리는 술탄의 동기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축제의 주제 역시 어떤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술탄의 심리적 변화를 통해 셰에라자드가 전개하는 이야기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족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 축제의 동기를 시작으로 곡은 점점 떠들썩하게 변하면서 격렬하게 끓어오르다가 갑자기 2악장의 중반을 장식한 칼렌다르 주제의 후반부 동기가 힘차게 울립니다. 그러나 다시 축제의 동기가 떠들썩하게 이어지더니, 이번에는 3악장의 중반을 장식한 귀엽고 발랄한 사랑의 동기가 재현됩니다. 이렇게 축제의 동기의 전개 중간에 이전 악장들이 갑자기 등장하여도 곡의 흐름에 전혀 위화감이 없이 녹아드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각 악장의 주제들이 얼마나 상호 유기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 후 다시 축제의 동기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역시 그 사이사이로 다시 2악장의 칼렌다르 동기, 1악장의 술탄의 동기 등이 번갈아 가며 소환됩니다. 그리고는 다시 축제의 동기를 기초로 한 빌드업이 시작되지만, 곧이어 또다시 2악장의 칼렌다르의 동기, 3악장의 발랄한 사랑의 동기 등이 중간에 다시 재현되고, 그제야 축제의 동기가 클라이막스로 고조되며 정점에 다다릅니다. 이때 지휘자 제거스탐은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하여금 큰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게 하는 독특한 퍼포먼스를 펼칩니다.
이렇게 축제의 동기가 정점에 이르자 오케스트라는 그 위세를 몰아 1악장에서 술탄의 동기, 셰에라자드의 동기, 바다의 동기가 모두 한데 어우러지며 펼쳤던 (바다와 신드밧드의 배라는 표제적 제목이 시사하는) 그 환상의 세계를 다시 소환합니다.
그 후 첼로가 (마치 배가 암초에 걸려 정지하는 것처럼) 셋잇단음을 격렬하게 연주하는 가운데 2악장의 칼렌다르의 동기가 난파하듯 폭발적으로 재현된 후, 곧 분위기가 잦아들며 놀랍게도 처음에 광포하게 울렸던 술탄의 동기가 이제는 현악기에 의해 부드럽게 노래되며, 아울러 바다의 동기도 폭풍 후의 고요처럼 잔잔하게 바뀌어 연주됩니다.
이때 마지막으로 독주 바이올린이 하프의 아르페지오와 함께 셰에라자드의 동기를 노래한 후 고역으로 단번에 올라가 핵심 e음을 하모닉스(현에 손가락을 가볍게 대어, 마치 휘파람과 같이 높은 음을 만들어내는 주법)로 여리게 연주하는 가운데, 이제는 차분해진 술탄의 동기가 아래에서 고요히 울리고 (마치 술탄의 마음을 다독이듯), 독주 바이올린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낮은 곳에서 고즈넉이 노래하다 위로 다시 올라가 긴 하모닉스로 고요히 사라지면서 그렇게 <셰에라자드>는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