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롯데, 직무급제 승부수…'롯무원'에 칼 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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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대기업 최초로…전 계열사 '직무급제'
연내 노조와 단협 진행
위기 돌파 위해 임금체계 '수술'
직무 40여개 나눠 1~5등급 분류
연내 노조와 단협 진행
위기 돌파 위해 임금체계 '수술'
직무 40여개 나눠 1~5등급 분류

22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지주는 최근 롯데백화점, 케미칼, 웰푸드 등에 각 계열사에 맞는 직무급제 도입 방안을 제출하라고 했다. 이들 핵심 계열사는 상반기 안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한 뒤 노동조합과 협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나머지 계열사도 내년까지 도입하기로 했다. 대상자는 연구개발(R&D)직, 사무직, 생산관리직, 판매직 등 수만 명이다. 일반 생산직은 제외한다.
롯데그룹은 전체 계열사 직무를 40여 개로 구분하고, 업무 난도와 중요도에 따라 5개 등급(레벨1~5)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예컨대 R&D는 가장 높은 5등급으로, 기획은 4등급으로 매기는 식이다. 1등급과 5등급의 기본급 격차가 20% 이상 나도록 설계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똑같이 A 평가를 받았더라도 5등급 부서에서 일하느냐, 1등급 부서에 소속됐느냐에 따라 기본급이 크게 달라진다. 개인별·부서별 실적 평가에 연동되는 성과급은 직무급과 별도로 책정해 지급한다.
롯데는 순조로운 직무급제 도입을 위해 직원의 현재 연봉을 유지한 채 상위 등급 직군에 추가 급여를 주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롯데는 직무급제 도입과 함께 근무 기간에 따라 사원, 대리, 책임(과장), 수석(차·부장)으로 승진하는 직급제를 폐지할 방침이다.
위기의 롯데, 직무급제 승부수…"핵심직군에 더 보상"
대기업 첫 직무급제 도입…"연공서열 타파"
‘롯무원(롯데+공무원).’국내 주요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롯데그룹 직원을 이렇게 부른다. 임금체계와 기업문화, 업무 강도 측면에서 롯데는 공무원만큼이나 보수적이란 이유에서다. 롯데그룹은 국내 주요 기업 중 가장 늦은 2018년 연봉제를 도입했지만 연차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연공서열 시스템은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분위기도 그대로다.

◇ 업무 강도 따라 레벨1~5 분류
22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지주 인사팀이 주도한 그룹 임금체계 개편작업은 지난해 시작됐다. 이들은 각 계열사 인사담당자들과 협의해 94개 계열사의 직무를 업무 중요성과 대체 가능성, 업무 강도 등을 고려해 40여 개로 분류했다.직무급제 도입은 핵심 계열사인 롯데백화점과 롯데케미칼, 롯데웰푸드부터 시작한다. 각 계열사는 핵심 직무를 레벨5로, 비핵심 직무를 레벨1로 구분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롯데케미칼의 핵심 연구개발(R&D) 파트는 레벨5로, 공장 운영을 담당하는 생산관리직은 이보다 낮은 레벨을 부여받는 식이다. 롯데백화점에선 시장을 조사하고 상품을 기획하는 상품개발자(MD)가, 롯데웰푸드에선 마케팅 담당자 등이 높은 레벨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레벨 직군에 속한 직원은 자연스럽게 높은 연봉을 받는다. 인사평가에서 똑같이 ‘B’를 받더라도 레벨5 직군이 레벨1보다 기본급을 20% 이상 더 받기 때문이다. 기본급은 전체 임금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레벨이 낮은 직군에 속해도 성과를 내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롯데가 도입하는 방식이 직무급제와 성과급제를 합친 형태여서다. 레벨1에 속한 직원이 개인 인사평가에서 S등급을 받았다면 레벨5 직원에 비해 직무급은 덜 받아도 성과급으로 만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더 중요한 일을 더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 보상해주자는 취지”라며 “직원 전체 인건비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인사 혁신으로 체질 개선”
롯데그룹은 직무급제 대상 계열사를 내년까지 전 계열사로 확대하기로 했다. 조만간 각 계열사가 노조를 상대로 인사 개편 방안을 설명할 예정이다. 계열사별로 인사이동 수요도 조사한다. 직원들에게 업무 강도가 높은 대신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고(高)레벨 직군 전환’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국내 주요 대기업 중에서 직무급을 도입하는 건 롯데그룹이 처음이다. 삼성그룹은 2016년 직급체계 단순화, 2021년 연공형 직급 폐지 예고 등 직무급제 도입 준비를 마쳤지만 직원 반발로 전면 도입에 실패했다. 롯데그룹 역시 노조를 중심으로 직무급제 도입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롯데는 위기 돌파를 위해 직무급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산 매각과 희망퇴직 등 임시방편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문화 구축’이란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그룹의 체질이 온전히 바뀐다는 이유에서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롯데케미칼 롯데면세점 등 주요 계열사의 실적 부진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고 일부 계열사는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자산 매각 작업도 한창이다. 롯데케미칼은 파키스탄 자회사 LCPL을 1275억원에, 일본 화학사 레조낙 지분 4.9%는 2750억원에 매각했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낡은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제도를 바꾸고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원/김우섭/성상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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