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관계자들이 화재가 발생한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소방 관계자들이 화재가 발생한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최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1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습니다. 방화 후 사망한 가해자는 해당 아파트의 옛 주민으로, 층간소음으로 인해 위층 주민과 극심한 갈등을 겪고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위층 주민을 폭행한 이력도 있는 만큼 경찰은 방화가 원한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입니다.

해당 아파트는 2000년에 입주한 노후 아파트로, 전형적인 벽식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벽식 구조는 1970년대 아파트를 짓던 방식인 기둥식(라멘) 구조에 비하면 층간소음이 큰 단점이 있습니다.

신축보다 조용하다는 노후 아파트 주민들…건설업계는 갸우뚱

벽식 구조는 벽이 기둥 역할을 하며 천장을 떠받치는 설계를 의미합니다. 건축 비용이 싸고 빨리 지을 수 있어 1980년대 후반부터 보편화됐습니다. 2000년대 지어진 아파트의 98%가 벽식 구조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벽식구조는 층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해줄 부재가 없어 위층에서 뛰거나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 발생하는 충격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또한 벽이 이어져 있는 탓에 소음이 벽을 타고 온 건물에 울리기도 합니다. 5층에서 뛰는 소음에 4층은 물론 3층 주민까지 고통받는 상황이 펼쳐지는 셈입니다. 간혹 아래층 소음이 위층으로 울리는 경우도 생기곤 합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일부 노후 아파트 주민들은 "노후 아파트가 신축 아파트보다 튼튼하고 층간 소음도 적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층간소음을 막고자 소음 방지 매트를 설치한다는 지난 기사에도 "30년 된 아파트 사는데 오히려 층간소음 없고 좋다", "옛날 아파트가 바닥이 더 두껍고 튼튼하게 지었다" 등의 댓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기둥식(라멘) 구조와 벽식 구조 비교. 사진=LH
기둥식(라멘) 구조와 벽식 구조 비교. 사진=LH
이러한 반응에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성립하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아파트 건축 공법이나 기준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A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의 바닥이 두꺼울수록 층간 소음에 유리한데, 노후 아파트는 두께부터 다르다"며 "1980~1990년대 아파트는 슬래브 두께가 120㎜ 내외로 지어졌는데, 2014년에서야 슬래브 두께를 210㎜ 이상으로 강제하는 규정이 마련됐다"고 말했습니다.

업계에선 슬래브 두께가 90㎜ 늘어나면 층간소음도 4㏈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노후 아파트에서도 슬래브를 두껍게 만들 수 있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슬래브가 두꺼워지면 그만큼 하중도 늘어나기에 기둥까지 굵어져야 합니다. 결국 공사비 전반이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벽식 구조에서는 층간소음을 막기 어렵다"며 "그렇기에 최근 아파트들이 벽식 구조를 탈피해 무량판 구조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는 기둥식 구조나 무량판 구조는 소음을 전달할 벽이 없기에 층간소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노후 아파트는 조용하지만…0.006% 불과

과거에도 질 좋은 아파트를 지어 신축보다 조용하다며 댓글에 거론된 건설사도 고개를 갸웃거리긴 마찬가지입니다. 이 건설사 관계자는 "층간소음 저감 솔루션 개발을 위해 음향실험실을 구축한 게 1996년"이라며 "이후 완충재를 개발하고 슬래브 강성을 보완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과거 아파트와 현재 아파트는 기술력에 있어 비교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서울 여의도 신축 아파트와 노후 아파트 모습. 사진=게티이미지
서울 여의도 신축 아파트와 노후 아파트 모습. 사진=게티이미지
다만 '신축만큼 조용한 노후 아파트'가 불가능하진 않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아직도 벽식 구조를 적용한 신축 아파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1970년대 기둥식 구조 아파트와 비교하면 노후 아파트가 더 조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둥식 구조는 천장과 기둥 사이 보(beam)가 완충재 역할을 하기에 층간소음에 가장 유리한 구조로 평가됩니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까지 아파트 바닥난방에 타설되던 '콩자갈'(컬러스톤) 또한 노후 아파트의 층간소음을 줄여주는 요소입니다. 과거 건설사들은 슬래브 위에 자갈을 깔고 난방 배관을 깔아 소음 차단과 보온 효과를 노렸습니다. 1980년대 들어 아파트를 대규모로 짓기 시작하면서 콩자갈 공법은 경제성과 시공성이 뛰어난 기포 콘크리트로 대체됐습니다. 많은 아파트가 이를 통해 단열 성능을 높였지만, 그간 부수적으로 누리던 소음 차단 효과는 사라졌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울 아파트 2만5000여동 가운데 준공 50년이 넘은 아파트는 0.006%(150여동)에 그친다"며 "노후 아파트가 신축보다 조용하다는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신축 아파트에 적용되는 바닥충격음 기준을 통과할 노후 아파트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